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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선거를 통해서 본 시민운동과 정치

서경석, “애국심만 가지고 나라 위해 헌신하는 우파시민사회의 전열 재정비해야..”

Written by. 최경선   입력 : 2011-10-14 오전 10:3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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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우파시민사회의 전열 재정비가 있어야 한다. 시민사회가 먼저 크게 반성하고 정체성을 분명히 한 후에 대동단결해 오로지 애국심만 가지고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시민연대활동이 있어야 한다.”

오는 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서경석 선진화시민행동 상임대표는 서울시장 선거에 대처하는 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 서경석 선진화시민행동 상임대표가 바른사회 시민회의가 주관한 '서울시장 선거를 통해서 본 시민운동과 정치' 토론회에서 발표하고 있다.ⓒkonas.net
 
 13일 오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이 날 토론회는 시민후보를 자임하는 박원순 후보가 야권의 서울시장 단일후보로 결정되면서, 정치적 중립을 핵심가치로 하는 시민운동과 정치권의 관계, 이후 한국의 시민사회의 향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현실에 비추어 ‘서울시장 선거를 통해 본 시민운동과 정치’를 주제로 했다.

 서 대표는 먼저 한국 시민사회 운동의 흐름을 재야운동 시대, 시민운동 시대, 애국운동 시대로 구분해 시민운동 방법과 특징들을 설명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친북좌파에 대한 우려의 결과로 이명박 정부가 탄생했지만 이명박 정부가 “겸손한 자세로 광범위하게 인재를 구하지 않고 범보수 연대를 구축하지도 않았다”는 점을 최대의 실수로 지적했다.

 또 “이명박 정부가 국정방침을 이해시키는 소통에 실패해 정권 출범이후 지금까지 우파 시민운동은 조금도 성장하지 않았다”며 이명박 정부가 건강한 중도우파 시민단체들을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함을 강조했다.

 서 목사는 안철수 현상에 대해서도 “건강한 중도우파 시민운동이 부재한 데서 오는 정신적 공황현상”으로 진단하고, “중도우파 시민운동은 우리나라 최대 세력인 종북좌파와 결연하게 맞서고, 포퓰리즘과 결연하게 맞서며, 기득권세력의 횡포와 독점으로 피해당하는 사람들을 대변하고, 긍지를 지닌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주장을 펴야 한다”며, 우파시민운동이 확실한 이념을 가진 운동으로 자기정립을 해야 함을 주장했다.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나경원 의원에 대해서도 “박원순 후보가 종북좌파와 연대하는 점을  공격의 핵심 포인트로 삼지 않는 점과, 나후보가 갖고 있는 웰빙 이미지” 등 두 가지를 선거운동의 맹점으로 지적하고, “부족한 이미지를 보완하기 위해 개혁적인 우파시민세력과 연합해서 공동정권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다음은 서경석 목사의 발제문 전문임.

1. 재야운동의 시대

지나간 박정희, 전두환 시대에 한국의 주류 시민사회운동은 반체제적 재야운동이었다. 권위주의 체제가 사회 각 분야를 포섭하고 포섭당하기를 거부하는 세력을 탄압했기 때문에 당시의 시민사회운동은 반체제적 운동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암울한 시대에 만난을 이겨내며 독재와 싸우기 위해서는 흑백논리적 이념으로 무장할 수밖에 없었고 나아가 혁명사상까지도 스스럼없이 수용하였다.

그랬기 때문에 당시 재야운동의 중심세력은 김일성주체사상(NL), 맑스레닌주의(PD), 모택동주의 등으로 무장했고 이에 따라 내부의 이념투쟁도 심각하였다. 반면에 기독교운동은 민중신학론, 해방신학론 등의 또 다른 흑백이념으로 무장하였다. 이러한 흑백논리는 엄혹한 상황에서 적(敵)의 정체를 명확히 하고 아군(我軍)을 단결시키는 데에는 매우 큰 도움이 되었으나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흑백논리는 자기반성적 성찰 능력을 키워주지 않아 87년 민주화 대항쟁을 거쳐 민주화과정에 진입한 후에는 사회운동이 변화된 상황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데 큰 장애가 되었다.

