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김충배 장군 "우리의 안보태세는 超非常이다"
"군 고위 현역들이 도덕적 용기를 갖고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문제가 되면 스스로 책임 지면 됩니다"
"지금 우리의 안보태세가 超非常(초비상) 상태입니다" 전 육사교장 김충배 장군의 현 안보시국을 보는 첫 소리다. 그는 육사 생도들에게 보내는 글을 통해 언론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장본인이다. 육사교장을 끝으로 군문을 떠났지만 그에게서는 아직도 군인 냄새가 강하게 묻어나고 있었다. 아군 진지를 향해 포격을 가한 적에게 가차없는 응징을 위해 당장이라도 적진을 향해 "사격 개시" 불호령 명령을 내릴 것만 같은 야전 군인다운 펄떡거림이 목소리 자체에서부터 퍼져나고 있었다. 그래서 일까, 인터뷰 내내 기자가 느낀 그는 청년 같은 패기(!)와 함께 별 셋(중장)을 단 장군이기에 앞서 '영원한 군인' '참 군인'이라는 군인다움으로 강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군인다움은 그저 무장한 군인이기에 앞서 도덕적으로 상대에게 감동을 주는 신선미와 함께 전해지는 성정 그대로의 다정함도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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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육군사관학교 교장 김충배(예, 중장. 육사 26기) 장군. 그는 어느 순간 우리사회에 참 군인이 갖추어야 할 '도덕적 용기'와 '안보관'을 심어주며 사회 지도층의 입과 입을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지난 2003년 12월 현역 장군(육사교장)으로 후배 생도들에게 '우리 대한민국의 장래를 짊어질 개혁과 신진의 주체, 젊은이들이여!'로 시작되는 글이 인터넷과 언론을 통해 알려지며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전해 뜨거운 테마로 자리잡게 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사회 속으로 투영된 때문이기도 하다.
6군단장과 정보본부장을 역임하고 육군사관학교장을 끝으로 지난 2003년 예편한 뒤 국방연구원장을 지내고 현재는 앞으로 다가올 통일에 대비해 순수 민간운동으로 '통일기금 모으기 범국민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사)평화통일국민포럼의 대표 이사장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김충배 장군을 만났다.
지난 3월1일 뜻을 함께 하는 기업인, 학계, 안보분야를 대표하는 인사 300여 명이 모여 평화통일국민포럼 창립총회를 갖고 지방 조직, 각종 정책세미나 개최에 이어 11월23일 '통일기금 모으기 범국민운동'을 출범한 김 이사장은 환한 미소로 기자를 만나 포럼과 관련된 얘기는 물론 군에 대한 깊은 애정과 함께 후배 장성들에 대한 따끔한 질책도 마다하지 않았다.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포럼 집무실에서 1시간이 넘도록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 이사장은 통일에 대한 국민적 인식전환의 필요성과 우리사회 지도층의 리더십, 특히 도덕성을 겸비한 용기 있는 행동을 강조하고 젊은이들에 대한 기성세대의 눈높이 변화를 주문해 또 다른 인상을 주기도 했다.
최근 들어 이틀 걸러 한번 꼴로 여러 언론매체와 인터뷰가 이어지고 군부대를 비롯해 전국 각 처의 안보강연으로 매우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는 김 이사장과의 인터뷰 내용을 요약 정리했다.

▲ 오랜만에 뵙습니다. 포럼 활동으로 분주하실 줄 압니다. 요즘 근황은 어떠신지요.
-국방연구원장을 마치고 성우회에서 한중교류협회를 설립해 초대협회장으로 활동해오다 요즘은 군부대를 비롯한 여러 곳에 안보강연을 나가고 있습니다. 금년 초부터는 통일문제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조금 바쁘네요. 우리 관계자들 모두가 자원봉사로 활동하면서 보람과 긍지를 갖고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 꼭 필요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고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통일문제에 우리가 앞장서고 있다는 그런 자부심과 긍지라고 할까요.
▲ 우리 민족의 가장 큰 화두는 '통일'이라 할 수 있는데, 지난 11월23일 평화통일 국민포럼 출범식이 있었습니다. 평화통일포럼은 어떤 성격이며 어떤 활동을 하게 되는지 소개 해주시겠습니까?
