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고의 선택
본 내용은 병무청이 실시한 자원입대 체험수기 공모전에서 장려상으로 선정된 작품임.(편집자 주)
저는 현재 53보병사단 정비근무대 수송중대에서 운전병으로 근무하고 있는 상병 지권철 입니다. 저는 고3 수능이 끝난 뒤부터 조금 힘든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대학진학을 위해 3곳의 대학에 원서를 넣었지만 모든 대학에서 불합격했습니다. 그 뒤로 일주일동안 부모님에게 죄송스러운 마음과 스스로 죄책감까지 들어 방황을 하였습니다.
“아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재수를 해서 대학을 가야하는 건가.” “아니면 그냥 바로 군대에 갔다 와서 다시 공부를 하는 게 어떨까?”등 가지 가지 생각을 하였습니다. 마음을 다시 잡고 나서 부모님과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지금 당장은 대학진학이 우선이다.”라고 생각하여 부모님께 그렇게 말씀드렸더니, 부모님도 승낙하셨습니다.
그래서 일단 군대문제는 대학을 진학하고 난 뒤에 생각하기로 하고 다시 공부에 전념하였습니다. 재수를 시작한지 몇 달이 지났는데 우편물 한통이 왔습니다. 바로 신체검사 통지서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체검사를 받으러 병무청으로 향했습니다. 오후쯤 신체검사 도중에 안과에서 신체검사를 받는데 검사관분들께서 심상치 않게 소곤거렸습니다.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모든 검사가 끝나고 병역 판정이 나기 전 적성검사를 해주는 분과 개인면담을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분이 저에게 “학생 눈이 많이 나쁘네요.”라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저도 그전에 눈이 좀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내 눈이 많이 나쁘구나.”라고 혼자 생각을 하였습니다. 모든 신체검사가 끝나고 병역판정이 뜨는데 4급(공익근무요원)이라고 판정이 나왔습니다.
저도 의외의 상황에 놀랐고 옆에 있던 친구들도 “와! 공익이네. 부럽다.”라면서 옆을 지나갔습니다. 그 결과를 가지고 집으로 와서 부모님께 시력 때문에 4급이라고 말씀드렸더니, 공익 판정결과 보다는 제 눈이 많이 나쁜 것을 걱정하셨습니다. 저는 그때 당시에는 대학입시 때문에 군대와 공익에 대한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공부만 하였고 다음해에 제가 원하는 대학에 입학을 하였습니다.
1학년 2학기까지 대학생활을 하는 동안 그 사이 1년 먼저 대학에 들어갔던 친구들은 거의 다 군 입대를 하였습니다. 그 때 전부 저를 보고 “너는 공익이라서 좋겠네. 운이 좋은 놈이네.” 이런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말을 계속 들으니까 오히려 “왜 나만 공익을 가야하지. 전부 다 현역으로 입대 하는데”이런 생각만 더 들었습니다.
2학기가 끝나고 저도 이제 입대할 상황이 되었는데 그 당시에 저는 “공익 가거나 군대 안가는 애들은 나중에 사회에서 인정해 주지도 않고 취업할 때도 불이익 같은 게 있다고 하더라.” 라는 말을 선배들에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익을 안가고 그냥 현역으로 확 가버릴까?” 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어차피 시력만 아니면 군 생활을 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고 군 생활 후 전역한다면 제 삶에 후회도 없고 사회에서 인정도 받고 저 자신도 당당해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 말을 친구들이나 부모님에게 말씀드렸더니, “그냥 주어진 대로 가라. 괜히 힘든 선택하지 말고” 대개 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대한민국의 남자로서 한번은 군대에 가서 국방의 의무도 다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살면서 부모님에게 속만 썩여 드린 것 같고 현역으로 군 생활을 당당하게 마치고 나면 저 자신이 달라지고 부모님께서도 저를 자랑스럽게 여겨 주실 것 같았습니다.
결국 저는 공익 가는 것을 포기하고 현역으로 가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래서 부모님께 현역으로 가겠다고 설득하였습니다. 부모님도 처음에는 반대하셨지만 끝내 제가 후회만 하지 않는다면 현역으로 가는 것에 대해 승낙해주셨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는 지금 이 선택이 제 생애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이 저를 믿어주셔서 지금 현재도 열심히 군복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현역으로 가기 위한 첫걸음으로 눈 수술을 통해 시력을 좋게 하기 위해서 안과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수술비가 부담이 되어서 수술을 포기하였습니다. 그리고 며칠간은 고민하다가 문득 요즘에는 시력검사가 강화되었다는 말이 기억나 부모님께 눈 수술은 전역 후에 하겠다고 말씀드리고 재신체검사 날짜를 잡아서 병무청으로 갔습니다.
병무청 직원분께 신체검사를 받았던 서류를 주면서 시력만 다시 신체검사만 받도록 부탁드렸더니 그 직원은 저를 보고 “현역으로 가실려구요?”라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렇다고 말씀드렸더니 직원이 놀라면서 “요즘에는 거의 다 현역에서 공익이나 면제 받으려고 오는데 정말 선택 잘하셨어요.” 라면서 웃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에 안과 쪽에서 시력검사만 다시 하였고 결과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검사를 받을 때 다른 쪽에서도 다시 신체검사를 받으러 왔는데 온 사람 전부다 현역인데 공익이나 면제를 위해서 힘쓰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을 보고 있을 때 안타까운 현실이고 조금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니 현역입대를 결정한 제 자신이 더욱 더 자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잠시후 결과가 나왔는데 직원이 “현역 3급으로 나왔다고 축하하고 군 생활 열심히 하라.”고 격려의 말씀까지 해주셨습니다. 그 결과를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저에게 “네가 지금 이런 용기로 군대에 가게 된다면 어떤 일이라도 다 잘해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격려해주셨고 저는 뿌듯함을 느끼면서도 정말 잘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저는 운전병으로 지원하여 군 입대 날을 기다렸습니다. 이 소식을 주위 친구들에게 말하니 “결국 일을 저질렀네. 후회할 꺼다.”라고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에게 “공익으로 내가 만약 갔더라면 분명히 후회 했을 거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그 정도로 군대에 대해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도 생기고 한번 해보자라는 마음도 생겼습니다.