세상이 변하여 일반 대중이 일상생활에서 하나도 정치적 억압을 느끼지 못하고, 합법적으로 자기의 의사를 표출시키는 기회를 만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야운동이 이에 적응하기를 거부하고 비합법 운동을 계속하며 모든 잘못을 미국과 노태우정권의 탓으로 돌리고 사회주의만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생각은 일반국민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재야운동은 점차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하게 되고 87년 6월 민주화대항쟁 당시 재야운동을 지지했던 도시의 중간층은 이러한 지지를 철회하고 다시금 보수화의 길을 가게 되었다.

2. 시민운동의 시대

2-1 경실련의 출현

1989년 7월 경실련의 출범은 시민사회운동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갖는 대사건이다. 경실련 창립자들은 우리 사회가 보수화의 길을 가는 모습을 보면서 크게 걱정하였다. 방금 권위주의 체제에서 민주사회로 전환을 시작하면서 산적한 개혁과제를 앞에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다시 보수로 회귀하는 것은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실련 창립자들은 보수화를 막는 방법이 재야세력의 강화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재야세력이 커질수록 우리사회는 그 반동으로 더욱 보수화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바른 해답은 보통시민들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시민운동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 보통 시민층은 과거에는 재야운동에 의해 길거리에서 구경만하는 기회주의자로 비난 받았지만 혁명으로 정권이 바뀌지 않고 투표로 정권이 바뀌는 세상이 되면 오히려 정권의 향배를 결정하는 세력이 된다.

이들은 안정 속의 개혁을 원하는 세력인데 안정보다 개혁을 원하면 야당을 찍고 개혁보다 안정을 원하면 여당을 찍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시민들(중간층)의 의사에 따라 정권의 향배가 결정되기 때문에 이들이 신뢰하는 사회운동이 가장 큰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경실련은 출범하면서 자신을 시민운동으로 명명하고 보통시민이 주체가 되는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천명하였다.

경실련은 운동방법론에서도 재야운동과 전혀 다른 입장을 취했다. 첫째로 이제는 더 이상 비합법운동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일단 정부가 합법적인 공간을 허용한 이상 합법적인 방식으로 운동을 전개해야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둘째로 계급적 입장을 포기하고 사회적 공공선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거처럼 정치권력이 기득권과 결탁하여 기층운동을 억압할 때에는 민중의 편에 서는 것이 정의로운 것이지만 누구든 합법적으로 집회 및 시위를 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뿐 아니라 약사, 의사, 한의사, 교사가 다 자신의 의사를 마음껏 분출시킬 수 있는 상황에서는 시시비비를 가려서 누구의 입장이 사회적 공공선에 부합하는가를 따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노동자가 탄압을 당하고 있는지, 아니면 집단이기주의를 표출시키고 있는 것인지를 분별해야 한다. 그래서 노동자가 탄압당할 때는 그들의 편에 서지만 집단이기주의를 표출시킬 때에는 기업주의 편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 경실련의 생각이었다.

셋째로는 이제 더 이상 변혁론으로는 국민을 설득할 수 없고 합리적 대안모색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제는 길거리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데모하는가가 중요하지 않고 도덕성을 견지하면서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전문적 역량을 가진 운동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넷째로 경실련은 우리사회의 발전이 시장경제의 역동성에 기초하되 다만 시장이 가져다주는 빈부의 양극화현상을 정부가 개입하여 시정함으로써 경제성장과 사회적 형평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기업을 적대시하면 안 되고 기업인까지도 시민운동에 동참시키고 기업인과 노동자를 생산자계층이라고 한다면 생산자 계층의 편에 서서 불로소득 계층과 맞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경실련은 재야운동으로부터 개량주의라는 비난을 받았고 기득권층으로부터는 얼굴을 바꾸어 나타난 또 하나의 재야운동으로 간주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경실련은 우리사회의 주류 사회운동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5년 후에는 시민운동이 완전히 재야운동을 대체하게 되었다.

2-2. 참여연대의 출범

1994년 참여연대의 출범 역시 시민운동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참여연대의 출범은 마지막까지 재야운동에 남아 있었던 사람들이 시민운동으로 전향함으로써 재야운동이 소멸하는 것을 의미했지만 동시에 재야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진보적인 시민운동이 등장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경실련이 과거의 재야운동과 선을 긋고 재야운동과는 전혀 다른 철학을 가지고 출범한 단체였다면 참여연대는 재야세력이 사회주의 혁명노선을 포기하고 시민운동에 합류하기는 하였지만 계급주의 노선의 유지와 북한에 대한 무비판, 그리고 비합법 운동론의 유지라는 점에서 지난날의 재야운동을 계승한 단체였다는 차이를 갖는다.