- 비정치 비영리 순수 민간 활동기구입니다. 지금 우리사회에 통일의 기치가 번져 나오고 있는데 과거 3,40년의 통일 논의를 보면 통일정책이 부재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목표가 통일인데 통일정책은 없고 대북 정책만 난무했다는 것이지요. 각 정권에 따라 입맛에 맞게 정치수단으로 이용한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그 때 그 때 대통령의 신념과 이념에 따라 흔들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 정책은 온데 간데 없고 대북 정책만 있어 혼란에 빠졌다고 하겠습니다.
또 지난 좌파 정권 10년이 이어지면서 북한의 비위에 거슬릴까봐 이 문제 또한 터부시 되면서 자연스럽게 국민의 통일의지가 약화되었습니다. 통일에 대해 우리 국민은 반대자 없을 것입니다. 남북분단을 겪으면서 가장 큰 염원이고 소망이 통일인데 그 통일의지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래선 안되겠다 해서 나서게 됐습니다. 여기에는 지난 시절 군에서 안보를 담당했던 예비역과 엘리트 학자, 경제계 인사 등 삼위일체가 되어서 지난 3월1일 '평화통일국민포럼'을 출범시키게 된 것입니다.
공동대표로는 학계를 대표해서 김병묵 전 경희대 총장님과 경제계에서는 임도수 중견기업연합회 부회장님, 그리고 안보분야에서는 저, 이렇게 세사람인데 제가 막내이다 보니 대표 이사장을 하게 되었습니다.(웃음)
▲ 통일기금 조성을 위한 이 포럼이 지방에서부터 시작됐다고 하던데요?
- 네, '통일기금 모으기' 운동의 최초 시작은 전남 고흥에서 발단이 됐습니다. 정년 퇴직하신 김갑수 교장선생께서 백영훈 산업개발연구원장님의 우리 민족의 통일과 관련한 저서를 읽고 감동 받아 시작한 게 인연이 되었습니다. 2007년부터 시작했는데, 그 날짜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국치일인 8월29일입니다. 하루 한잔 커피 값(300원)을 절약해 통일기금으로 모으자는 운동인데, 103명의 회원들이 모은 700만원이 불씨가 돼 확산되게 되었습니다.
백영훈 원장님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비 유학생으로 독일에서 공부하고 경제학 박사 1호인 경제분야 전문가 이십니다. 5.16 혁명 후 박정희 대통령 시절 제1차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고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해 1억5천만 마르크(당시 3천만 달러) 차관을 빌려와 오늘의 경제성장을 이루는, 조국근대화의 핵심적 역할을 하신 분입니다.
우리 평화통일국민포럼이 출범하고 활동하는데도 백 원장님의 도움과 큰 뜻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얼마 전 통일독일 20주년을 앞두고 백 원장님과 함께 독일에 다녀오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통일독일의 현장에서 분단국가로서의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셨을 줄 아는데?
- 금년 1월15일 독일을 가서 1964년 박정희 대통령께서 국빈자격으로 서독을 방문해 우리 광부, 간호사들과 만난 곳을 비롯해 박 대통령께서 묵었던 호텔과 만찬장, 히틀러가 건설한 아우토반에서 차를 멈추고 브리핑을 받았던 지역들을 다 밟으면서 가난한 나라의 경제발전을 일으키기 위해 눈물로 호소하고 애를 쓰시던박 대통령을 생각하며 눈물 많이 흘리고 왔습니다.
우리가 독일을 가게된 이유는 백 원장님이 서독에서 유학생으로 공부하던 당시 지도교수이자 후일 우리나라에 차관을 지원해 주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신 포이트 교수라는 분이 계신데 1월17일이 포이트 교수의 탄신 1백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이분은 에르하르트(후에 총리) 당시 재무상과 절친한 친구였는데, 1백주년 탄신 추모행사를 하면서 감명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 날 탄신 추모행사에는 80세가 넘은 유럽 각지에 있는 120여 명의 제자 석학들이 참석했고, 광부로 갔던 현지의 우리 한국분들도 참석했고요. 독일의 제자분들이 우리 한국 일행을 환대해 소개하면서 그러더군요, "오래 전 우리가 한국을 도와주었는데 그 한국 사람들이 오늘 이 자리에 당시 스승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찾아왔다. 참으로 한국인 대단한 민족이다"하며 칭찬을 하며 전원이 기립박수로 우리를 환영했고, 그 장면이 다음날 신문에 크게 났습니다. 이를 호르스트 쾰러 대통령이 그 뉴스를 보고요, 그리고 다음달 2월에 우리나라를 방문습니다. 쾰러 대통령은 '통일'과 관련해 우리에게 조언하면서 "통일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뼈 있는 한마디를 하기도 했어요.
