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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생각] 가진 자의 여유인가, 오만인가?

아프가니스탄의 끝없는 절망과 고통 앞에서 4,50년 전 우리의 과거 굴곡진 역사를 떠올려야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09-12-06 오후 7:4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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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천년 역사에 실크로드 문명을 자랑하는 나라. 대승불교의 발상지며, 7천미터의 고지대가 있는가 하면 영상 45℃를 넘는 열사의 불모지대에서 영하 15℃에 이르기까지의 척박한 자연환경, 중앙아시아와 동북아 등 아시아권을 연결하며 다양한 언어와 문명을 자랑했던 나라.

 그러나 이 나라 국민들은 칭기스칸과 알렉산더, 페르시아의 침략에 항상 대비해야 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은 지난 30년 역사 기간 동안에는 영국으로, 이어진 1979년 12월에는 소련군 10만 명의 침공을 받은 이후 1989년 철수하기까지 이 나라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으로 전 국토는 완전 초토화되다 시피 했다.

 소련제 탱크와 중무장 헬리콥터, 중화기를 앞세우며 무자비한 공격에 나선 이들 앞에서 이 나라 젊은이들은 소총과 칼을 들고, 때로는 돌팔매질로 대항 했다. 10년 전쟁 기간 동안 어린이와 아녀자를 비롯한 150만 명이 소련군의 총구 앞에 속절없이 무너져갔다. 200만 명의 부상자가 천막 병동에서 넘쳐났다. 600만 명이 넘는 피란 인파가 파키스탄을 비롯한 인접국가의 국경을 넘으며 목숨하나를 부지하기 위해 발바닥이 부르트고 피가 터지고 또 터졌다.

 아름다운 세계적 유적이 파괴되고 문명이 절단될 유기에 처해졌다. 소련군의 무자비한 탄압과 살육은 공중에서 투하한 장난감 인형에 무기와 부비츄랩을 설치해 어린아이들을 잔인하게 죽어가게 한데서도 그 파괴성을 입증하고 있다. 이렇게 인명이 학살되고 한세대의 인적자원이 고갈되었다. 경제력과 교육력, 기술이 모두 무너지고 사회간접자본을 비롯한 각종 인프라가 송두리째 파괴되었다.

 절대다수의 남자들은 '대항자'라는 미명하에 소련군에 끌려가 처절한 고통을 감수하며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하지만 이 나라 국민들은 절망하지 않았다. 굶주리고 죽음의 그림자가 엄습하는 가운데서도 미래에 대한 큰 밑그림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각종 어려움을 극복하며 8년 민주주의 역사를 경험하며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해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바로 아프가니스탄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 숱한 어려움이 이들 앞에 가로 놓여 있다. 그 중에서도 제일의 문제가 바로 9.11테러범들의 온상지라고 하는 탈레반의 거점이 이곳에 있다고 하는 점이고 미군 6만여 명을 비롯한 43개국 10만이 넘는 다국적군이 이곳에서 탈레반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12월 첫 주이던 지난 3일 아침, 국제외교안보포럼(이사장 김현욱, 전 국회의원) 정례 조찬 모임에는 60여 명의 회원들이 참석했다. 이 날 포럼의 초청강사는 주한 아프가니스탄 대사인 모하마드 카림 라히미 대사였다.

 최근 우리정부의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지방재건팀(PRT)과 함께 국군을 파견키로 결정해 아프가니스탄 파병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 보다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각계 시민사회단체에서 이와 관련한 세미나, 토론회가 광범위하게 개최되고 있는 즈음에 아프가니스탄 대사의 포럼에서의 발언은 커다란 이슈가 되기에 틀림없었다.

 이 날 포럼에 나선 모하마드 카림 라히미 대사는 자신의 조국 아프가니스탄이 안고 있는 어려움과 문제점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토로했다. 구 소련의 침공으로 인한 국가자산의 피폐와 초토화, 열악하기 그지없는 국민생활의 참담함, 부패와 무능, 그리고 무엇보다도 탈레반 세력으로부터 더욱 참담하게 무너지고 있는 현 사태에 대해 국제사회의 지지와 도움을 애타게 호소했다.

 기자는 그동안 취재 과정에서 여러 나라 대사들이 포럼에 초청돼 한국과 자국의 관계를 역설하면서 한국과의 긴밀한 협력관계와 미래지향적인 발전 지속국가임을 역설하는 것을 자주 지켜봐 왔다. 미국과 일본 대사가 그랬고 중국과 러시아 대사가 그랬다. 한반도의 한국 중심의 통일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한국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한다는 말도 뒤따랐다. 그러나 이들 그 나라를 대표하는 외교관의 발언을 들으면서도 때로는 그 발언의 진면목이 어디에 있고, 그들이 표방하는 의지나 의사가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어느 정도가 외교적 수사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때로 그들의 발언이나 표정에서 득의에 찬 자신만만함과 여유로움을 느낄 수도 있었다. 당연한 것일게다. 발전한 경제부국, 핵과 거대 군사력으로 중무장한 국가가 그보다 한 수 아래 국가에 대해 갖는 여유와 풍요로움은 가진자 만이 느끼는 오만함과도 결코 무관치 않다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날 포럼에 나선 라히미 아프가니스탄 대사의 발언과 그의 열정적인 지원을 요청하는 말을 들으면서 나는 불현듯 1963년 1백달러 미만의 가난했던 나라의 대통령으로 서독을 방문해 긴급 지원을 요청하며 단 1달러라도 더 벌기 위해 광부로, 간호사로 독일로 진출한 이들 교민들과 눈물의 재회를 하면서 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연설내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라히미 대사는 한국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하고 또 당부했다. "지역 내 경제강자로서 한국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걸맞는 역할을 해야 한다. 아프가니스탄 국민은 한국이 지금까지 아프간에 보내준 지원과 성원을 잊지 않고 있으며, 한국이 더 큰 역할을 해 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말도 했다.

 그는 또 이런 말도 했다. "아프간에는 아연, 크롬, 철 등 개발되지 않는 많은 광물자원들이 있고 한국의 발전한 교육과 기술 등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여러분들이 원하는 것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앞으로 한국군이 위치하게 될 지역은 그렇게 위험지역이 아니다. 한국이 아프간에 도움을 주는 한 아프가니스탄은 여러분이 필요로 한 무진장 가져갈 수 있다. 한국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아프가니스탄을 절절하게 세일하고 있는 것이었다. 가난한 나라의 대사, 전쟁 중에 있는 나라의 대사가, 그래도 부자나라라고 하는 한국 땅 한국인들 앞에서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결코 남의 일, 먼 나라의 일이 아니었다. 포럼이 개최된 대연회장의 분위기도 덩달아 숙연했다. 어쩌면 아프가니스탄이 오늘 겪고 있는 현실이 우리가 멀리는 70년, 80년 전에 겪거나 아니면 40년 50년 전에 겪었던 아픔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극복해 오늘의 시점에 있고, 아프가니스탄은 그 아픔의 현장에서 맞닥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결코 외면해서도, 외면할 수도 없는 사안이다.

 국익이고, 국격이고, 국제사회에서 도움을 받았던 국가로서의 당연한 의무이자 가진자로서의 가치 등 어떤 이유 여하를 다 떠나서 죽음의 공포에 직면하고 주린 배를 움켜쥐며 배고파 하는 가난한 이웃을 그대로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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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바람    수정

    겨우 350명의 인원을 파견한다니 할 말이 없습니다. 실용을 내세운 현 장권은 국익 차원에서라도 더 많은 인원과 물자를 보내야 합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9-12-08 오후 5:4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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