그리고 진보적 시민단체의 출범에 이어 좌파 이념으로 무장한 386세대가 시민운동의 실무자로 들어오면서 시민단체들은 점점 더 좌편향으로 흐르게 되었다. 이로 인해 94년에서 2천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한국의 시민사회는 경실련식의 온건시민운동과 참여연대식의 진보시민운동의 각축시대를 맞게 되었다. 두 단체는 부정부패, 경제정의, 시민참여 문제 등에 있어서는 노선차이를 드러내지 않았으나 노사문제, 남북관계에서는 선명한 차이를 드러내었다.

경실련이 노사문제에서 시시비비의 입장이었다면 참여연대는 親勞의 입장을 분명히 견지했고, 북한문제에 있어서도 경실련이 북에 대해 종종 비판적이었다면 참여연대는 반미친북의 입장을 분명하게 견지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은 이러한 노선차이를 감지하지 못했다. 단지 과거에는 온건했던 시민운동이 강성이 되었다는 느낌을 가졌을 뿐이었다.

2-3. 2천년 낙선낙천운동의 의미

2천년 낙선낙천운동은 시민운동 성격의 변화를 가져다 준 대사건이었다. 낙선낙천 운동은 초기의 시민운동이 견지한 기본성격을 전면적으로 뒤집었다. 낙선낙천운동은 선거법은 악법이기 때문에 지키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낙선낙천운동이 국민의 열렬한 지지를 얻었기 때문에 국민으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낙선낙천운동이 정한 낙선자 리스트는 無誤한 것이라 하여 일체의 변경을 허용하지 않았다.

결국 낙선낙천운동은 초기 시민운동의 합법노선을 거부하고 법위에 군림하면서 스스로 판관이 되어 정의의 잣대를 독점하는 운동으로 국민 앞에 보인 셈이고 결과적으로는 시민운동의 묘혈을 판 운동이 되었다. 낙선낙천운동은 당시에는 한 달 내내 일면 톱기사였지만 이 운동으로 인해 시민운동은 더 이상 공정성을 추구하는 운동이 되지 못하고 국민에게 편향적인 시민운동으로 비쳐지게 되었다. 그 결과 낙선낙천운동은 특정정당을 지지하는 운동으로 간주되었고 영남지역에서는 오히려 반작용을 일으켜 야당세력의 확대를 초래하였다.

뿐만 아니라 낙선낙천운동은 비합법운동 노선으로 인해 국민앞에 법과 질서를 호소할 수 있는 도덕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우리사회에서 포퓰리즘이란 용어가 유행하게 된 것도 낙선낙천운동 때문이었다. 원래 시민운동은 옳고 그름의 판단을 다중의 여론에 의존하지 않고 시민운동가 개인의 양심적 판단에 의존했었다. 이러한 시민운동이 낙선낙천운동을 겪으면서 포퓰리즘 운동으로 전락한 셈이다. 그런데 낙선낙천운동의 폐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제까지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시민운동이 두려움의 대상으로 변했으며 시민운동의 권력화 현상이 강화되었다. 뿐만 아니라 시민운동 내부의 동맥경화 현상으로 언로가 막히고 낙선낙천운동을 비판한 사람들은 거꾸로 시민운동에서 추방당했다. 낙선낙천운동을 계기로 진보적 시민운동과 온건 시민운동과의 각축은 진보적 시민운동의 승리로 결판이 났지만 이로 인해 그 후의 시민운동은 홍위병적, 좌편향적 성격을 더욱 강화시켜 가게 되었다.

2-4. 미선이효순이 촛불시위

2002년 말의 미선이효순이 촛불시위 역시 한국의 시민사회운동 역사에서 또 하나의 전기가 되었던 사건이다. 이 시위의 가장 큰 의미는 노무현 정권의 등장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그 외에도 이 사건은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첫째는 한국의 진보적 시민운동과 좌파세력이 결탁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박원순, 최열과 같은 시민운동 지도자들은 미선이효순이 사건이 평등한 한미관계에 대한 문제제기를 넘어서서 반미운동으로 비화하는 것을 막아내지 못했다. 이로 인해 우리국민은 진보적 시민운동과 친북좌파운동을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반미친북세력에 대한 규탄이 커질 때 진보적인 시민운동도 함께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이제 와서는 이 둘의 구분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둘째는 미선이효순이 촛불시위가 반미운동으로 발전하면서 우리사회의 우파세력이 위기의식을 심각하게 느끼고 결집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조용히 지내오던 우파들이 궐기의 명분을 갖고 행동하는 사회세력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한국의 사회운동은 종래의 진보 내지 중도 중심의 운동에서 보수와 진보의 대결구도로 전환되었고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등 우파시민운동이 등장하고 나아가 국민행동본부,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등 극우세력의 결속도 강화되었다.