▲ 통일과 관련한 중국의 역할에 학자들의 의견도 분분합니다. 이사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또 통일을 위해서 시급한 것은 무어라고 보십니까.
- 우리역사를 보면 한반도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항상 중국의 개입이 있었습니다. 한국전쟁 때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그런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중국은 멀고도 가까운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통일에 또 필수적이고요. 지금 북한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중국에 예속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생필품의 70퍼센트가 북한 지하자원으로 장기계약을 맺으면서 가져가고 있습니다. 나진선봉지역 개발도 마찬가지입니다. 작년 원자바오 총리가 북한에 가서 압록강 대교 건설지원을 약속한 것도 단순한 게 아닙니다.
걸림돌이 되는 반면에 문화적 측면에서는 동일 문화권으로 공통점도 있지요. 문제는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4강의 인식입니다. 미국도 남북한이 통일되면 중국이 지정학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어 염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일본이나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들은 통일에 있어 걸림돌이면서도 후원자라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양면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외교적으로 잘 대처하면서 지혜롭게 나가야 합니다. 무엇보다 한미동맹이 굳건해야 하고 한미동맹이 굳건할 때 북한에 급변상황이 발생해도 중국이 함부로 군사적 행동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그래서 한미동맹과 더불어 남북이 중심돼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봅니다.
▲ 가치관이나 좌우명은?
- (웃음) 가치관이나 좌우명이라 할 것까지는 없고 제가 군 생활하면서 느낀 것은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거기에 리더십 변화속도가 이런 마인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봅니다. 군인의 '패기'하면 목소리만 크게 내 답변하면 '군기가 섰다'고 보는데 아니죠. 내면적 기강이 가장 중요합니다. 국력하면 인구, 자원, 영토에다 곱하기 무형적 요소인 국민의 의지와 사기를 들듯이 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기와 군기가 곱해져야합니다.
사기와 군기, 의지는 무형전력이며 유형의 요소에 무형전력이 곱해져야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유형이 크다해도 무형이 제로이면 제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무형전력을 등한시하고 있어요. 최근에도 그렇습니다. 군에서 전투체육을 없앴는데, 배경으로 보니 주5일제가 되다보니 교육훈련이 시간이 부족해서라고 해요. 그래서 금요일 오후에 정훈교육을 하고 다음날 간부들이 없는 가운데 체육활동을 하니 이게 제대로 되겠습니까? 강제밖에 되지 않고 (병사들에게는) 사역이나 마찬가지지요.
전투체육은 무형전력 차원에서 된 것입니다. 그냥 체육활동이 아니고 지휘관과 부하, 선임자와 후임자가 의기투합돼 운동을 통해 하나되고 막걸리 한잔을 주고받으며 다독거리면서 서로가 하나로 되어 가는 과정 그 자체가 중요한 것입니다. 교육훈련 시간이 없다해서 한 것은 발상자체가 잘못이지요. 그래서는 안됩니다.
리더십이 가장 문제입니다. 리더십이 가장 중요하고 그 핵심은 '노블리스 오블리즈' 입니다. 또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나보다 힘이 없고 약한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야지 자기위주로만 하면 안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뀌고 정착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많이 발전했지만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우리 군의 전력을 강화하는 것도 좋지만 서로의 신뢰를 키우면서 무형전력 창출에 힘을 쏟아야 할 때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군 수뇌부가 정신차려야합니다.
▲ 육사 교장 재임 당시 작성한 글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 언론이나 사회각계에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인터넷 등에서 널리 회자되고 있는데 당시를 한번 돌아봐 주시겠습니까?
