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년전 동해 당포함의 교훈을 잊지말자
동해 최북단 NLL 근해에서 임무수행 중 북한군의 해안포 기습포격으로 승조원 79명중 39명 전사..역사는 반복되고 있는데 대비책은 제자리 걸음
|
당포함은 1967년 1월 19일 동해 NLL근해에서 어로보호작전에 참가하여 어선단을 통제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날 14시 20분 경 갑자기 어로통제선 북쪽으로부터 북한 PBL형 경비정 2척이 평화스럽게 조업하고 있는 우리 어선들에 접근, 납북(拉北)을 시도했다. 당포함은 이를 저지하기 위하여 연안으로 접근하여 우리 어선들을 남하시키고 있을 때 북한군 육상 해안포대(122mm)가 기습포격(280여발)을 가해온 것이다. 당시 당포함은 우리 어선단을 가로막아 방패 역할을 하면서 함포(3인치/76mm, 40mm) 170여발을 적 해안포 진지로 대응사격을 가했다.
육상에 있는 많은 적 해안포대의 집중공격을 받은 당포함 장병들은 끝까지 용전분투하였으나 이날 14시 34분, NLL 근해에서 침몰위기에 놓였다. 당포함의 피격 소식을 접한 해군 동해경비사령부 예하 함정 중 현장에 제일먼저 도착한 우군함(53함)은 화염에 쌓인 당포함을 구조코자 예인을 시도했으나 이미 그 때는 함체가 우현으로 많이 기울어 예인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해바다 한 가운데에 또 하나의 남북분단의 커다란 아픈 상처의 한을 남긴 채 당포함은 영원히 그 모습을 감추었다.
이때 애석하게도 39명의 전우들은 애함(愛艦)과 함께 최후를 마쳤다. 우리 해군에서는 당포함과 함께 산화한 영령을 위로하기 위하여 이튿날인 1월 20일, 동해경비함대 기함(旗艦) 함상에서 당시 해군참모총장을 위시하여 많은 장병들이 참석한 가운데 합동 진혼식을 올리고 그 넋을 달랜 바 있으며 1월 27일 해군장으로 서울국립묘지에 안장하게 되었다. 승조원 79명 중에 39명이 전사하고 30명이 부상했다. 전사자는 장교 2명, 부사관 19명과 수병 18명이다. 전사자는 모두 1계급 특진되었고 충무무공훈장과 화랑무공훈장이 수여되었다.
이렇게 당포함은 천둥치는 포연과 엄동의 바다위에서 300여척의 어선과 많은 어민의 생명을 구하고 조국과 민족의 방패되어 그 생애를 마친 것이다. 당포함 장병들은 군인의 길이 비록 어렵고 힘들다 하더라도 이 길이야말로 사내대장부로 태어나 가장 보람된 삶임을 알았던 참된 군인이었다. 그 위훈은 하늘이 알고 온 국민이 알며 길이 우리의 역사에 빛날 것이다. 비록 그 생애는 짧았다하더라도 우리 해군 전 장병의 뇌리에 길이 아로새겨지는 참으로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생애였음을 거듭 강조하고 싶은 바이다.
이런 천인공노할 무력도발을 누가 지시했는가?
바로 북한 김정일이다. 당시 김정일은 25세로 이미 군권(軍權)을 장악하고 후계자 업적에 눈이 멀어 있었다. 황장엽 선생(前 북한노동당비서, 1997년 한국으로 망명, 2010년 87세로 서거)의 회고에 의하면 김정일은 18살부터 후계자의 야망을 실천에 옮기고 있었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군권을 장악했다.
그리고 북한은 1962년 12월에 4대 군사노선(전 인민의 무장화, 전 국토의 요새화, 전군의 간부화, 전군의 현대화)을 채택하여 군사력 증강을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이들은 우월한 경제력을 이용하여 1966년에 동·서해 NLL주변에 해안포 진지를 구축했다. 군사력에서 대남 우위에 서게 되자 무력도발을 시작한 것이다.
그 이후 자신감에 찬 김정일은 잔악한 무력도발을 계속했다. 1968년 1월 21 북한 무장공비(武裝共匪) 청와대 기습미수사건, 1968년 1월 23일 美해군정보함(푸에블로) 납치. 1968년 10월 30일~11월 2일간 무장공비(120여명) 울진·삼척지구 침투, 1969년 4월 15일 동해상 미군정찰기(EC-121) 격추 등이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
당시 북한은 한국에 비해 군사력과 경제력 모두에서 앞섰다. 그리고 김정일은 후계자로서 야심을 키워오고 있었다. 이것은 현재의 남북한 안보상황과 유사한 시사점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김정은은 2008년 8월 김정일의 뇌졸중 이후 군권을 장악하기 시작하여 2010년 9월에 후계자로 공식 내정되었다.
북한은 핵무장과 재래식 전력에서 한국에 비해 우세하다. 김정은(27)은 과거 김정일이 해온 대남도발을 2010년부터 26세의 나이에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대북 억제력을 위해 군사력 증강에 서둘러야 한다. 그리고 김정일-김정은 세습을 국제사회와 공조하여 철저히 막아야 할 것이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다. 끝으로 조국을 위해 끝까지 용감하게 싸운 우리 해군 당포함 장병들에게 무한한 존경과 경의를 보낸다.(KONAS)
김성만(예비역 해군중장. 성우회/재향군인회 자문위원, 전 해군작전사령관)
경제력과 군사력이 앞서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정신무장이다. 군사력은 알 수 없다. 걸프전이나 이라크전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전에서 보았듯이 우세하다고 결정된 것은 없고,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으나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정신력과 국민의 혼이라 말한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
2011-01-18 오후 2:3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