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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은 새로운 사람을 만드는 거푸집

Written by. 김일태   입력 : 2012-10-11 오후 7: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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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자유지 10월호에 게재된 김일태 前 예비군 지휘관(수성구 수필창작회원)의 기고 내용임. (편집자 주)

 지난 6월 30일부로 39년간 입던 군복을 벗었다. 송별연에서 ‘노병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정년퇴직 할 뿐이다.’ 라는 농담과 함께 석별의 술잔을 높이 들기도 하였다. 특별한 공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과분하게 국가로부터 보국훈장 광복장도 수여받고, 국가유공자로 등록도 하였다.   

 정년퇴직은 사업자가 점포를 정리하고 셔터를 내려 폐업을 하는 것과 동일하다. 정년퇴직을 하였으니 백수 1호봉이 된 셈이다. 아직도 더 열심히 근무할 의욕과 체력이 남아있다는 생각과 미련도 남는다. 하지만 골인지점을 통과한 선수가 체력이 남아있다고 해서 계속 트랙을 돌아보았자 심판들이 인정해 주지도 않고, 관중들에게도 기쁨을 주지 못하는 헛수고가 된다.

 필자의 군 복무는 좋게 표현하면 다양한 경험이요, 나쁘게 표현하면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14년의 육군복무를 마치고 전역 후에는 해군과 해병대에서 예비군 지휘관으로 육•해•공•해병대•예비군이 약간씩 문화의 차이와 장점들이 다름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러한 복무 과정에서 군으로부터 부여받은 군번도 4개나 된다. 맨 처음 논산훈련소에 입대하여 받은 병 군번, 육군 제1하사관(부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반하사로 임용되어 받은 군번, 육군 보병학교를 졸업하고 장교로 임관되어 받은 군번, 대위로 전역하고 군무원으로 임용되어 받은 군번 등 네 개의 고유번호는 무덤까지 가지고 갈 숫자이다. 군이 부여한 4개의 고유번호는 필자로 하여금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게 한 거푸집이었다.

 요즘 나약하다고 기성세대들이 걱정하는 젊은이들은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기 위해서 신체검사에서 결함을 수술을 받고 입대를 하는가 하면 다문화 가정 자녀들이 충성심을 가지고 복무를 하고 있다. 외국 영주권 소지자 자원입대에 이어서 새터민 젊은이들 까지 군 입대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군이 새로운 사람을 만드는 거푸집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잘 증명되고 있다.

 필자는 군복무를 통하여 가족의 소중함을 알았고, 조직생활을 통하여 사회성을 길렀다. 상명하복 하에서 예절을 배웠고, 리더십에서 대인관계를 배웠다. 힘든 훈련을 통하여 체력을 길렀고, 인내심을 키웠다.

 이제 인생 2모작의 여정에 들어서서 필요한 모임에 얼굴을 내밀어도 군 출신이라 해서 무시하지 않음에 자부심을 느낀다. 군에서 익힌 교관생활이나 리더십이 사회 조직에서도 통하고 있음을 느낀다.

 얻은 것이 많은 것만큼 추억도 많다. 훈련소 시절 달 밝은 밤에 보초를 서면서 고향에 계시는 부모형제를 그리워하였으며, 장거리 행군에서 탈진 직전에 반합에 배식 받은 병식을 비포장도로에 주저앉아서 먹던 꿀맛은 잊을 수가 없다.

 밥 먹듯이 걸리는 새벽 비상훈련, 옷을 입은 채, 전투화 끈을 묶은 채  24시간 대기체제를 유지하는 5분대기조 시절도 이제는 그리움이다. 철책선 근무 시에는 밤이슬을 맞기도 하고, 북풍한설에 난도질을 당하기도 하지만 철통같은 경계태세를 유지했던 자부심이 꿈틀거린다.

 수색소대장 시절 대원들과 함께 목숨을 걸고 DMZ 미확인 지뢰지대를 통과하면서 수색정찰 코스를 개척하였는가 하면 야간위장에 소총에 실탄을 장전하고, 방탄조끼 입고, 통문을 통과하여 매복을 나가던 추억은 인생일대의 가장 위험하고도 힘든 과정이었다.

 통문을 통과하여 가을바람 스산하게 부는 억새 밭길을 사주경계 대형으로 이동 중에 마지막 대원이 통과하면 철문 닫히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하였다. 내일 아침에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되기도 하였지만 부하들 앞에서는 의연해야 했다.

 중대장 시절 대대ATT 도중에 찾아온 태풍 때문에 훈련은 중단되고 야전에 세워놓은 중대 깃발이 바람에 찢어지고, 며칠을 두고 내리는 폭풍우 때문에 철수를 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팬티까지 젖은 상태로 며칠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젊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영하의 날씨에 눈 쌓인 야전에서 혹한기 야간 야외훈련을 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그때가 오히려 그리워지기도 한다. 연대 RCT 때는 사랑하는 소대장의 순직이라는 큰 슬픔을 겪기도 했다.

 힘든 추억이 있었는가 하면 좋은 추억도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여러모로 감사한 사람들도 많다. 부족한 인간이지만 군 조직상 상관이라는 계급과 직책 임무수행 때문에 잘 참아내신 모든 대원들에게 감사드린다. 아울러 부족함이 많음에도 너그럽게 포용해 주시고 격려해 주신 모든 상급자와 지휘관님들께도 감사를 드린다.

 살을 비비면서 잠자고, 밥 먹고, 총을 들고 함께 땀 흘리면서 훈련받던 모든 대원들이 감사하다. 훈련소 시절 장거리 행군으로 탈진 직전 건빵 한 조각으로 재충전을 해주던 전우가 그립고 고맙다. 지휘력이 미숙하던 초급장교시절 형처럼 지도해 주던 선배님들에게도 감사하다.

 철책선 근무때는 2주에 한 번 외박이 허락되는 여건 때문에 임신한 아내를 잘 지켜주지 못해 유산한 아내를 관사로 데리고 가서 먹이고 재우면서 정성껏 간호해 주셨던 대대장 사모님 은혜가 감사하고 뵙고 싶어진다.

 혹한기 훈련 때 양손에 보온병 들고 기다리다가 행군 중인 중대원들에게 따끈한 커피와 사탕을 나누어 주시던 선임하사 가족들께도 감사하다. 그리고 단합대회 때도 맛있는 음식 들고 달려와서 중대원들의 허전한 마음에 어머니 냄새를 풍겨주시던 수고로움에도 감사드린다.

 딸 출산 때 친정어머니처럼 산바라지 해주신 이웃집 아줌마도 감사하다. 한 번 밖에 못 찾아뵈었는데 다시 찾아뵙고 싶다.

 전방근무 하는 아들 집에 오신 아버지를 자신의 아버지 보다 더 극진하게 대해 주셨던 선임하사님께도 감사드린다.그 외에도 감사한 분들이 수없이 많지만 여기서 줄인다.

 지금까지의 인생은 국가를 위하여 헌신했다고는 하나 나를 위한 삶이었다. 여생은 아내와 건강하게 살면서 자식들로부터 효도를 받는 것이다. 몸이 건강해야 국가로부터 받은 혜택을 남을 위하여 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큰 일이 아닐지라도 공익과 질서에 도움이 되는 작은 일부터 남을 위한 일이라면 봉사할 작정이다. 그것이 퇴직한 노병이 걸어갈 정도이리라.(Konas)

김일태(前 예비군 지휘관, 수성구 수필창작회원)

*국보법개정서명바로가기 : http://konas.net/event/signature.asp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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