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4.19주역, "민주혁명 주역들 분노한다"
4.19 50주년 맞아 국가보훈처에 포상신청자 1,082명 전원 포상 촉구
1960년 4월19일 4.19민주혁명에 참여해 이 땅의 자유민주주의 체제 구축에 시금석을 놓고도 유공자는커녕 포상과도 전혀 거리가 멀었던 당시의 주역들이 4.19혁명 50주년을 맞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4.19혁명 유공자 추가 포상 심의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갖고 현재 국가보훈처에 포상신청을 해놓고 있는 1,000여 명 전원에 대해 포상이 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나섰다.
4.19민주혁명 50주년 포상 신청자 협의회(상임대표 허철부, 외국어대 명예교수)는 9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현재와 같은 심의 규정으로는 결코 올바른 심의가 이루어질 수 없다고 주장했다.
기자회견에서 주최측은 "금년은 국운상승의 기회"라며 "4.19혁명 민주정신을 선양하고 이 정신이 후손에게 계승되도록 해 민족의 정기와 정신이 살아 숨쉬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런 차원에서도 현재 포상을 신청한 1,082명 전원에 대해 포상이 이루어져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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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당시 서울 대광고 3학년에 재학 중 4.19에 참여했다는 배극일 씨는 "학교 대대장으로 학생 700명의 선두에서 동대문을 거쳐 국회로까지 진출하면서 부상자들도 속출했다"고 당시를 돌이키고는 "학생들과 함께한 선생님들도 트럭에 붙들려 잡혀갔다"고 말했다.
배극일 씨는 이번 포상 참여와 관련해 "지금까지 어떤 정부로부터도 포상과 관련해 말을 해온 적이 없다. 그러다 작년 9월 정부로부터 4.19참여와 포상과 관한 질문이 왔다"고 말하고 "저희가 살면 얼마나 살겠느냐? 5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꼭 한가지 드릴 말씀은 대가로서의 포상을 받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혁명을 위한데 따른 명예를 찾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아쉬운 점도 토로했다. 당시 대학교에 다니던 학생들에 대해서는 파악도 하고 했지만 고교생들에 대해서는 이런 일들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후 포상 유공자 과정에서도 당시 정권의 잣대에 따른 선정도 이루어 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이 날 기자회견에서 포상신청자 협의회는 ▲4.19민주혁명 이념의 계승·발전에 대한 정책 제고 ▲4.19민주혁명이념 구현으로 사회의 이념적 갈등 해소와 사회통합실현 노력 ▲4.19민주혁명과 유공자 포상 및 예우에 관한 개별법 제정으로 국가포상정책 모순 해소 ▲추가포상미신청자 중에서도 공적이 있는 경우 적극 찾아 포상 대상자 포함 등의 결의문을 밝혔다.
다음은 이 날 4.19민주혁명 50주년 포상 신청자 협의회가 밝힌 성명서 전문 내용임.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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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4.19민주혁명 주역들은 분노하고 있다!
국가보훈처는 2010년 4.19민주혁명 50주년을 기념행사 일환으로 4.19혁명 유공자에 대한 추가 포상계획을 발표한 이후 4.19민주혁명 동지 천여명이 개별적으로 포상 신청을 한 것으로 나타나 신청자들은 물론 각계각층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왜냐하면 2003년과 2006년에도 4.19민주혁명 유공자 추가 포상 신청을 받아 심의한 결과 대다수의 신청자가 공적 거증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대거 탈락되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공적이 인정된 유공자마저도 4.19 이후의 행적을 문제삼아 제외된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현재 생존해 있는 70고령자인 4.19민주혁명 주역들은 2010년 포상의 기회를 갈망하면서도 현행 제도의 '심사위원 선정방법'이나 '포상자 선정을 위한 공적 거증기준'에 대한 개선이 없는 한 역사적인 4.19혁명 50주년 기념일환으로 마련된 절호의 기회마저 재차 박탈될 위기에 처해 있다며 이에 집체적으로 강력히 항의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일제의 식민통에서 독립한 후의 우리나라 근대사는 자유민주주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가 전부라 할 정도로 민주화 관련 운동이 많았는데 이러한 민주화운동은 4.19가 그 연원임을 반론할 여지가 없다.
그래서 1987년 당시 여야 지도자들(노태우·김대중·김영삼·김종필 등)이 4.19민주혁명의 계승을 헌법 전문에 명문화하고 4.19민주혁명을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시발점으로 규정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4.19와 관련한 보훈정책은 이러한 헌법적·법률적 진화에도 불구하고 4.19를 부정했던 역대 정권에 의해 수립된 불합리 했던 기존의 정책을 고수한 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4.19관련 보훈정책 수립을 했던 정부가 가치중립적이 못되고 정치적 당파성에 치우쳐 4.19에 대한 가치정의를 오도하는 오류를 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의를 내린 정부는 4.19의 역사성과 그것이 가지는 국가적 상징성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오류를 범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던 정권들의 사정이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4.19혁명 역사는 물론 국가 보훈정책마저도 왜곡시켜 왔던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최근의 정권들도 이와 같은 전말을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수수방관해 왔다는 사실에 우리는 분노하고 있다. 이러한 당국의 대 4.19정책은 국가 최고규범이자 법해석의 기준인 헌법 전문이 지향하는 정신에 크게 위배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간의 4.19혁명 유공자의 포상은 객관적 합리적 기준보다는 다분히 정치 성향적인 바탕에서 시행되어 왔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대다수의 4.19혁명 동지들의 자존심과 명예가 오도된 채 오늘에 이르렀다.
더욱이 민주화운동의 배경과 시대적 환경을 보면, 지역적인 5.18유공자의 수는 무려 4,062명(유족566인 포함)인데 반해 전국적 배경을 지닌 4.19유공자는 불과 565명(유족 162인 포함)인 것은 대한민국의 보훈정책이 역대 정권의 시녀 역할만 해 왔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악용되어 왔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역사적인 4.19민주혁명 50주년 기념일에 즈음하여 시행하는 4.19혁명 유공자 포상과 관련된 추가포상은 그간의 4.19혁명 유공자 평가와 관련한 불합리성과 형평성 문제의 개선을 위한 대안을 하루 빨리 제시하고 아울러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 이념과 그 본질이 국가정책에서 올바르게 계승될 수 있는 절호의 계기가 되기를 간곡히 촉구한다.
2010년 2월 9일
4.19민주혁명 포상신청자 협의회와 지지 교수들 일동
포상신청자 협의회 상임대표 허철부(외국어대) 공동대표 및 총간사 전득주(외국어대)
공동대표 : 이영철, 김무상(건국대), 박종혁, 손안식(경기대), 김순종(경희대), 한석관, 김유진, 최용희(고려대), 윤성열, 이재옥, 박봉선(동국대), 최광철, 윤식(서울대), 한조정(영남대), 문효영, 박철규(한양대), 배극일(대광고), 고재원(수도전기공고), 박훈, 김민수(한양공고) 이외 지지교수 5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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