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아시아는 하나가 아니라 경쟁국들의 복합체
빌 엠모트의 “라이벌 들(Rivals): 중국, 인도, 일본의 세력 경쟁은 향후 10년의 세계를 어떻게 변모시킬 것인가”
미국은 쇠퇴하고 아시아가 부상한다는 주장의 논리적 모순
21세기가 시작된 이후 국제정치의 일반 상식처럼 된 언급이 몇 가지 있다.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언급은 “21세기는 아시아의 세기” 가 될 것이라는 말이다. 이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제 미국은 쇠퇴하고 있으며 아시아가 부상하고 있다”라고 말해 진다.
왜 아시아가 부상하는 반면 미국은 쇠퇴하고 있는가에 대한 다양한 설명들이 제시 되었다. 그중에는 지구의 문명, 산업, 더 나아가 국제정치와 군사력의 중심지는 동(東)에서 서(西)로 이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다. 그리스가 한때 세계의 중심지였는데, 세계의 중심은 그리스 보다 서쪽에 있는 로마로 이동 했고, 로마의 패권은 다시 서쪽으로 이동, 영국을 위시한 프랑스, 독일 등이 세계의 핵심 지역이 되었고, 서유럽의 패권은 다시 더욱 서쪽에 있는 북 아메리카로 이동 했다는 것이다. 북아메리카의 미국이 세계 패권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이제 세계의 패권은 다시 서쪽으로 이동할 것이며 그 결과 21세기의 패권은 아시아가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같은 주장들은 일반인들은 물론 역사와 정치에 대한 소양이 상당 정도 수준에 이른 식자들 사이에서도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진리처럼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 같은 설명은 그 논리적 구조가 허술하기 짝이 없는, 21세기의 복잡다단한 국제정치를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부적절한 언급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선 “미국이 쇠퇴하고 아시아가 부상하고 있다”는 문장 자체가 논리적으로 틀린 것이다. 쇠퇴하는 대상은 1개 국가인 미국인데, 부상하는 대상은 인구 30억에 육박하고 국가숫자도 30개국이 넘은 주(州) 이기 때문이다. 학술적이고 논리적인 언급이기 위해서는 분석 혹은 비교의 단위가 같아야 한다.
‘지구의 힘의 중심이 동에서 서로 이동했다. 그러니까 미국 다음 세계 중심은 아시아 일 것이다’ 라는 설명도 역시 비논리적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리스→로마→서유럽(영국)→북아메리카 (미국) 으로 세계패권이 이동했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올바른 분석이라고 인정하는 경우, 패권국의 위치기 지리적으로 서쪽에 있었던 나라들이라는 것은 경험적인 의미(empirical import)는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서쪽에 있는 나라가 왜 다음번 패권국이 되었는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아무런 체계적인 요인들이 없다. 단지 서쪽에 있다는 이유로 아시아가 미국의 뒤를 이어 세계의 핵심지역이 될 것이라는 것은 정당한 설명이 될 수 없다. 사실 패권의 중심이 서에서 동으로 이동했다는 것도 올바른 분석은 아니다. 예로서 몽골은 13세기 당시 세계 제일의 패권국 이었는데 그렇다면 세계의 중심은 동쪽으로 이동한 적도 있었다고 말해야 한다.
아시아는 라이벌 국가들의 집합체
이상에서 제시한, 21세기는 아시아의시대가 될 것이라는 주장들의 문제점을 더욱 논리정연하게 분석한 책이 출간 되었다.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출신의 아시아 전문가 빌 엠모트가 저술한 “라이벌 들(Rivals)” 이라는 책인데 이 책의 부제 “중국, 인도, 일본의 세력 경쟁은 향후 10년의 세계를 어떻게 변모시킬 것인가” 가 말해주듯 이 책은 아시아는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전제로 출발한다.
요즘 유행하는 국제상식 “미국은 쇠퇴하고 아시아는 부상한다. 21세기는 아시아의 세기” 라는 주장은 오직 한 가지 전제가 충족 되는 경우에만 논리적으로 타당한 주장이 된다. 그 한 가지 전제란 아시아 국가들 수십 나라는 어떤 국제문제에 당면하는 경우라도 마치 아시아는 하나라고 인식, 한 나라처럼 똘똘 뭉쳐 함께 행동할 것이라는 점이다. 중국이 미국과 갈등을 벌일 경우 아시아 모든 나라가 중국편이 되어주고, 일본이 미국과 갈등하는 경우 아시아 전체가 일본을 지지하며, 인도가 미국과 경쟁하는 경우 아시아 모든 국가들이 인도를 지지할 것이 분명 하다면, ‘미국의 패권이 쇠퇴하고 아시아가 부상하고 있다’고 말해도 아무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아시아의 부상’을 ‘미국의 쇠퇴’와 상치 시키는 언급은 아시아 국가들은 하나라는 황당무계한 가정에 기초하는 것이다.
