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

대한민국. 그가 꿈꾼, 그리고 우리가 이루어갈 나라

Written by. 형성근   입력 : 2012-12-14 오후 1:33:11
공유:
twitter facebook
소셜댓글 : 0

 요즘 세대들의 주요 관심사는 무엇일가?

 점점 벌어지는 세대격차로 인해 젊은이들과의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느끼시는 40,50대 분들이 궁금해 할만한 질문이다.

 속칭 ‘88만원 세대’라고 불리며 넘쳐나는 대졸자들의 홍수 속에서 무한 경쟁에 내몰린 요즘 2030세대들의 실태는 20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통계에서 찾아 볼 수 있듯이 냉혹한 현실에 대한 좌절과 이에 따른 포기 정서의 만연으로 요약 할 수 있다.

 59년 전의 전쟁의 참화를 뒤로하고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 도약이라는 성과와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환골탈태한 한국에서 장차 미래를 책임질 세대가 겪는 고민치고는 너무 뜻밖이다. 특히 악조건 속에서도 현재의 대한민국을 일구어낸 기성세대의 시각에서 볼 때 더욱 그러하리라 생각한다.

 식민조국의 상흔과 동족상잔의 잔재 위에 남은 것이라고는 뼈에 사무치는 가난 밖에 없던 나라였기에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들은 이 지구상 어느 민족, 어느 세대보다 열심히 일하셨다. 가진 지식도, 자원도 없었기에 상공에 더욱 목마를 수밖에 없었던 이 분들은 외화를 벌기 위해 중동의 찜통더위와 거센 모래폭풍, 독일 탄광의 매캐하고 어두운 막장도 기꺼이 감내하는 의지와 용기를 가지고 계셨고 그 결과 우리는 지금 세계 경제규모 14위와 무역 총액 1조 달러를 갱신한 세계에서도 몇 안 되는 국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런데 무엇이 부족하여 우리 젊은이들은 자신의 빛나는 청춘을 무가치하게 버리는 것일까? 미래 대한민국의 주역인 우리가 꿈꾸고 이루어갈 나라는 과연 경제적으로는 부유하지만 자살과 문화적 빈곤, 가치관의 부재로 어려움을 겪는 나라인가? 이 질문들은 ‘경제 발전’이라는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던 이전 세대들처럼 우리 세대가 앞으로 해답을 구해 나가야 할 역사적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보다 더 절망적인 상황에서 식민조국의 독립과 건국에 앞장선 건국의 아버지들의 지혜와 그분들이 꿈꾸었던 나라를 탐구해 보는 것은 상기의 질문을 고민하고 있는 우리에게 깊은 통찰력과 지혜를 제공하리라고 확신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백범 김구선생님이 꿈꾸신 대한민국은 현재 식자층에서 조망하는 미래 한국의 청사진에 다름이 아니다.

 수십 년간 망국 백성의 설움을 경험하시고 독립 후에도 사상적 대립으로 나눠진 안타까운 조국의 현실 가운데 다듬어진 그분의 정치 철학과 사상은 자주적 문화강국의 한국의 미래상이 우리가 마땅히 지향해야 하는 길임을 잘 보여준다.

 ‘백범일지’를 통해 나는 김구 선생님이 지난(至難)한 독립투쟁 과정과 민족의 분열, 그리고 조국의 독립에 이르는 험난한 여정을 어떤 가치관과 지도력을 가지고 극복해 오셨는지 확인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사상과 정치 철학의 주춧돌 위에 그분이 꿈꾼 미래 한국의 청사진이 오롯이 그려졌음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이하의 글을 통해 백범 김구선생님의 사상적 특징과 지도력을 살펴보고 이러한 특성이 그분이 꿈꾼 그리고 우리가 이루어갈 나라의 주춧돌이 됨을 논하려 한다.


