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문예물공모전⑦〕태양이 뜨는 나라, 에티오파아
본 내용은 국가보훈처가 주관한 『2012년 보훈문예물 공모전』에서 「수필」 중고등부 우수상으로 선정된 송승희(미림여자정보과학고) 학생의 글임. (편집자 주)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대륙의 나라로, 수도는 아디스아바바이다. 정식 명칭은 에티오피아 연방 민주공화국으로,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공화정이다. 주요 산업은 커피 생산이고, 악숨 제국을 시작으로 3,000년의 역사와 함께 많은 고대 유적, 유물과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하지만 현재 다른 나라의 원조를 받아야 할 만큼 경제 사정이 굉장히 어려운 최빈국이다. 지구 한 바퀴를 돌아야 할 만큼 먼 거리의 나라인 데다가, 아프리카 대륙의 가난한 나라인 만큼 우리나라와 관계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에티오피아는 우리나라가 가장 힘들었을 때, 같은 겨레와 싸우고 자유와 희망을 빼앗기려 할 때, 존재조차 몰랐던 동양의 조그만 나라를 위해 자신들의 어려운 사정에도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도움을 보내온 국가 중 하나이다.
에티오피아는 18세기 이후 유럽 열강들에 의해 고통받고 상처받았던 아프리카의 나라들과는 다르게 가장 오랫동안 독립을 유지했던 나라였다. 또한, 인종과 대륙 등 많은 것이 다르지만 자유와 희망을 갈망하고 불의와 식민주의에 끝없이 저항했던 과거는 우리나라와 많이 닮아있는 나라이다.
20세기 초, 무솔리니가 주도권을 쥐고 있던 이탈리아에 의해 식민 지배를 받게 되자, 에티오피아는 자유 독립을 위해 저항했다. ‘흰 뱀에 물리면 치료약도 없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에티오피아의 영웅 바타 하고스는 1894년에 에티오피아를 지배하는 이탈리아 식민주의자들에 저항하는 폭동을 일으켰다.
바타 하고스는 폭동도중 사망했지만, 이 폭동은 후에 에티오피아 군대가 이탈리아 군대에 승리하는 아드와 전투의 시발점이 되었고,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전역을 어두운 그림자와 함께 휩쓸고 있던 유럽 식민주의에 정면으로 맞선 아프리카 저항과 자유의 상징이 되었다.
‘맨발의 마라토너’ 로 유명한 ‘아베베 비킬라’는 1960년 로마 올림픽과 그 다음 올림픽인 도쿄 올림픽에서 흑인 최초로 마라톤 2관왕에 빛나는 에티오피아의 국민적 영웅이다. 그는 가난한 사정으로 황실 근위대로 일했고, 한국 전쟁에도 참전했었다. 런닝화조차 없어 맨발로 뛰어야 했고, 지금이야 정말 웃기는 얘기지만 그 때 당시엔 거의 기정사실이었던, ‘흑인은 마라톤 종목에 취약하다’라는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무시를 견뎌야 했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맨발로 로마 올림픽 무대에 설 수 있었고,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며 도 착점을 앞두고 2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때, 로마의 중심가인 콜로세움이 보이고, 그의 유년시절 에티오피아를 지배하던 이탈리아의 식민지배로 인해 약탈된 오벨리스크 상을 보게 되었다.
독립후 에티오피아 인들은 수년째 반환 운동을 벌이고 있었지만, 이탈리아는 돌려주겠다는 약속만을 한채 13년째 반환하지 않고 있었다. 식민지 백성으로 유년기를 보냈고 한때 황실 군인이었던 그가 지금 로마의 중심인 콜로세움 거리를 맨발로 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엔 식민지배의 상징인 빼앗긴 오벨리스크가 눈앞에 있었다. 그는 달리기 시작했다.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1위로 달리고 있던 선수를 무려 25초나 제치고 그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세계 신기록, 그리고 흑인으로는 최초의 마라톤 종목 금메달이었다.