3. 애국운동의 시대

3-1. 뉴라이트 운동의 등장

2004년 가을 뉴라이트 운동의 등장은 우리나라 시민사회운동사에 또 하나의 획을 긋는 대사건이다. 노무현정부가 국가보안법, 과거사법, 언론법, 사학법의 개폐를 밀어붙이고 편가르기를 하면서 우리사회는 또 다시 심각한 좌우 대결국면으로 들어서게 되었고 노정권에 대한 심각한 민심이반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으며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뉴라이트 운동, 선진화운동이 새롭게 등장하면서 국민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선진화국민회의나 기독교사회책임은 스스로를 우파운동이라고 칭하지 않았지만 언론은 선진화운동을 뉴라이트 운동의 한 갈래로 취급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뉴라이트의 등장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나라가 과거 권위주의시대에서 민주화 시대로 전환하면서 종래의 재야운동이 민주화 시대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서 시민운동이 재야운동을 대체하게 되었다면 이번에는 시민운동이 좌편향으로 흐르면서 한국사회의 위기국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게 되자 이를 대체하기 위해 뉴라이트 운동이 등장했다고 할 수 있다.

권위주의사회에서 민주화사회로 전환과정은 나라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이 과정은 순탄하지 못하다. 성숙되고 良識있고 절제된 민주주의로 가기 보다는 민주주의의 과잉현상으로 치닫는다. 한국의 경우에도 민주화과정은 김영삼 정부에서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면서 좌편향으로 치달았다. 그리하여 집단이기주의와 포퓰리즘이 난무하고 사상의 자유를 과도하게 주장하고 과도한 경제민주주의를 요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민주주의 과잉현상은 심각한 사회위기로 이어졌다. 우리나라가 꼭 이러한 위기를 경험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터인데 민주화과정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원치 않는 결과를 만난 것이다.

특별히 노무현 정부는 이점에서 책임이 크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부에 이르는 기간 동안 정부는 어느 한편에 크게 치우치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시민운동은 특정정당을 지지하지 않았고 정치적으로도 중립을 표방할 수 있었고 정책에 대한 시시비비만 가릴 수 있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에 들어와서는 좌편향과 편가르기가 심해지면서 더 이상 중립적인 시민운동이 존립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시민운동은 親정부와 反정부, 좌파와 우파로 나뉘어지게 되었으며, 특별히 우리사회가 좌편향 및 민주주의 과잉으로 치달으면서 나라를 좌파세력으로부터 지키고 나라를 선진화하기 위한 애국운동이 절실하게 요청되게 되었다.

뉴라이트 운동, 선진화 운동은 지금을 위기상황으로 진단한다. 이 상태로 가면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기 어렵게 된다. 우리나라가 급속도로 고령사회로 가고 있어서 향후 15년 내로 선진국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처럼 년 4%의 경제성장으로는 국민소득 3만 불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회분위기를 혁신하여 브라질, 아르헨티나, 체코처럼 선진국의 문턱까지 갔다가 다시 주저앉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이를 위해 선진화세력을 구축하여 이를 저해하는 세력을 강력하게 제압해야 한다.

이러한 뉴라이트 운동은 과거에 군사독재체제에 협력한 전력이 있는 올드라이트가 아니라 민주화 운동의 경험을 지닌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고 따라서 좌파와의 대결에서 큰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3-2. 맥아더동상 철거사건