 ‘백범일지’와 ‘나의 소원’을 관통하는 김구선생님의 이상적 국가상은 문화국가, 자주국가, 자유국가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주의 혁명의 심화로 격화된 동서냉전과 강대국 중심의 패권구도 아래서 인도적, 상호 호혜적 가치의 상실의 시대를 살아오신 배경을 고려할 때 일찍이 물질문명보다 문화와 교육을 통한 정신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그분의 사상은 시대를 넘어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을 잘 보여준다.

 우드로 윌슨 전 미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의 제창은 당시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통치 아래 신음하는 많은 민족들에게 희망을 주었지만 민족자결주의 역시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당시 국제 역학구도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변변찮은 국력의 당시 나라 현실은 우리 자신이 경쟁력을 갖추지 않는 한 국가 자생력 도모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쓰디쓴 교훈을 주었다.

 이러한 상황 아래 서방의 민주주의 제도만 도입하면 그들처럼 번영할 수 있다고 믿은 제도 만능주의자들이나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이상적인 평등 국가만 꿈꾼 사회주의자들의 주장은 혼란한 국내 사회상과 현실에 비추어 볼 때 큰 괴리감만 주었던 것이다. 이에 반해 문화적, 교육적으로 훈련된 국민과 민주주의 제도의 결합이 높은 수준의 자유국가를 이룩할 수 있다는 김구선생님의 주장은 세계 민주주의 발전사와 우리 경제 발전 및 민주화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높은 설득력을 가진다.

 특히 당시 범람하는 서양 문물과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경제, 과학기술을 보유한 자국 현실에 좌절한 일부 지식인들은 전통문화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과 서양문화에 대한 맹목적인 사대적 태도로 일관하였지만 김구선생님은 새로운 문물과 전통제도의 융합, 그리고 홍익인간을 기초로 한 전통사상 부흥의 기치를 높이 드셨다.

 이는 현대 국제 정치 중 문화, 외교적 역량을 강조하는 ‘소프트 파워’의 부상과 맞물려 우리의 전통 가치와 철학이 문화강국 건설 과정에서 핵심역량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문화, 자주, 자유 국가가 한 순간에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이상적 국가 건설을 위해 어떤 지도력이 필요한지, 어떤 덕목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지 정립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백범 김구선생님의 생애를 걸쳐 드러난 그분의 겸손과 섬김의 지도력과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력, 교육, 문화의 중요성 및 자주국방 의미에 대한 고찰은 ‘문화강국 대한민국’ 건설을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겸손과 섬김의 지도력
 일생을 통해 나타나는 그분의 지도력은 겸손과 섬김으로 특징지어 지며 이러한 지도력은 특히 민족의 고난이 극심했던 임시 정부 수립 전후 시기에서 더욱 빛났다. 3.1 만세 운동 이후 각지에서 벌어진 임시 정부 수립 움직임들은 그 해 4월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이승만박사 및 이동휘를 구심점으로 한 ‘신한민국 정부’, ‘한성정부’와 중국 상해의 ‘상해임시정부’ 그리고 러시아 지역의 ‘대한국민의회’이 있다.

 9월이 되어서야 각지의 임시정부들은 ‘상해임시정부’로 통합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드러난 파벌과 지역색등은 이후 임시정부 활동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독립운동 방식에 대한 각기 다른 생각들과 복잡한 이해관계, 통합 임시정부를 지지하는 북간도 항일 단체들간의 파벌 싸움 등은 당시의 정치적 통합이 원대한 임시정부 수립 목표에 비해 거칠고 어려운 험로였음을 잘 보여준다.

 망국 백성의 한을 품고도 정작 외부의 거대한 적 앞에서 사분오열한 당시의 세태 앞에 ‘임시정부의 문지기’라도 기꺼이 감당하겠다는 백의종군 자세는 오늘날 정치색에 따라 분열과 야합을 멈추지 않고 민생보다 정권 창출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정치권에 경종을 울리기 충분하다. 내가 중심이 아니라 내가 가진 숭고한 뜻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모습을 가질 때 우리는 오히려 더 큰 것들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김구선생님의 모습을 통해 배울 수 있다.