또한 ‘마라톤은 꾸준히 페이스를 유지하는 선수가 승리한다.’라는 고정관념 역시 깨 버리며, 아베베 비킬라는 몰려드는 취재진들에게 힘든 기색 하나 없이 말했다.
“나의 조국 에티오피아가 언제나 단호하고 영웅적으로 시련을 이겨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조국의 자유와 저항을 위해 싸웠던 바타 하고스와 아베베 비킬라에게서 일제 강점기때 독립을 위해 독립운동을 펼치고 모진 시련과 핍박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던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이 연상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특히 맨발의 마라토너 아베베 비킬라에게서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뛸 수밖에 없었던, 그럼에도 조국의 절망적인 상황을 알리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달렸던 조선의 청년 손기정이 연상되는 것은 비단 필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이탈리아와 일본, 무자비한 제국주의 국가에게 지배당하던 에티오피아와 조선은 각각 1944년, 1945년에 독립하게 된다. 완전히 독립한 에티오피아는 황실을 중심으로 한 재정를 이어나갔다. 그러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 했다. 에티오피아는 어려웠던 재정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의 나라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그때 당시엔 존재조차 몰랐던 동방의 작은 나라의 자유를 위해서 에티오피아는 무려 3,518명이라는 군인을 파병했고, 그중 657명이 한반도에 뼈를 묻었다. 휴전후에도 얼마동안은 군인을 주둔시켜 처참히 망가진 남한을 재건하고 재정비하는 것을 도왔으며, 1965년 1월 완전 철수했다.
조국으로 돌아간 군인들은 성대한 환영과 함께 황제의 격려와 보상금 등이 지급되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군부 쿠데타에 의해 제정은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섰다. 참전용사들은 단지 공산국가와 맞섰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연금이 끊기고 직장에서 쫒겨났다.
부상으로 인해 평생 불구로 살아가야 하는 많은 참전용사들은 아직까지도 멸시와 핍박으로 죄인처럼 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원망하지도 않는다. 신문기사에서 에티오피아의 한 참전용사의 인터뷰를 본 순간 느낄 수 있었다.
“내 비록 온몸에 총탄이 박히고 팔, 다리를 잃었지만 자유를 위해 싸웠다는 자부심으로 한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가난과 멸시가 대물림되어 자식 교육도 제대로 시키지 못하고 있지만 한국이 발전되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흐뭇합니다. …혹시 한국에 다시 전쟁이 난다면 또다시 참전할 것입니다.”
‘자유’를 갈망하는 우리를 보고, 그들은 그들의 과거를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 그리고 바닥난 재정에도 식량을 원조했다. 그 대가로 에티오피아는 현재 세계 최빈국으로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원망하지 않고 우리나라를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정작 그들은 억압받고 빈곤하면서도, 자유를 위해 싸웠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매일 태극기를 게양할 만큼….
이제 우리가 그들을 도울 때가 아닌가. 우리에게 자유를 선물해준 그들을 위해 우리는 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에티오피아의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위해 매월 5만원씩 연금을 지급하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는 굉장히 적은 돈일 수도 있겠지만, 에티오피아에서는 한달 생활비를 충당할 정도라고 한다.
공화정에 의해 아무런 소득조차 얻을 수 없는 참전용사들에겐 큰 힘이 될 것이다. 또한 KOICA(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한국 국제 협력단)은 에티오피아 어린이들에게 급식을 지원하고 의료봉사를 하는 등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유니세프에서는 에티오피아 어린이들을 위한 모금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 모두, 기적을 이루어 내자. 한강의 기적, 대한민국의 기적은 단지 우리나라만 발전하고 잘 살게 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잘살게 되었을 때, 대한민국의 기적은 비로서 찬란히 빛날 것이다.
한국 전쟁때, 에티오피아에서 우리에게 ‘태양의 빛’ 을 전해 주었던 것처럼, 어두운 현실의 그들에게 우리도 찬란한 대한민국의 빛을 전해주자. 에티오피아가 다시, 13월의 태양이 뜰때까지.(Konas)
송승희 (미림여자정보과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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