드디어 입대 날이 되어 신병교육대 위병소로 들어가는데 “아. 이제 군인이구나.……. 21개월 동안 열심히 해서 떳떳하게 살아보자.” 라는 다짐을 마음속에 되새기며 신병교육대교육관으로 들어갔습니다. 처음에는 건물, 사람 등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본격적으로 기본 제식 훈련을 시작으로 주. 야간사격, 주간행군, 각개전투, 화생방, 수류탄, 야간행군의 훈련소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하나하나의 훈련을 무사히 끝낼수록 저는 “나도 무언가 하나를 해냈구나!” 라는 성취감과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고 힘들었던 기억들은 눈 녹듯 사라지면서 저 자신이 한층 더 강해져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군대에 와서 잊을 수 없는 것 중에 하나는 5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수료식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훈련소 생활을 통하여 가족, 친구들과의 소중함을 그때 뼈저리게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사회에만 있었다면, 이러한 소중 함들을 알지 못했을 텐데, 군대를 통해서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에게 꼭 효도하겠다는 마음을 다시 한 번 확고히 해주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훈련소를 수료한 뒤 운전병인 저는 후반기 교육을 받기 위해 경북 경산에 있는 제2수송교육단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중형으로 주특기를 받아서 5주간의 운전연습을 하였습니다. 제가 교육받는 차량은 K-511 2.5톤 차량이었는데 밖에서 운전경험도 없는데다 군 차량은 민수차량과 달라서 처음엔 운전을 잘 못해 조교한테 혼도 나면서 배우고 또 배웠습니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저의 운전 실력도 향상되었고 조교도 저에게 잘하고 있다고 칭찬까지 해주니 저는 더욱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잘 몰랐었던 타이어, 엔진오일, 축전지, 냉각수 등 많은 정비용어와 정비에 대해서도 자세히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5주간의 교육이 끝나고 면회, 외출날이 되었습니다. 제가 강당에 들어가니 정면에서 가족들이 보였습니다. 특히 어머니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저도 울컥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공익에서 현역으로 간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저는 “군대 오길 참 잘했다.” 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렇게 즐겁게 면회, 외출을 끝내고 이젠 자대발표만 남았습니다. 저도 그렇고 부모님도 53사단에서 근무하길 원했는데 운이 좋게도 53사단으로 배치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53사단 직할대 정비근무대 수송중대로 오게 되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른 상태여서 긴장도 되었지만 선임들과 간부님들이 저를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자대생활을 하면서 낯선 곳에 대한 적응력과 단결력, 협동심, 인내심등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는 임무를 잘 수행하기 위해 운전교육을 열심히 받았습니다. 기량 향상이 되면서 운행을 나가기 시작하였고, 현재까지 계속 운전병의 임무를 열심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제가 선임들에게 배운 것들을 후임들에게 하나하나씩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후임들을 가르쳐 주면서 리더십을 배우고 있는 스스로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물론 군 생활을 하면서 힘든 적도 있었지만 부모님 생각을 하면서 버틸 수 있었고 그러한 힘든 일을 하나씩 해낼 때마다 스스로 성취감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러한 경험들이 밑바탕이 되어 나중에 전역을 해서 아무리 힘든 일이 닥치더라도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군복무를 하면서 전우애도 쌓고 선임들, 후임들과 같이 생활을 하는 동안 웃고 즐거웠던 기억이 많았습니다. 이런 즐거움들이 지금 저를 한층 더 성장시켜주고 제 자신에게 행복감을 주는 동시에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1개월간의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이지만 그 귀중한 시간을 자기 자신이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군 생활 동안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를 나가기 전의 관문인 군대에서 인생목표를 확실히 하고 열심히 준비를 하여서 전역 후 사회에 나아가서 저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군대에서 한자자격증을 따기 위해 매일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또한 운전병인 저는 군에서 운전을 배움으로서 운전 실력과 경력을 쌓게 되어 전역 후 자동차보험료 할인 혜택도 받습니다. 그리고 항상 저를 격려해주시고 칭찬을 해주시는 중대장님, 소대장님 덕분에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군대에서의 2년은 결코 인생에서 버리는 시간이 아닙니다. 군대는 그 2년을 통해서 2년 후의 그 나머지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밑거름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특히 입대를 하지 않는 분들이 이 글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군대는 좋은 곳이라고.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곳.”이라고 인지하게 되어 앞으로는 군 입대를 꺼려하지 않고 오히려 자원입대를 하려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군대에 대한 고정관념들과 부정적인 인식이 사리질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전국에 계신 모든 장병 여러분! 남은 군복무를 열심히 하셔서 전역 후에 사회에 나가 전부다 성공하셨으면 좋겠고, 현역에서 공익이나 면제를 받기 위해 애쓰시는 분들은 이글을 보시고 마음을 고쳐먹고 당당하게 현역에 입대하여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남은 군 생활을 결코 헛되지 않게 열심히 하여 자랑스러운 군인이자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도록 하겠습니다.(Konas)
지권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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