 광복 이후 남한 단독 정부 수립 시기에도 남한 정부 수립에 동참하셨다면 해방된 조국에서 대우받으시며 사실 수 있으심에도 민족 통일 국가의 큰 사명을 목숨처럼 지켜온 분이시기에 세상의 부귀영화는 그분의 우선순위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는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해있는 우리에게 한 사람의 겸손과 섬김의 미덕이 나라와 민족의 운명에까지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큰 그림을 보는 통찰력
 김구 선생님은 눈앞에 보이는 작은 이익보다 큰 목표를 보시는 통찰력이 뛰어나셨다. 만세운동 일화는 이를 잘 보여주는데 3.1운동 이후 전국 각지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은 조직적인 운동이라기보다 지방에서 호응하는 산발적인 운동이었고 시일이 지남에 따라 때때로 만세 운동에 편승하여 자신의 이익을 취하거나 만세 운동에 참여치 않는 인원에 대해 강제적인 방법을 행사하는 사례 역시 빈번했다.

 ‘백범일지’에도 이 시기 김구선생님께 만세 운동에 동참할 것을 권하는 주변의 목소리가 적혀있다. 그때 김구선생님은 “독립은 만세만 불러서 되는 것이 아니고 장래 일을 계획 진행해야 할 터인즉, 내가 참여하고 안 하고에 연연하지 말고 자네들은 어서 만세를 부르게”라고 답하셨다. 당시 애국지사로 알려진 김구선생님의 위치와 주변의 시선을 볼 때 이러한 대답은 사람들의 오해를 살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만세 운동의 한계와 장래의 거사까지 염두에 두신 선생님의 통찰력은 그분의 시선이 일시적인 항일 운동이 아닌 항구적인 민족독립과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건국에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이는 우리로 하여금 순간의 위기나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의식해 행동하기 보다 길게 보는 안목을 가지고 움직여야 함을 잘 보여 준다. 또한 이러한 사고가 다양한 분야에 적용된다면 우리는 장차 균형 잡히고 발전된 한국의 모습을 이루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교육의 중요성
김구선생님의 일생을 살펴보게 되면 교육에 대한 큰 열정을 발견할 수 있다. 어려서는 배움에 대한 목마름 때문에, 장성한 후에는 배움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것들의 가치를 알아갔기 때문이다. 국모보수(國母報讐) 이후 인천 감옥에 수감되셨을 때도 죄수들을 상대로 가르침의 고삐를 늦추지 않으셨으며 탈옥 후 안악의 양산학교 교사로 재직한 경력은 그분의 교육에 대한 철학이 단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교육에 대한 열정은 그분의 정치철학 형성에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나의 소원’에서 볼 수 있듯이 김구선생님은 정치철학으로 ‘자유’를 강조하시는데 여기서 ‘자유’라는 것은 특정 철학이나 사상만을 강제하는 것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상과 의견, 언론 자유의 보장을 통해 이루어가는 여론 수렴의 민주주의 방식을 일컫는다.

 김구선생님은 이러한 정치제도가 잘 작동하기 위해서 이를 운용하는 사람들의 문화와 교육이 중요함을 일찍이 아셨다. 그분이 꿈꾼 한국은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도, 강력한 무력으로 무장한 나라도 아닌 자력 갱생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닌 문화 선진국이며 현재 많은 나라 간의 소요와 충돌들이 인의, 예의, 사랑이 부족함 때문임을 지적하시고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숭고한 뜻을 다시금 전파하신 것이다.

 이러한 선견지명은 국제사회에서 확대되고 있는 한국의 지명도와 K-pop을 필두로한 한국문화 저변확대와 맞물려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유튜브(Youtube) 등 다양한 온, 오프라인 매체를 통해 K-pop을 비롯해 한국의 전통 문화에 심취한 외국인들의 수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으며 IMF등의 국제기구에 기여하는 한국의 분담금과 역할 역시 과거에 비해 비약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발전과 성과의 지속성은 문화와 교육에 대한 일관성 있는 투자와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잿더미를 딛고 오늘날의 성공을 이루어낸 중요 요인으로 ‘교육과 과학기술’의 발전을 꼽는 것처럼 우리세대 역시 지속적인 교육과 연구를 통해 세계 속에서 미래의 문화선도국가 역할을 자임해야 할 것이다.

