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 푸닥거리
지난 12월 10일 애국단체 ‘대한어버이연합’은 친일인명사전을 펴내겠다고 푸닥거리 노름을 하고있는 ‘민족문제연구소’앞에서 그들의 반국가적 망동을 규탄하는 집회를 가졌다.
건국 60주년 지나 왠 친일망령인가
12월 28일 연세대학과 고려대학, 이화여대 등 6개 사립대 총장들은 이명박 대통령과 교육과학부장관, 행자부장관 등에게 대통령 직속기구인 이른바 ‘친일진상규명위원회’가 11월 27일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1005명 명단의 시정을 요구한 청원서를 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지 65년, 대한민국을 건국한지 62년, 제헌국회가 반민특위법을 만들고, 반민특위를 구성하여 반민특위 검찰부와 재판부가 친일분자를 청산한지가 이미 61년이나 되었는데 어떻게 되어 이 땅에는 아직도 친일청산의 망령이 돌아다니는가!
이같은 현실은 우리 국가체제의 관용의 미덕의 그늘아래 또아리를 틀고 국가기관 곳곳에 반대한민국세력과 그 동조자들이 침투, 암약하면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파괴하기 위한 공작이 진행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우리는 한반도 적화를 위하여 온갖 방해책동을 하는 좌익분자들의 음모와 준동을 물리치고 나라를 세웠고 이제 우리 대한민국은 세계 10위 경제국가가 되어 선진국의 문턱에서 국격을 높이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역대정권 담당자들이 나라를 세우고 지킨 건국과 호국의 역사와 국가정체성에 대한 국민교육을 등한히하여 남로당을 했던 김대중과 붉은전사로 옥사한 권오석의 사위 노무현이 15대, 16대 대통령이 됨으로써 이같은 일이 벌어지게 됐다.
친일파 딸들과 아들이 만든 殺父會(살부회)
친일청산의 망령을 다시 불러온 장본인은 일제하 만주국의 경찰특무 김일연의 딸이며, 김대중의 심복으로 알려진 김희선 전의원이 대표로 있던 ‘민족정기를 세우는 의원의 모임’이 2002년 2월 708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 발표로 시작됐다.
김희선 전 의원과 ‘민족정기를 세우는 의원의 모임’은 2004년 ‘친일반민족행위자진상규명법’을 발의하여 2005년 5월에 국회를 통과시켰는데 이 법이 국회에 계류중인 2004년 11월에 김희선 의원이 이사로 있는 ‘민족문제연구소’관계자들이 이 법에 관하여 조언하고 간 사실이 있다.
바로 그 직후 이 법의 친일반민족행위자 군인의 기준이 중좌이상에서 소위로 바뀌는데 이 야비한 짓을 보다못한 같은 당의 모의원이 고약한 사람들이라고 폭로한 사례까지 있었다.
그런데 김희선이 대표로 있던 ‘민족정기를 세우는 의원의 모임’ 구성원들의 면면을 보면 희안하게도 만주국 경찰특무의 딸 김희선을 비롯하여 일제 무단통치의 상징인 헌병 伍長(오장, 하사에 해당)의 아들, 심지어 일본황성 수비헌병 오장의 딸까지 끼어있다.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를 보면 1920년대 말, 민주일대에서 날뛰던 극좌 젊은 공산주의자들은 혁명의식을 고양한다하여 ‘殺父會’(살부회)를 만들었는데 제 손으로 제 아비를 죽일 수 없으니까 서로 바꾸어 죽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점에서 이른바 ‘민족정기를 세우는 의원의 모임’이 악질 친일 분자의 딸과 아들의 이디프스 콤플렉스로 해석되기보다는 북한 체제의 잔학상인 ‘친족고발’과 비교할 수 있다.
좌익협력 거부자는 덮어놓고 친일파 낙인
좌익분자들이 친일문제에 민감한 것은 해방직후 좌·우익 간에 친일청산 과제에 대한 시각 차이에서부터 유래한다. 우익은 일제가 물러간 마당에 제 1의 민족적 과제는 독립국가 건설에 있다고 보고 친일청산은 정부가 수립된 다음 제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고, 반면에 좌익들은 국가 기구를 속박으로 보는 그들의 근본철학에 따라 독립국가 건설에는 관심이 없고 일제가 물러간 공백기에 친일청산을 해방정국의 주도권 장악의 기회로 보아 자기들에게 협력하면 친일파도 애국자, 자기들에게 협력을 거부하면 누구나 친일파로 매도했다.
바꾸어 말해서 ‘시끄러운 장마당에 먹을거리가 많다’고 좌익들은 일제가 물러간 무정부 상태를 그들의 사회주의 혁명의 호기로 보아 법과 제도에 의한 친일청산이 아니라 ‘완장부대’에 의한 친일청산을 주창했다.
그러나 9월 총파업, 10·1폭동, 야산대운동, 제주 4·3폭동, 여·순반란사건 등 그들의 폭력노선에도 불구하고 유엔총회의 결의로 5·10총선거가 실시되어 나라가 서자 저들은 대한민국은 ‘미제의 괴뢰 이승만이 친일파와 손잡고 만든 나라’라고 저주의 주문을 외어댄다.