2005년 9월에 있은 맥아더동상 철거시도 사건은 또 하나의 큰 획을 그은 사건이다. 이 사건은 우리사회에 친북좌파세력이 강력하게 포진되어 있음을 국민에게 눈으로 보여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맥아더 동상 철거사건 이전에는 대부분의 국민이 우리나라에 친북좌파세력이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을 믿지 않았다. 공산권이 망하고 북한도 비참한 상황 속에 있는데 한국에 어떻게 친북좌파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북좌파는 극우세력이 진보세력을 메카시즘적으로 공격하는 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맥아더동상을 철거하려 한 세력은 친북좌파라는 말 이외의 다른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세력이었다. 그 당시에 김일성에 의해 통일되었어야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은 민노총, 민노당, 전교조, 한총련, 전농, 범민련, 진보연대 등 3-40만명의 우리나라 최대의 세력이었다. 이들은 구(舊)좌파처럼 사회주의혁명을 지향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계급주의적, 수정주의적 역사관을 가지고 세계화를 반대하고 평등주의에 집착하였고 반미친북의 입장에 서서 북한인권 문제 제기를 반대하고 국가보안법의 즉각 폐지를 주장했다. 그리고 이들은 그 후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시위를 주도하고 비무장한 군인들을 공격하여 수십명을 부상시켰다.

이러한 사건들은 우리국민으로 하여금 친북좌파 척결이 가장 중요한 시대적 과제임을 깨닫게 만들었고 친북좌파세력이 활개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무조건 한나라당으로 정권 교체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모든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압승하였고 대선에서도 이명박 후보가 압도적으로 승리하게 되었다. 이명박 후보 승리의 결정적인 원인은 한마디로 맥아더동상 철거사건과 평택 미군철수시위 사건의 반사이익이었다.

3-3. 이명박 후보의 대선승리

2007년 12월 이명박 후보의 대선승리는 또 하나의 큰 획을 긋는 대사건이었다. 대선결과로 진보진영은 정신적 공황에 빠지게 되었고 이로 인해 커다란 상황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민주당에서는 우파성향의 손학규씨가 당대표가 되었다. 손학규 대표가 민주당을 온건한 방향으로 이끌어주기를 바라는 염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변화는 민노당에서 일어났다. 노회찬, 심상정씨가 민노당을 탈당하여 진보신당을 새로 출범시켰다.

이들은 더 이상 친북좌파세력은 안 된다고 판단하고 종북주의 반대투쟁에 앞장섰다. 그리하여 진보세력 내부에서 친북좌파와 단절해야 한다는 여론이 크게 일어났다. 만일 이러한 분위기가 계속되었다면 우리사회는 크게 변화, 발전하였을 것이다. 진보적인 시민운동 내부에서 미선이효순이 사건 이래로 친북좌파와 결합해 온 것을 반성하고 친북좌파와의 단절을 선언하는 사람들이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초기 이명박 정부의 잘못은 이러한 진전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명박 정부의 최대의 실수는 이명박 선거켐프가 잘해서 정권교체를 이룩한 것으로 착각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는 겸손한 자세로 광범위하게 인재를 구하지 않고 자기들 켐프 내부에서만 사람들을 발탁했고, 박근혜, 이회창씨 등과 함께 범보수 연대를 구축하지도 않았다. 그 결과 고소영, 강부자로 상징되는 인사실패를 초래하였고 총선에서 기대만큼의 성공도 이루지 못하였다.

3-4. 광우병 촛불시위 사건

광우병 촛불시위는 친북좌파세력이 얼마나 순발력과 신축성을 가지고 운동을 전개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를 감동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 시위사건은 처음부터 철저하게 친북좌파들에 의해 계획된 사건이었다. 이점은 처음 촛불시위를 시작한 주관단체의 대표들이 바로 맥아더동상 철거사건의 주동자들인 강기갑, 오종렬, 천영세, 한상렬, 박석운 씨였다는 점에서 아주 분명해진다.

