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바꾼 영웅의 그 날 '3·26'을 기억하자
인터뷰-민병돈 전 육군사관학교장
“3월 26일이 무슨 날인지 아십니까?”
경기도 의정부시 경민대학에 있는 석좌교수 연구실에서 만난 민 전 육사교장은 인터뷰에 앞서 대뜸 질문부터 꺼냈다. 질문 의도를 몰라 머뭇거리자 바로 설명이 이어진다.
“오는 26일은 안중근 장군이 순국하신 지 10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이걸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안중근 추모열기 아직 부족
민 전 교장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일본 우표 시트 하나를 꺼내 들었다.
“지난해 10월 일본 야마구치 현에서 나온 이른바 ‘이토 히로부미 몰후(歿後) 100년 기념 우표’입니다. 우리에게 이토는 천추에 잊을 수도 용서할 수도 없는 원수이지만 저들에게는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지도자요, 영웅일 테니 이런 우표를 발행했겠지요. 나는 이 우표를 보며 우리들은 안중근 장군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를 생각했습니다.”
민 전 교장은 올해 초부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3월 26일이 무슨 날인지 아느냐고 물었다고 했다. 안중근 장군 순국 100주년이 되는 해임에도 추모 열기가 낮은 것에 아쉬움이 많았기 때문이다.
“열 명을 만나 보면 한 명 정도만 3월 26일이 바로 안중근 장군께서 순국하신 날임을 겨우겨우 알아맞히더군요. 실망스러운 일입니다.”
현재 국가보훈처는 안 장군 순국 100주년인 26일에 공식 추모행사를 준비하고 있다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민 전 교장의 아쉬움이다.
“국가보훈처에서 추모 행사를 준비하고, 국방일보에서 안 장군 자서전 연재를 하는 등 곳곳에서 안 장군을 추모하고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행한 일입니다. 하지만 아직 안 장군에 대한 추모 열기가 약한 것 같습니다. 국가 차원의 행사도 규모가 작을뿐더러 국민 개개인 차원에서 안 장군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지 자각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민 전 교장은 안중근 장군을 이순신 장군과 함께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영웅으로 손꼽았다. “이순신 장군이 선비 같은 면모를 가진 분이라면 안 장군은 호방한 분이었죠. 안 장군은 청소년 시절 사냥을 즐겨 하고 마음 맞는 친구들과 어울려 술 마시며 가무도 즐기고 호방한 모습을 보이면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과감하게 행동에 나선 그런 결단력이 있는 분이죠.”
민 전 교장은 안 장군의 행동은 세계에 우리의 주장을 알리고 중국인들과의 연대를 통해 항일 독립운동의 지평을 넓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안 장군의 투쟁 뒤 열강의 언론은 일본의 한국 침략 야욕을 규탄했고 일본의 만주침략 야욕에 분노하던 중국인들의 가슴에는 항일의 불이 붙었습니다. 항일 투쟁의 흐름에 큰 영향을 끼친 겁니다.”
하지만 안 장군의 진정한 위대함은 이토 처단과 함께 재판과정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는 것이 민 전 교장의 설명이다.
“이토를 처단한 용기 그 자체로도 대단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안 장군이 보여준 당당한 태도와 항변, 논리 정연한 동양평화론은 적들마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일본인 간수와 관리마저도 옥중의 안 장군을 보고 존경했을 정도이니 말입니다.”
민 전 교장은 안 장군의 진면목이 드러난 순간은 죽음을 대하는 태도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목숨을 바친다는 것이 말은 쉽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죠. 하지만 안 장군은 최후 순간까지 당당함을 지켰습니다. 사형 선고를 받은 후 주변에서 항소를 권고했지만 단호하게 거절했지요.”