빌 엠모트는 아시아의 부상이 아시아와 미국 혹은 서양의 대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미국 혹은 서양의 힘의 중심이 아시아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는 더 나아가 “아시아는 하나가 아니며 아시아 지역에서 야기되는 급속한 경제 성장은,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아시아의 분열을 오히려 가속화 시킬지도 모른다. 아시아의 급속한 경제 성장은 오히려 아시아 사람들 끼리 서로 얼굴을 붉힐 일들을 야기할 것이다.” 고 주장한다.
엠모트는 사상 처음으로 아시아에 3개의 강대국이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시점이 되었다고 주장하는데 그가 말하는 3대 강국이란 중국, 인도, 일본이다. 아시아는 역사적으로 한나라가 압도적인 지위를 가지고 다른 나라를 지배했던 전통을 가지고 있다. 중국은 지난 1000년 동안 아시아의 압도적 패권국 이었다. 1945년 이후 아시아의 패권은 미국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미국은 냉전시대처럼 아시아에 대해 열정적인 정책을 펼치지 않으며, 미국이 아시아에서 차지하는 힘의 비중도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아시아의 3대국 일본, 중국, 인도는 과거처럼 약한 나라들이 아니다. 문제는 힘이 막강해진 중국, 인도, 일본 등 세 나라가 서로 좋아하며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나라들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나온다. 아시아의 3대국 중국, 인도, 일본은 서로 좋아하기는커녕 조화로운 공존도 곤란한 것이 현실이다. 결국 21세기 아시아의 모습은 19세기 유럽의 모습과 빘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19세기의 유럽은 강대국들의 갈등과 경쟁으로 특징 되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문제가 정리 되었다.
국제정치 체제는 패권국이 있는 경우 질서와 평화가 유지 될 수 있다. 압도적인 힘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힘을 행사하려는 의지가 있는 나라를 패권국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미국이 20세기의 패권국 이었다. 그런데 미국은 이제 더 이상 아시아에서 패권국의 역할을 담당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미 아시아 강대국들이 상호 경쟁을 전개하는 세력균형의 권력정치 (balance-of-power politics) 구도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 아시아 3대 강국은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물론이지만 경제적인 면에서도 경쟁관계에 빠져들고 있다.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대기업들이 유럽 혹은 미국의 회사를 사들이는 것이 경제 논리에만 입각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석유회사 유노컬을 사려는 중국의 노력을 미국 의회는 정치적인 논리로서 차단한 적이 있었다. 만약 중국의 국영기업이 일본의 철강회사 니폰 스틸(Nippon Steel)을 구매 하려 한다면, 혹은 중국 전자 회사가 일본의 전자회사 토시바를 구매하겠다고 나선다면 그 경우 일본은 어떻게 반응할까? 일본이 아무리 경제적인 침체 속에서 허덕인다 할지라도, 중국이 아무리 경제적으로 잘 나가고 있다고 할 지라도,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거의 없다. 중국과 일본, 인도는 상호간 경쟁자(Rival)들이기 때문이다.
아시아를 하나의 단위로 말하고 있지만 아시아를 구성하는 국가들은 다른 대륙보다 훨씬 다양하다. 아시아는 우선 종족, 인종적으로 너무나 다양하다. 언어 역시 다양하다. 인도의 언어는 계통적으로는 아시아가 아니라 유럽적이다. 아시아는 또한 종교적으로 너무나 다양하다. 세계 4대 종교(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 가 모두 아시아에 존재한다. 징기스칸에 의해 정복당했던 짧은 시기를 제외한다면 아시아를 ‘하나’의 단위로 볼 수 있었던 적이란 없었다. 엠모트는 아시아라는 개념이 아시아인들 대부분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단언할 정도다.
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지구적 파워 게임: 미국의 패권 정책
아시아의 3대 강국을 지정학적으로 본다면 일본이 제일 동쪽에 있고 중국이 가운데 있으며 인도는 중국과 국경을 접한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가운데 있는 중국은 동쪽의 일본과는 19세기 말엽 이후 20세기가 끝날 무렵까지 전쟁과 긴장의 연속이었다. 중국과 인도는 현재도 국경 분쟁 중에 있으며, 1962년 국경문제로 인해 전쟁을 벌이기도 한 라이벌이다. 2004년 이래 일본의 해외 개발원조 (ODA)의 최대 수혜자가 인도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일본과 인도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국제정치의 철칙인 원교근공(遠交近攻)의 원칙에 입각한 외교 정책이다. 인도와 일본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상호 제휴, 협력, 나아가 동맹을 맺음으로서 가까이 있는 위협인 중국에 대응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에서 펼쳐지고 있는 파워 게임 중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미국의 대 아시아 정책이다. 중국의 부상으로 미국의 위상이 흔들린다고 말하고 있지만 미국은 중국의 부상이 야기할 문제에 대해 군사적, 외교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한지 오래다. 미국은 중국이 아시아의 패권국이 되고 더 나아가 중국이 세계적 차원에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함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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