강한 군인의 자세와 자주국방의 중요성
그분의 강한 군인의 자세는 결단력과 애국심에서 잘 드러난다. 옳은 것을 위해 결연히 일어날 수 있는 기개와 명성황후 시해 이후 국모보수(國母報讐)를 위해 일본군 중위를 처단하신 용감함은 필시 범부가 가지기 힘든 결단력이다. 특히 난세에 외부의 위협과 협박에 굴복하지 않고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덕목은 군인과 국민으로써 반드시 배워야 할 미덕이다.

 자주 국방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 역시 군인으로써 무장해야 할 핵심가치이다. 군사력이 강하지 못해 나라를 빼앗기는 수치를 당하고 상해 임시 정부 시절 단발적인 요인 암살로는 독립운동의 한계를 절감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 하에 국민당과의 협력을 통한 자주적 군사력 확보 노력은 국가의 틀을 갖추기 위한 국방력의 필요성을 잘 보여준다.

 비록 나라와 백성 없이 타향에 설립된 임시정부이지만 자체 군사력을 갖춤으로 식민조국 수복의 꿈을 키운 것은 자주 국방의 참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변변한 전투장비도, 전차도 없었던 광복군이었지만 미군 및 국민당과의 협력을 통해 군사 훈련과 국내 진입 작전이 무산되었지만 우리 역사에서 임시정부가 남긴 성과와 족적이 작다 하지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자유국가에 대한 열망일 것이다. 지금의 부유하고 자유로운 나라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우리세대의 시각에서 이 성과를 이루기 위해 피땀을 흘린 세대에 대한 기록은 자주국방의 중요성과 이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의 노력이 필요함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특히 아직 통일을 이루지 못한 우리는 대내외적으로 많은 적들을 두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는 종북 세력들과 그 배후에 있는 북한의 존재는 올바른 국가관과 애국심이 결여되었을 때 자유의 축복 역시 재앙으로 변할 수 있다는 지엄한 사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적행위들은 언젠가 역사의 준엄한 심판대에 오를 것이며 우리는 자주 국가 수호를 위해 이런 행위들을 지양하고 굳건한 국가관과 애국심으로 무장해야 할 것이다.

 이상의 글에서 나는‘백범일지’를 통해 김구선생님이 후세에 남기신 정신적 유산에 대해 살펴 보았다. 흔히들 ‘재물은 있다가도 없지만 명성은 만세에 길이 전해진다’라는 말을 많이 하곤 한다. 국가 역시 흥망성쇠를 경험하지만 한 세대의 찬란한 문화유산은 파산치도, 소멸되지도 않으며 길이 전해져 후손들의 찬사와 경외를 불러 일으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사람을 움직이고 변화시키는 강력하고 선한 문화의 힘을 경험할 때 우리는 세계 평화가 단지 뉴욕 유엔본부나 제네바 국제 기구들에서만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나라의 광복과 건국을 위해 모든 사람이 본인처럼 애국심이 뛰어나야 한다는 의미로 지은 그분의 호처럼 우리세대 역시 모든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면 자유, 자주 국가 건설과 문화국가 창달이라는 위대한 목표의 달성도 요원 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과 후손들이 자랑스워 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가기 위해 다시 한번 김구선생님의 사상과 가르침을 마음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konas)

군수사 탄약지원사령부 3탄약창 2경비중대 상병 형성근

*국보법개정서명바로가기 : http://konas.net/event/signature.asp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facebook twitter 책갈피저장 메일보내기
소셜댓글
로그인선택하기 트위터 페이스복
원하는 계정으로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여 주십시요.
입력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1
로그인하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