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봉·한석산 전투 勝戰을 기념하다
강원도 인제군 현지에서... 참전전우·장병, 유가족, 학생 등 200여명 참석
6·25 한국전쟁 당시 아군이 거둔 대표적인 산악전투의 승전보를 전한 매봉·한석산 전투 61주년 승전기념 및 추모행사가 10일 격전의 현장이었던 강원도 인제군 현리 매봉·한석산 전투 전적비 앞에서 거행됐다.
이 날 승전기념 및 추모행사는 한동주 3군단장을 비롯한 지역 내 각 군부대장, 인제군수와 의회의장 등 각 기관장, 강원도 및 인제군 재향군인회장, 학생, 유가족, 참전전우회 회장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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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산 지구 전투 61주년을 맞아 호국영령과 전몰장병의 영혼을 위로하고, 장병들의 애국심과 충성심 고취를 위한 계기 마련을 위해 마련된 이 날 행사에서 참석자들은 61년 전 조국을 위해 고귀한 피를 흘리고 산화한 참전용사들의 넋을 위로하고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마음가짐을 다졌다.
'호국영령에 대한 경례'를 시작으로 한 이 날 행사는 ▲해봉·한석산 전투 약사보고, ▲헌화 및 분향 ▲묵념 ▲국방부장관 기념사 ▲참전전우회장 인사말 ▲호국영령에 대한 경례 순으로 진행됐다.
김관진 국방부장관은 3군단장이 대독한 기념사에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에 대한 명복을 빌고 "여러분이 계셨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고 위무했다.
김 장관은 "생사를 넘나드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불굴의 군인정신으로 나라를 지켜내신 선배님들이야말로 진정 이 땅의 영웅"이라고 예를 표하고는 "조국을 지키다가 꽃다운 나이에 스러져간 호국영령들은 이제 아름다운 들꽃으로 피어났다"면서 "(임들의) 고귀한 희생이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와 경제적 번영을 싹틔운 꽃씨가 되었다"고 고했다.
김 장관은 이어 "(대한민국은) 현재 역사상 최고의 번영을 누리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조국분단의 원흉인 북한은 여전히 실패한 공산주의와 한반도 적화야욕의 망령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오직 체제생존을 위한 미사일과 핵 개발 등 우리의 평화를 위협하는 군사도발만 일삼고 있다"면서 "우리의 敵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김 장관은 또 우리의 '적'인 북한과 더불어 내부의 분열을 획책하는 종북세력들에 대해서도 분명한 목소리를 냈다. "우리사회 일각에서는 반인륜적 집단인 북한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대한민국의 건국과 근대사를 부정하며 가치관 혼돈을 조장하는 무리들이 있다"며 "북한과 내부 분열을 획책하는 세력들의 도전을 단호하게 물리치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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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봉·한석산전투참전전우회 이영호 회장은 인사말에서 전쟁의 참혹상을 먼저 언급했다. 이 회장은 "역사는 유사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쟁은 인간이 점유하고 있는 곳곳에서 쉴 사이 없이 일어나고 있다"며, 6·25 상흔을 다시금 일깨웠다.
이 회장은 "역사란 전쟁의 여러 정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평가한 기록이라고 개념지을 수 있으나 개별전투의 깊은 내막이 모두 기술되기란 어렵고, 매봉·한석산 전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6·25전쟁 당시 국군은 수많은 전투를 치르면서 피와 땀으로 조국을 지켜냈으며, 많은 전투 중에서도 한석산 전투는 6·25전쟁 당시 육군이 거둔 산악전투의 대표적인 승전보로 평가되고 있다"고 그 날을 되새기며 함께 참석한 한석산 전투 참전 전우들을 소개했다.
그런데 매봉·한석산 전투 전사는 아래와 같다.
매봉·한석산은 1951년 4월25 중공군 4월 공세시 彼·我의 요충지로 아군 3사단 22연대가 북괴군 12사단에게 피탈 당한 후 7사단 8연대가 탈환작전에 투입되었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미 8군사령부는 중공군 4월 공세 저지 후 미주리선 진출을 위해 부대배치 조정 및 44번 도로와 주요 감제고지를 확보하는 등 유리한 여건 조성을 위한 공격명령을 하달 했다.
매봉·한석산 전투는 강릉에서 1군단의 예비임무를 수행하던 9사단이 4월25일부로 3군단으로 배속 변경되고, 5월2일부로 9사단 30연대가 7사단 8연대로부터 작전지역을 인수, 수행한 작전이다.
당시 9사단의 책임정면은 인제 일대의 10Km로 반격 작전을 위해서는 작전지역을 감제할 수 있는 한석산이 반드시 확보되어야 했다. 이에 30연대장 손희선 대령은 51년 5월7 새벽 3대대를 주공으로하여 한석산 남쪽 주요 고지인 매봉(1,066고지)을 먼저 확보하고 이를 발판으로 한석산을 탈취하는 공격작전을 개시하였다.
매봉·한석산에서 적의 강렬한 저항 및 역습에도 불구하고 30연대는 항공화력 지원하 우회·측후방 공격으로 5월 9일에 3대대가 매봉 탈환하였고, 5월 10일에 1대대가 한석산을 완전히 탈환하였다.
이 전투를 통해 적 사살 895명, 포로 42명, 각종화기 347점을 노획하여 3대대는 전 장병이 1계급 특진하였고, 백여명이 무공훈장을 받은 대 전과를 올렸다.
당시 임무수행 중 산화한 72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지난 1990년 11월 9일 현지에 전적비를 건립해 매년 5월 추모행사를 갖고 있다.(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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