- 2003년 12월입니다. 육사 교장으로 있으면서 가입교하는 생도들에게 무기명으로 설문을 받았는데 우리의 주적(主敵)이 미국 34% 북한 33%로 답을 했습니다. '큰일났구나' 하면서 생도들을 강당에 모아놓고 우리 조국의 근대화 과정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를 그대로 교육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척 산만하던 생도들이 1분 여가 지나면서부터 조용해져요. 그러더니 어느 순간에 눈물을 닦아 내는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정신교육이 끝나고 제 이메일로 생도들의 글이 막 들어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우리들의 지금 풍요가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의 피와 땀의 결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부모님과 할아버지, 할머니를 잘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 글은 생도들에게 정신교육을 하기 위한 내용이었고, 나중에 당시 남재준 참모총장께 지휘보고를 드렸더니 반응이 좋으면 정신교육교재로 제작해 보라고 말씀을 하시더군요.
그런데 그 내용이 처음 동아닷컴을 통해 알려지게 되고 인터넷과 주요 중앙일간지를 통해 알려지면서 찬반논란이 뜨겁게 달궈지는 것을 봤습니다. 당시 우리 참모들도 이런 내용으로 교육하고 이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반대하고 말렸습니다. 왜냐하면 박정희 대통령 이야기가 들어가니 노무현 정부에서 싫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젊은 생도들에게 필요하니 해야 한다. 나에게 맡겨라"해서 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그렇게 파장이 크게 된 것은 그 때 사회 분위기가 심각하게 反美를 주장하는 세대들의 데모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누군가 쓴 소리를 해주었으면 하는데, 현직 군장성인 육사 교장이 그런 말을 하니 더 크게 퍼지게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상황이 어려울 때일수록 중요한 것은 도덕적 용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국가나 타인을 위해서 하는 게 용기고, 그게 지도자가 지녀야할 덕목이라고 봅니다.
▲ 요즘 공직자, 특히 군 장교나 장성에 대한 사회적 질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야성'이 부족하다는 얘기도 있고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천안함 폭침은 일단 경계 작전의 실패입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먼저 책임은 우리 정부와 정치인들이 책임을 져야합니다. 정부와 정치인이 군인들로 하여금 그렇게 (높은 곳을)쳐다보게 한 게 근본 원인입니다. 그리고 군(軍)도 자기 보신에 연연해 사실을 숨기거나 해명에 급급하다 보니 국민의 신뢰를 져버린 데 있습니다.
보안에 저촉되는 내용에 대해서는 "보안상 이해"를 구하고 그렇지 않은 어차피 알려질 내용이라면 처음부터 먼저 치고 나가면 그런 문제는 되지 않으리라 봅니다. 숨기려 하니 불신이 생기고, 불신이 가장 큰 문제인 것이지요. '보신주의' 마인드를 개선해야 합니다.
이번 연평도 사건도 그렇습니다. 왜 전투기가 때리지 않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북한의 의도는 내부의 세습체제 문제에 기인한 것으로 알려지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피해가 있다해도 공중전을 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통일 안보를 위한 절호의 기회를 주었는데 놓쳤다고 봅니다. 군 고위직에 있는 현역들이 도덕적 용기를 갖고 나가면 됩니다. 그리고 문제가 되면 스스로가 책임을 지면 됩니다. 용기가 부족한 것입니다.
▲ 우리의 안보태세가 비상입니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수 있고 보강해야할 점도 많겠지만 현 상황에서 우리 국방 체제가 갖추어야 할 점은 무어라고 보십니까? 합동성 강화를 위해 통합군제나 3군 본부가 서울로 와야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 우선적으로 한미동맹이 매끄럽게 잘 되어야 합니다. 3군 본부가 서울에 있을 때 한미 양국 군이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은 것은 사실입니다. 계룡대로 가면서 그만큼 접촉이 뜸한 것도 사실입니다.