이들은 전교조를 통해 청소년들을 촛불시위에 동원하여 마치 자발적으로 촛불시위가 일어난 것처럼 꾸미고 월드컵 당시의 붉은 악마 거리집회와 같은 모습을 연출하여 자유분망한 젊은이들을 동원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렇지만 촛불시위가 후반에 들어가면서 이들의 실체가 폭로되고 촛불세력의 주장이 지나친 점이 분명해지면서 대중의 참여는 사라졌고 집회는 폭력적으로 변화하였다. 그리하여 촛불시위는 결국 백여일을 지나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이 사건으로 이명박 정부도 타격을 받았지만 더 큰 타격을 받은 것은 좌파진영이었다. 이로 인해 친북좌파의 정국 주도권은 다시 회복되었다. 그리고 합리적 진보세력은 다시 친북좌파세력의 둘러리가 되었다. 민노당과 진보신당도 다시 연대활동을 시작했다. 민주당이 집권할 수 있으려면 친북좌파와 단절해야 하는데 이 촛불시위로 모처럼의 단절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2008년의 광우병촛불시위사건 이후, 2009년 노무현 전대통령의 자살 이후 상황은 여전히 우리사회가 좌파들의 준동에 의해 얼마나 쉽게 출렁거리는가를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3-5. 이명박 정부의 실패와 건강한 중도우파 시민운동의 不在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의 국정운영의 문제점 때문에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실패하고 있다. 6.2 지자체 선거에서 크게 패배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나는 이명박 정부의 국정방향은 옳았다고 생각한다. 대북정책도 옳았고, 세종시 수정론도 옳았고 4대강사업도 문제는 있었으나 방향은 옳았다. 경제정책도 크게 나쁘지는 않았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국정방침을 이해시키는 소통에 실패했다는데 있다.

왜 그렇게 되었나? 한 마디로 이명박 정부가 자발적인 지지세력을 만드는 일은 전혀 하지 않고 시민사회를 동원대상으로만 보았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는 국정홍보의 대상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국정홍보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정부가 시민사회를 국정의 파트너로 삼아 공동으로 국정을 운영했어야 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역대 정권은 전부 시민사회를 파트너십으로 삼아 공동으로 국정을 운영해 왔지만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시민운동을 파트너로 삼는다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協治(협치, governance)의 시대에는 마땅히 정치권, 시장, 그리고 시민사회가 공동으로 국가를 경영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대통령의 머리 속에는 정치권과 시장은 있어도 시민사회는 있지 않았다.

이명박정부는 집권초기에 광우병 촛불시위로 혼줄이 나면서 시민사회에 대한 경계심이 너무 커져 시민운동에 대한 지원을 최대한으로 끊었다. 좌파만 끊을 수 없으니 우파도 함께 끊었다. 그러다 보니 우파 시민운동이 성장할 수 없었다. 이명박정부가 좌파 시민단체를 파트너로 삼을 수 없으면 마땅히 건전한 중도우파 시민운동 세력을 크게 키우고 젊은이들의 운동도 크게 키웠어야 했다. 그런데 정부는 이 일을 전혀 하지 않았다. 우파 지지세력이 필요할 때는 자유총연맹, 재향군인회 같은 단체들을 동원했다. 동원된 군중과 자발적인 시민세력과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왜 이명박 정부가 우호적인 자발적 시민세력을 육성하지 않았는지가 정말로 미스테리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파가 中道의 바다에서 좌파에게 패하고 안철수에게 中道를 내준 것은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었다.

우리 사회에는 우파 지식인이 넘치도록 존재한다. 건전한 우파 시민운동을 활성화하면서 이들을 조직하면 얼마든지 건전한 시민운동을 크게 키울 수 있다. 그러나 현 정부는 시민운동의 활성화에 조금의 관심도 없었다. 정부가 사람을 쓸 때에도 선거캠프에 이름을 올렸던 사람 중에서 썼지, 사심없이 시민운동에 헌신한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러니 시민운동이 활성화될 아무런 유인이 있지 않았다.

그 결과 이명박 정권의 출범이후 지금까지 우파 시민운동은 조금도 성장하지 않았다. 그래도 좌파시민운동은 지난 십년의 기반이 있었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재정조달 능력이 있지만 우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기업도 도와주지 않았다. 기업들이 우파단체를 도왔다가 나중에 좌파에게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도움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파시민들은 무임승차만 했지, 기부할 줄 몰랐다. 그래서 우파 시민운동은 과거 노무현정부 시절보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더 혹독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이명박 정부는 정권의 파트너가 될 건강한 중도우파 시민단체들을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3-6 안철수 현상과 새로운 우파시민운동

안철수 현상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나는 안철수 현상을 건강한 중도우파 시민운동이 부재한 데서 오는 정신적 공황현상으로 진단한다. 그렇다면 중도우파 시민운동은 어떠한 내용을 가져야 하는가?

