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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독립운동가 김붕준(金朋濬) 선생

Written by. 이영찬   입력 : 2013-03-29 오후 1: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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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기념관(관장 김능진)은 국가보훈처와 광복회 공동으로 김붕준 선생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선생(1888. 8. 22 ~ 1950. 9. 28)은 평안남도 용강(龍岡) 출생으로, 1907년 신민회(新民會) 청년학우회(靑年學友會)에 가입을 기회로 청년운동을 전개했다.
 
 1919년 3·1운동 때 민족운동에 참여 했다가 중국 상해(上海)로 망명하여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가한 후 이듬해인 1920년 임시정부 군무부 서기를 시작으로 군무부원 및 국무원 비서장 등을 역임하였다.

 1930년에는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의 경영을 맡아 ‘독립운동사’ 편찬에 관여하는 한편, 1935년에는 이동녕(李東寧)·김구(金九)·안창호·조완구(趙琬九)·차이석(車利錫) 등과 한국독립당 간부로 활약하다 1938년 흥사단 원동위원장을 거쳐 1939년 임시정부 제15대 임시의정원 의장을 지냈다.

 1940년에는 한국독립단 위원으로 조소앙(趙素昻)·지청천(池靑天)·김학규(金學奎)·엄항섭(嚴恒燮)·유동열(柳東說) 등과 활약하였으며, 1944년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 활동하다가 8·15광복으로 11월 임시정부요인들과 환국하였다.
 
 특히 선생은 독립운동세력의 통합을 위하여 1941년 임시의정원 의장의 권한으로 좌파인 조선민족혁명당 세력을 등원시켜 좌우합작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러나 선생은 이에 굴하지 않았고, 좌우합작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다하여 이듬해(1942년) 조선민족혁명당을 임시의정원에 참여시키는데 성공하는 등 분열된 독립운동계를 통합하는데 많은 기여 하였다.

 해방후에도 선생은 신탁통치반대운동·남북협상 참석·남북 총선거 주장 등 통일민족국가 건설에 노력하였으나, 1950년 6·25 전쟁 중 7월 27일 납북되어 그해 9월 28일 작고하였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로를 기려 1989년 건국공로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Konas)

코나스 이영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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