비록 3군 본부가 서울에 위치하지 않는다 해도 미군이 평택으로 이전하게 되면 수도권과 연계되는 그쪽으로 가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수도권에 위치한 그 자체가 하나의 인계철선이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국회에 국방장관이 나가거나 통수권자 회의에 가면 합참의장이 지휘를 합니다. 합참의장은 군을 지휘하는 군인입니다. 그런데 장관이 답변하는 자리에 합참의장이 참석합니다. 왜 합참의장이 그 자리에 있습니까? 합참의장은 전쟁을 지휘하는 핵심자로 통수권자를 보좌해야 합니다.
▲ 우리 젊은이들의 안보관이나 의식이 기성세대에게 미덥지 않은 점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연평도 포격 이후 해병대에 지원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젊은 세대를 어떻게 보시고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 젊은이들의 가치관 이전에 기성세대가 이해해야 할게 있습니다. 철저하게 합리주의고 현실주의입니다. 중요하다 해도 합리적이 아니면 따라오지 않습니다. 젊은이들에게는 보수냐 진보냐를 따지지 않습니다. 다분히 그들의 특성은 합리성과 실용성, 현실성이라는 겁니다. 우리 기성세대가 발을 맞추지 않으면 안됩니다. 맞춰나가야 합니다.
운동선수나 연예인 등 군을 기피하기 위해 치아를 뽑고, 어깨를 탈골시킨 숫자가 200여 명 정도 된다는 사실입니다. 거기에 비해 외국 국적을 갖고 있거나 몸이 불편해 신체적으로 불합격 맞은 젊은이들 6,300여 명 중 자기 돈으로 질병을 고치고 군대를 가겠다고 한 인원이 3,350명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미래는 이상 없다고 봅니다.
17세 이하 여자축구가 우승했는데, 그 친구들은 축구를 즐기면서 했다고 했습니다. 거기서 젊은이의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걸 알고 서포트 하면 됩니다. '군기'도 마찬가집니다. '군인복무규율'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문제는 많은 지휘관들이 제대로 적용하지 않고 자발적 여건을 만들지 않은 채 통제나 지시만 하니 부딪치는 겁니다. 옛날 잣대로 보지말고 현재를 봐야 합니다. 우리 젊은이들 나약하거나 비겁하지 않습니다.
▲ 통일운동을 전개하시면서 우리 사회의 인식이랄까 미비한 점, 그리고 고쳐나갔으면 하는 점이 있다면.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습니까?
- 독일은 철저히 준비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배상금으로 경제적 어려움은 있었으나 안보에는 이상이 없었습니다. 독일은 자원이 풍부하고 영토도 넓으며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나라입니다. 20여 년 만에 세계 2위권 경제부국으로 부상했었습니다. 올해가 통일독일 20주년이지만 아직도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하나는 경제적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이념 갈등입니다.
독일 통일 당시 동독은 서독에 비해 국민 소득의 40퍼센트 수준이었습니다. 지금은 80퍼센트까지 끌어 올렸지만 2조 달러를 쏟아 부었습니다. 지금도 이념과 가치관의 갈등은 계속되고 동독인들이 서독에 살다가 다시 동독으로 간다고 합니다. 그에 비해 우리는 경제력도 미흡합니다. 동서독은 교류도 활발했습니다. 우리는 지난 65년 동안 완전 차단되었습니다. 남북이 서로 분열돼 싸웠습니다. 가치관과 이념갈등의 폭은 독일에 비할 바가 되지 않습니다. 상당한 문제지요.
현재 현실을 보면 염려가 많습니다. 국론이 분열되는데 이분법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를 또 교묘히 이용하는 정치권이 큰 문제지요. 그래서 우리가 순수 민간운동으로 나서 통일기금을 모으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는 모르나 1천만명 회원을 확보해 국론을 통일하고자 하는 겁니다.
여기에는 보수세력만이 참여하는 게 아니라 진보 개혁세력도 참여합니다. 친북 종북세력을 제외한 절대 다수 국민이 참여케 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선을 긋고 있습니다.
앞으로 전국 16개 광역시도에 포럼을 조직해 나갈 계획입니다. 정치인을 제외한 순수한 민간 비영리운동으로 해외 지부까지 설치해 통일을 위한 하나의 작은 밑거름이 되고자 합니다.
▲ 바쁘신데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이 평화통일국민포럼 운동이 전국으로 크게 확산돼 우리의 숙원인 자유민주주의 평화통일 달성에 큰 촉매제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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