첫째로 이 세력은 우리나라 최대 세력인 종북좌파와 결연하게 맞서야 한다. 지금 야당이 종북좌파와 연대하고 있는데 이 세력이 집권하면 나라는 위기에 빠지고 선진국으로의 진입도 불가능해 질 것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이점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그 결과 보통시민들은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마치 색깔론은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생각인 것처럼 간주하고 있다. 이 점이 안철수 현상의 첫 번째 모습이다. 그리고 좌파들은 이념의 시대는 지나갔다는 슬로건을 퍼뜨리면서 이러한 현상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자파 지지자들을 규합하고 있다. 물론 안보단체들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고 있지만 중도에 있는 젊은 세대들은 이를 외면하고 있다.

둘째로 이 세력은 포퓰리즘과 결연하게 맞서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포퓰리즘의 덪에 걸려 있다. 여야가 선거를 앞두고 포퓰리즘 경쟁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동안 알젠틴, 브라질, 체코 등 여러 나라들이 선진국 진입을 앞두고 포퓰리즘의 늪에 빠져 주저 앉고 말았는데 지금 우리나라도 똑같은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런데 정치인은 누구나 포퓰리즘의 유혹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시민운동이 포퓰리즘과의 싸움은 시민의 몫이라는 자각을 가지고 나서야 한다.

셋째로 이 세력은 기득권세력의 횡포와 독점으로 피해당하는 사람들을 대변해야 한다. 대기업의 횡포 때문에 중소기업이 타격을 받고, 재개발정책의 불공정과 모순 때문에 원주민의 85%가 쫓겨나고, 카드수수료가 대형업소는 1.5%에 불과하지만 소상공인은 3%-4.5%인 이 엄청난 불공정이 전혀 시정되지 않고, 사행산업의 막강한 로비력 때문에 도박이 계속 조장되어 도박피해자의 고통은 더욱 커지고, 전관예우로 인해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관행은 고쳐지지 않고, 정규직 노조의 기득권 때문에 비정규직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는 현실과 맞서야 한다.

넷째로 이 세력은 긍지를 지닌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주장을 펴야 한다. 가난한 나라를 위해 더 많은 국가예산을 쓰고, 북한동포를 돕고, 조선족동포를 포용하고, 북한인권에 관심을 갖고, 사회적 약자를 돕고, 사회적 소수자의 권익을 지켜야 한다.

만일 우리나라에 이러한 입장에 서서 과감하게 행동하는 시민운동세력이 있었더라면 안철수 현상은 생기지도 않았겠지만 생겼더라도 곧 안개 걷히듯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우파진영은 이러한 입장을 견지하지 못했다.

한나라당이든, 우파단체든 첫 번째와 두 번째 잇슈에는 민감했지만 세 번째와 네 번째 잇슈에는 둔감했다. 이 때문에 복지포퓰리즘과의 싸움도 성공하지 못했다. 사실은 무상급식 주장은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선 주장이 아니다. 서울시에서 민주당이 주장하는 전면무상급식을 하려면 매년 3조3천억원이 드는데 이 예산을 확보하려면 결식아동 예산, 학교시설 개선예산, 방과후 학교예산, 장애인 예산 등을 대폭 축소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시 재정을 파탄내든지 세금을 올려야 한다.

실제로 경기도 교육청은 무상급식 예산을 확대하면서 장애학생 교육지원, 농어촌학교 교육여건 개선, 유치원 종일반 운영지원 등 저소득소외계층 지원을 삭감시켰다. 그런데 왜 한나라당과 우파단체들은 이 점을 국민에게 인식시키는데 실패했나? 그 이유는 평상시에 기득권 세력의 횡포와 독점과 결연하게 맞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국민은 무조건 민주당이 가난한 사람들의 편인줄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재작년에 필자는 재개발과정에서 쫓겨나는 원주민의 편에 서서 재개발 정책의 변경을 촉구하면서 길거리에서 체인을 감고 드러누워 시위를 하다가 두 번이나 체포되어 벌금형을 받았다. 그런데 이 모습을 보고 서경석은 역시 좌파다 라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다. 이렇게 우파들이 市場만 강조하고 기득권을 옹호하는 일에만 익숙해 있기 때문에 아무 것도 되지 않는 것이다. 특히 한나라당은 웰빙정당으로 낙인이 찍혀 있다. 이 이미지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안철수 현상을 극복할 수 없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우파시민사회는 이석연 후보를 내어놓고 한나라당을 압박하고자 했다. 전략은 좋았지만 중도에 이석연 후보가 하차하는 바람에 웃음꺼리가 되었다. 그런데 이 웃음꺼리는 일차적으로 이석연 후보가 나라를 구하겠다는 애국심보다 개인의 출세야망이 앞선 데에서 비롯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파시민운동의 정체성이 분명하지 못한 점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랬기 때문에 우파시민운동은 우왕좌왕했다.