그리고 1948년 7월 17일 제정된 제헌헌법 제 101조에 의해 반민족행위자 처벌법이 만들어지고 국회에 반민특위가 결성되어 반민특위검찰부와 재판부가 반민자 688명 중 영장발부 408건에 기소 147건 악질반민자 김덕기 사형, 김태석 무기, 이완용의 양손 이병길은 2년형을 선고했는데도 딴소리다.
을사늑약이나 경술국치에 가담한 자들은 이미 죽었고 송병준, 한상룡, 박춘금, 이기동은 일본으로 밀항, 특히 박춘금은 조총련과 야합했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이미 친일청산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좌익분자들은 흔히 “북에서는 친일청산을 제대로 했는데 대한민국은 친일청산을 제대로 하지않아 정치적 악순환이 되풀이 된다”고 중세에 있었던 마녀사냥식 주장을 폈다.
그러나 이같은 선동은 해방당시 좌익들의 친일청산의 행태에서 보듯이 제대로 된 친일청산이 아니라 무정부 상태에서 ‘완장부대’에 의한 친일파 숙청의 실패를 자인한 것일 뿐 북한이야말로 친일청산을 제대로 한 것이 아니다.
북한의 수령독재는 천황제의 복제판
김일성의 친동생으로 70년대 초기까지 북한정권의 실세였던 김영주는 일제 헌병보조원을 했고 북한정권 수립당시 검찰총장 한낙규는 만주국 검사장을 했으며 북한정권 초기 교통국장 한희민은 일제하 함흥철도국장을 했고 인민군 공군총사령관 이활도 일제의 파일럿 출신이 아닌가.
남로당도 문학가 동맹을 만든 장본인 임화는 일제하 국내 항일본산 ‘신간회’ 해체 발의를 했고 박헌영의 2인자인 이승엽은 일제하 식량영단 이사를 했으며 월북한 무희 최승희는 일본 황군 위문공연의 단골임은 물론 국방헌금으로 당시 거액인 7만 5천원을 헌납했지 않은가.
무엇보다도 수령독재의 오늘의 북한체제야말로 일제의 萬世一系(만세일계)의 천황제를 복사한 친일체제고 북의 주체사상이나 태양절도 일제의 황도주의 사상이나 일장기를 본따 만든 친일복제품이다.
북한체제의 허구성이나 거짓과 실패가 이미 만천하에 드러났는데도 멀쩡한 사람들이 김일성 김정일을 광명성 운운한 것을 보면 제정신인지 의심이 든다.
숨기려는 것은 밝혀지고 거짓은 드러난다. ‘친일반민족행위자규명법’이나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법’은 남로당출신 김대중과 붉은전사의 사위 노무현이 배후고, 그 앞잡이는 이른바 ‘민족문제연구소’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민족문제연구소’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친일 푸닥거리법을 만든 당시 민족문제연구소는 21명의 이사회에 이사장 윤경노, 상임이사 임헌영이 민족문제 연구소 소장을 겸임하고 있었다.
이사들 중에 알만한 사람은 윤경노 이사장과 상임이사 임헌영, 당시 국회의원인 김희선과 김원웅 종교인인 이창복, 이해학, 이관복이 있고 김대중 정권시 설치며 벼슬한 김정기가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정체를 벗긴다
윤경노 이사장이야 해평 윤씨로 기독교 역사가 전공이라니까 우리 현대사라면 한일합방당시 해평 윤씨인 순종비 윤비가 합방문서에 찍을 옥쇄를 치마폭에 감추고 내놓지 않아 백부 윤덕영이 옥쇄를 빼앗은 사실정도나 알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 김희선은 자신의 아버지가 악질 친일파로 악명이 높은 사실도 모르고 날뛰었으니까 더 말할 나위 없고 김원웅도 김희선 부류로 자신의 아버지가 독립운동 한 것을 자랑하면서도 연안에 있었다는 사실도 분간 못한 사람이다.
종교인 이창복과 이해학, 이관복은 필자가 좀 아는 사이인데 친일문제나 역사적 소양이 있는 사람들은 아니고 해방신학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이다.
결국 상임이사이자 소장인 임헌영과 김대중정권 시절부터 날뛴 김정기, 그리고 위장전향 여부로 주목받언 간첩출신 김남식이 민족문제연구소 자문위원으로 그 역할이 무엇이었던지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민족문제연구소 상임이사이자 소장 임헌영은 경북 의성 출신으로 본명이 임준열, 헌영은 필명으로 박헌영과 음만 같을 뿐 한자는 다르다. 그는 1968년도 ‘다리지’사건 때 반공법 위반으로 처벌받았고 1978년 ‘남조선 해방 민족전선’의 중심인물로 사형단한 이재문이 김일성에게 보낸 서한을 썼다.
그의 부친 임호빈은 그의 형과 더불어 붉은전사로 6·25때 사라졌다하고 확인되지 않았지만 일설은 그의 아버지 3형제가 붉은전사로 6·25때 행방불명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김정기는 그레고리 헨더슨과 브르스 커밍스에게 사사했고 그의 저서 ‘국회프락치사건 재발견’에서 이를 이승만의 쿠데타라고 하고 미대사관 직원으로 있다가 거물간첩 성시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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