KT 노조, 민노총 탈퇴
KT 노조가 민노총을 탈퇴하기로 한 것은 민주화 이후 한국 노동운동사의 일대 사건이라 할 만하다. 그것은 변혁주의와 점진주의의 분화, 과격주의와 온건주의의 분화, 정치투쟁론과 권익투쟁론의 분화, 그리고 NL(민족해방) 노선과 非NL 노선의 분화를 예측하게 만드는 사건이기도 하다.
세계 노동운동사에 점진주의가 대두한 것은 100년 이상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1890년대 독일 사회민주당 이론가 베른슈타인(Edward Bernnstein)의 마르크주의 비판, 1950년대 이후의 영국 노동당 이론가인 앤터니 크로슬랜드(Anthony Crosland), 휴 가이츠켈(Hugh Gaitskell), 로이 젠킨스(Roy Jenkins), 빌 로저스(Bill Rogers), 셜리 윌리엄스(Shirly Williams), 토니 블레어(Tony Blair), 그리고 그와 병행했던 페이비안 협회(Fabian Society) 등의 우경화 움직임이 그런 사례였다.
이런 흐름의 공통점은 혁명주의, 계급투쟁, 자본주의 전면 타도론을 버리고 점진주의, 계급간의 협력, 자본주의 경제 참여를 통한 개혁(reformism)을 채택한 점이다. 이들에 대해 볼세비키(레닌주의자, 스탈린주의자,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자본주의보다도 더 위험한 '진짜 敵'이라고까지 적대했다.
그러나 오늘날 볼세비키들은 망했고 유럽 사회민주주의, 페이비안 주의, 토니 블레어 노선 등 점진적 온건 개혁주의자들은 복지국가를 이룩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기여와 성공을 기록했다. 무엇보다도, 의회 민주주의와 자유의 가치를 지키면서 사회정의, 평등, 복지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그들의 도덕적 우위를 드러냈다.
1987년의 민주화 이후 한국 노동운동은 민노총으로 대표되는 급진과격파의 일방적 헤게모니로 휩쓸렸다. 근로자의 권익 투쟁을 넘어 NL적 이념투쟁, 정치투쟁, 과격한 街鬪로 일탈 했다는 비판, 그리고 각종 금전적 스캔들, 성추행 스캔들, 대기업 노조 위주의 '노동귀족' 현상을 빚었다는 비판에 직면 하게 되었다. 이러한 비판 앞에서 민노총 노선이 내부의 거부반응을 자초한 것은 필연적인 귀결이었다고 할 수 있다.
KT 노조의 민노총 탈퇴를 계기로 민주화 이후의 한국 노동운동의 지평에도 합리적이고, 非변혁적이며, 非교조적이고, 도그마에 묶이지 않은, 그리고 공룡화 되지 않고, 권력화 되지 않은, 순수한 일상의 복지적 권익을 추구하는 <실리 위주> 노동운동의 새 판이 짜일 수 있기를 대망한다.
지금은 19세기 말도 20세기 초도 아닌 21세기다. 근로자 역시 시장경제의 일방적 피해자 아닌 공동의 주체, 공동의 수혜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이미 역사적으로 입증된 시점이다. 시장경제가 근로자를 오로지 착취만 하는 제도가 아니라는 사실도 이미 확연하게 입증되었다. 국가 또한 부르주아만의 권익에 봉사하는 계급주의적 국가임을 벗어나, 근로자를 포함한 국민 모두의 권익에 봉사하려는 보편적인 국가로 바뀌어 왔다는 점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분명하게 확인되었다. 그래서 그런 변화된 국가를 타도하려는 것 대신, 그런 계몽된 국가의 안쪽으로 들어가서 그 국가의 정책적 선의를 요구하고 기대하고 신뢰하는 것을 통해 근로자의 행복추구권을 신장 시키려는 개혁주의적, 우경적, 노동운동이 일어난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그 테두리 안에서도 근로자들이 사회적 약자로서 억울하게 당하거나 일방적인 손해를 보는 경우가 물론 있을 수는 있다. 그래서 노조 차원의 감시, 견제, 참여, 권익주장, 다툼, 교섭, 自衛, 정당한 획득을 추구하는 장치는 물론 필요하고도 당연하다.
그러나 구시대적인 이념에 사로잡혀 노동운동이 계급투쟁, 정치투쟁 일변도, 체제변혁 투쟁, 폭력적 게발트(Gewalt) 투쟁, 기득권화, 권력화, 조직의 신격화, 조직이기주의, 김정일 추종 증후군을 드러낸 점이 있었다면 그런 낡고 병든 운동은 마땅히 새로운 노동운동의 청산 대상이 돼야 할 것이다.
새로운 노동운동은 무엇보다도, 한반도에서 국가권력으로부터 독립한 노동운동과 노조활동을 보장하는 유일한 나라-대한민국의 헌법질서를 준수하고 사랑하는 자유민주 사회의 건강한 노동운동으로서의 정체성을 선명하게 확립해야 할 것이다.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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