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생각] 그들이 '엄동설한'에도 길을 떠난 이유?
“이 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게 하고자 사회지도층으로서의 의무감으로 주변에 전파와 확산을 일으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깃들어 있기 때문”
봄이 오려나 보다. 겨우내 우리들 몸을 움츠리게 했던 추위도 머지 않아 후일을 기약해야할 모양이다. 이미 3월이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울아침 최저 기온은 -17℃ , 체감온도는 -30℃가 넘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난 2월2일 아침 전국의 기온은 곤두박질쳤다. 서울의 이 날 기온은 금년 들어 가장 낮은 수은주를 기록했다. 올 겨울은 예년에 비해 그렇게 추운 게 아니었다. 출근 길 서울 도심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게 했던 눈사태도, 온몸을 엄습하는 강추위도 없었다. 그런데 이 날 몸으로 느끼는 한파(寒波)는 급락한 기온으로 인해 정신이 아득할 지경이었다.
마침 그 날은 목요일로 기자가 매주 송파구 한 호텔에서 열리는 조찬 포럼을 취재하는 날이기도 했다. 그러나 전 날 강력한 한파가 닥쳐 "가장 추운 날이 될 것" 이라는 기상예보가 있기도 해서 "날씨가 그렇게 추운데, 얼마나 회원들이 참석하고 또 포럼이 열리겠는가?" 해서 느긋한 마음으로 회사로 출근해야겠다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포럼의 C 사무총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도 우리 포럼은 정상적으로 열립니다. 지금 오고 계시죠?"하는 것이다. 서둘러 길을 재촉했다.
살갗에 스치는 바람은 말 그대로 장난(?)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매섭고도 혹독한 위력이었다. 길을 지나는 시민들은 두터운 외투로 중무장하고 얼굴은 마스크에 두툼한 목도리로 칭칭 감고 두 눈만 빼꼼하니 내민 상태로 눈 쌓인 길을 종종 걸음으로 내닫고 있었다.
포럼장에 도착하자 이미 호텔에는 50여명이 훨씬 넘는 분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날 초청강사는 현직 교수로 있는 공군 예비역 장성이었다.『2012년 대한민국의 안보위험과 대비태세』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나는 알려지지 않은 비화(秘話)를 들을 수 있었고, 그 비화(秘話)를 통해 오늘날 서해 NLL을 넘보는 북한의 망언(妄言) 망동(妄動)이 이미 그가 위관장교 시절부터 시시때때로 자행되고 있었음을 새삼 알 수 있었다.
비화의 내용은, 북한이 당시 미그기를 출격시켜 백령도 인근으로 출몰, 남하하고 있어 그에 대처하라는 명령과 함께 어느 날 '비상명령'이 내려져 수십대의 전투기가 발진과 동시에 백령도를 향해 초고속으로 비행해, 모든 교전 준비를 마친 채 적기(敵機)와 조우 일보 직전 상황까지 갔다고 했다. 이와 함께 상부로부터 "격추하라" 는 명령까지 하달됐다고 했다. 하지막 마지막 순간 적의 미그기가 기수(機首)를 돌려 6·25전쟁 이후 최초로 공중전이 벌어질 찰나 직전에 불발로 끝났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북한의 계속되는 위협과 지난 2010년 북한에 의해 자행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도발 만행 등 우리사회에 기승 하는 종북세력들의 북한 추종 행위가 앞으로 대한민국을 얼마나 위험에 빠뜨리게 할 것인가를 조목조목 짚어 대비태세를 강조했다.
참석자들은 귀를 기울이며, 궁금증을 풀어 나갔다. 그러나 이 날 기자의 마음을 붙잡은 것은 우리 안보의 중요성도 중요성이지만 그와 함께 더한 것은 그 강력한 엄동설한(嚴冬雪寒)추위에도 불구하고 포럼 장을 찾은 회원들의 면면이었다.
이른 새벽부터 송파에서, 여의도, 서울 외곽 경기도 일원과 강원도 춘천에서부터 무엇이, 어떤 게 그 매서운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분들의 발걸음을 재촉하게 했을까 하는 점이다.
'제왕학 담론' 을 통해 위정자로부터 지식인, 일 범부(凡夫)에 이르기까지 국민으로서 지녀야 할 법도와 준칙을 촌철살인(寸鐵殺人)으로 일깨움 주는 김유혁 박사의 주례 강론과 각계 전문가들의 안보론, 사회 비평과 문제점을 적시한 대안 제시, 정책제언 등으로 매주 목요일 포럼이 열리는 행사장은 후끈 달아오른다.
2010년 여름으로 기억된다. 그 날은 서울지역에 최대 기상이변이 발생해 대형 가로수들이 무더기로 뿌리째 뽑히는가 하면 초대형 바람이 건물을 강타해 시가지가 온통 난장판으로 화하고 지하철 운행 중단마저 속출해 출근을 엄두도 내지 못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 날도 포럼은 어김없이 열렸고, 지하철과 택시를 교대로 타고 참석한 회원들도 부지기수였다.
미국에서 거주하다가 일시 귀국하면 반드시 참석한다는 전 LA 한인회장을 역임한 한 회원은 기자에게 "미국에서도 볼 수 없는 바람을 한국에서 경험했다"며 "우리 대한민국이 잘 살게되고 선진국으로 가니 기상현상도 선진국을 닮아 가는 것 같다"며 미소를 지으면서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만큼 그 당시 서울을 강타한 태풍은 초특급이었다.
그런데도 무엇이 이들을 포럼 현장으로 가게 하는 것일까?
좌파정권 10년, 안보를 염려하는 보통시민들의 마음은 그야말로 열혈(熱血) 그 자체였다. 얼어붙은 차가운 땅바닥에서도, 뜨거운 지열(地熱)에 아스팔트가 녹아나고 굵은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려도 그 분들은 굴하지 않았다. 그리고 뜨거운 심정으로 외쳤다. 그 현장을 기자는 수없이 지켜봤다. 그래서 누구보다 그 뜨거운 열정을 기억한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사는 이 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게 하고자 하는 염원과 바람, 사회지도층으로서의 의무감을 깊이 간직하며 주변으로의 전파와 확산을 일으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 때 우리사회는 "아는 것이 힘이다" "알아야 산다"는 구호가 뒤덮인 적이 있다. 부존자원이 넉넉지 않은 가난하고, 몽매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교육만이 '개천에서 용 난다'를 실현시켜 줄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에 와서도 우리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은 하루에도 수백, 수천 곳에서 열리는 포럼문화가 대한민국의 일류화, 선진화를 가속화시키는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 그만큼 우리국민의 '지식'과 '지혜'에 대한 열망이 크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 본다.
사회의 주도적 지도자로서 국가를 위해 헌신·봉사했던 그들이 이제는 은퇴해 손자·손녀들의 재롱에 흠뻑 빠져야 할 계제(階梯)임에도 새벽부터 바쁜 걸음을 옮기는 이유는 분명하다. 바로 '나라 사랑' 때문인 것이다. 그 일념엔 한치의 변함이 없어 보인다. 오직 대한민국이 올바로,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열정을 불태우며,「통일 자유대한민국」의 그 날을 바라며 오늘도 비바람이 몰아쳐도 구슬 땀방울이 옷을 적셔도, 강추위가 온몸을 엄습해도 발걸음은 끊이지 않는 것이다.
그 분들의 멈추지 않는 발걸음이 계속되는 한 대한민국의 통일은 멀지 않을 것이다. 「통일 대한민국」의 그 날을 위해 힘차게 외쳐본다. "자유통일 대한민국 만세"!!!(konas)
이현오 (코나스 편집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