앞으로 우파시민운동은 확실한 이념을 가진 운동으로 자기정립을 해야 한다. 아직도 우파운동은 개인의 영달만을 추구하는 점이 많고, 기득권세력의 횡포와 독점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을 옹호하는 측면이 강하다. 이래서는 내일을 책임지는 세력이 될 수 없다. 우파시민운동이 확실하게 자기정립을 한 다음에는 한나라당이 종북좌파 비판이 분명하지 못한 점, 포퓰리즘 비판이 분명하지 못한 점, 기득권 세력의 횡포와 독점에 대한 비판이 없는 웰빙정당인 점, 그리고 긍지를 지닌 인간으로써 마땅히 해야 할 주장을 하고 있지 않은 점을 비판해야 한다. 이러한 시민운동의 비판이 있지 않으면 한나라당은 바른 길을 가지 못한다.

3-7. 서울시장 선거에 대처하는 길

이번 서울시장 선거도 건강한 우파시민운동의 틀 안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 박원순 후보의 지지율에는 거품이 많고 또 박후보 자신이 약점이 많은 후보다. 그의 ‘아름답고 정의로운’ 이미지는 진면목이 아니다. 그는 대기업을 비판하는 대가로 그들로부터의 기부를 싹쓸이했다. 참여연대의 감시 대상 11개 기업이 박원순의 ‘아름다운재단’에 148억원을 기부했다.

참여연대가 생명보험사 상장차익 배분 문제를 제기하고 교보생명으로부터 47억원을 받았고, 한화를 공격하고 10억원을, LG를 공격하고 LG와 GS로부터 20억원을 기부받았다. 또 아름다운재단은 ‘먹튀’ 논란을 빚은 론스타로부터도 7억6천만원을 받았다. 이 행동으로 박 후보는 시민운동의 도덕성에 궤멸적 타격을 입혔다. 그는 결코 정의의 화신(化身)이 아니다.

또 박원순 후보는 민노당과 서울시정 공동운영을 약속함으로써 스스로 종북좌파의 연대세력임을 자인했다. 원래 박 후보는 국가보안법 폐지 소신을 가진 좌파였는데 이번 행보는 그가 하나도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요즈음의 한국의 상황은 대단히 위기적이다. 올 6월 종북 카페 운영자인 황길경 피고는 국보법 위반사건 재판 중에 “위대한 김정일장군님 만세”를 외쳤고. 8월에는 좌파시위대 4천명이 보수단체의 북한 인권영화 상영을 공격해 관람을 중단시켰다. 날이 갈수록 종북좌파의 기세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민이 이러한 상황을 확실히 알게 되면 결코 국보법 폐지가 소신인 좌파 시장을 선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나경원 후보의 선거운동은 두 가지 심각한 맹점을 갖고 있다. 하나는 박원순 후보가 종북좌파와 연대하는 점을 공격의 핵심 포인트로 삼지 않는 점이다. 나경원 후보가 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 점도 있다. 그렇다면 이점을 확실하게 보완하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또 하나는 나후보가 갖고 있는 웰빙 이미지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발표해도 서민들이 나경원 후보를 자기 편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나후보는 개혁적인 우파시민세력과 연합해서 자신의 부족한 이미지를 보완해야 한다. 우파시민세력과 공동정권을 세워야 한다. 그래서 서울시민이 나경원 후보는 못 믿어도 우파시민운동은 믿을 수 있다는 식의 신뢰를 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우파시민사회의 대책은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우파시민사회의 전열 재정비가 있어야 한다. 우파 시민사회도 웰빙적 성격에 있어서는 한나라당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민사회가 먼저 크게 반성하고 정체성을 분명히 한 후에 대동단결해야 한다. 해마다 선거철이 오면 3류 정치지망생의 이합집산이 이루어지는 모습은 아주 식상하기 그지없다. 또 우파시민사회 안에서 주도권 다툼이 끊이지 않는 것도 아주 식상한 일이다. 오로지 애국심만 가지고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시민연대활동이 있어야 한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을 욕하는 일도 이제는 지쳤다. 이제는 우리부터 반성하고 새출발해야 한다. 그래야 나라의 앞날에 희망이 생긴다.(konas)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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