민 전 교장은 어떤 집단보다 특히 우리 군인들이 안 장군을 더욱 기억하고 그분의 정신을 마음 깊이 간직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안 장군이 남긴 휘호 중에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이 있습니다. 헌신이란 결국 목숨을 바치는 겁니다. 군인은 항상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해야 하는 신분이고, 그것을 실천한 사람이 안 장군입니다. 군인이라면 안 장군이 행동으로 실천한 그 휘호(위국헌신 군인본분)를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군인이 본 이순신론
민 전 교장의 특강 주제 중 하나는 이순신 장군이다. 이순신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이순신연구회에 초정받아 특강을 한 적도 있을 정도다. 요즘 리더십 분야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인기 주제 중의 하나다. 이순신 장군이 지녔던 장점에 대한 분석은 이미 다각도로 이뤄졌지만 민 전 교장이 바라보는 관점은 약간 색다르다.
“이순신 장군은 끊임없이 적정을 파악하고 있었어요.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전형입니다. 이처럼 이순신 장군은 여러 장점을 가진 분이지만, 군인의 처지에서 봤을 때 군기를 매우 중시하는 지휘관이었습니다. 도망을 가거나 전투준비태세에 소홀한 부하들에게는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엄하게 처벌했지요. 나는 바로 그런 점이 이순신 장군의 승리의 비결 중 하나라고 봅니다.”
‘부하들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부하들에게 엄한 지휘관’, 이것이 민 전 교장이 생각하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이다. 민 전 교장의 이순신론은 이순신연구회 회원들에게도 높은 평가를 받아 ‘9인의 명사-이순신을 말하다’(자연과 인문 2009)라는 책에 실리기도 했다. 군인의 관점에서 본 이순신론이라는 측면에서 민간 학계의 높은 관심과 깊은 공감을 모았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이 같은 이순신 장군론은 현역 시절 민 전 교장의 지휘철학과도 닮아 있다. 철저한 원칙주의자인 민 전 교장은 현역 시절 ‘엄하고 무서운’ 지휘관으로 유명했다.
“내 자랑 같아서 민망합니다만, 내가 부하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요. 부하들을 아무리 엄하게 대한다 해도 부하들을 인격적으로 예우하면서 진심으로 대하고 사랑하면 사람들은 그 진심을 느끼게 돼 있습니다.”
명강의 비결 -`투사처럼… 학자처럼…' 눈높이 교수법 적용
민 전 교장은 명강의로 유명하다. 아래로는 고등학생부터 위로는 50·60대 연령층의 완숙한 전문가 집단에 이르기까지 강의 대상도 가리지 않는다. 누구를 상대로 해도 감동과 교훈을 전할 수 있는 것이 ‘민병돈식 강의’의 특징이다. 전역한 지 21년이 지난 원로지만 지금도 기업이나 학교, 각급 사회단체를 대상으로 많을 때는 연간 50회 이상의 특강을 소화할 정도다.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지금 학교에서 가르치는 학생들은 손자뻘입니다. 이들 학생들에게 국민윤리 수업을 하면서 충(忠)과 효(孝)를 가르칠 때는 쉬운 말로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를테면 효를 가르칠 때는 부모를 사랑하는 것이 효라고 가르칩니다.”
‘사랑’이라는 신세대적인 표현으로 효를 설명한 후, 부모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친구를 사랑할 수 있겠느냐고 연결한 후 결국 충까지 연결시키는 민 전 교장의 논리가 무척 간결하면서도 매끄럽다. ‘야전에서는 투사 같은 철저한 군인 그 자체이면서도 강의할 때는 학자 같아 놀랍다’는 민 전 교장에 대한 세간의 평가에 새삼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 만큼 논리가 정연하다.
“평소 책을 놓지 않는 습관 덕분인 것 같습니다. 목동 집 지하에 서재가 있는데도 책이 넘쳐 복도와 계단에까지 책이 쌓여 있을 정도입니다. 군사학뿐만 아니라 어학·문학·예술·역사 등 여러 분야의 책을 꾸준히 읽어 왔습니다.” http://kookbang.dema.mil.kr/
국방일보 김병륜 기자 lyuen@dem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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