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라고 쓰인 깃발을 들고
생각이나 이념이 보수적인 사람이 있고 진보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일상생활에도, 비록 경계선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보수’와 ‘진보’를 갈라놓을 수 있습니다.
정치는 더욱 그렇습니다. 한말의 대원군이 쇄국을 고집했다면 그는 보수이고, 개화당의 김옥균이 개혁을 주장했다면 그는 진보입니다. 러시아의 1917년 혁명에서 노동자와 농민의 편에 서서 싸우면 진보였고, 황제와 지주를 위해 싸우면 보수 또는 반동이었습니다.
올리버 크롬웰이 청교도 혁명을 감행하던 17세기 중엽의 영국에는 ‘의회파’(議會派)가 있었고 이에 대항하는 ‘왕당파’(王黨派)가 있었습니다. 영국의 좌파․우파는 그렇게 해서 갈라졌으나 오늘 영국에는 왕당파는 없고 의회파 뿐이지만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이 있고 캐머론의 보수당이 있을 뿐입니다.
6.25 때 김일성이 무력에 의한 적화통일을 시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 사실을 애석하게 여기며 강남의 술집에 앉아 샴페인을 마시면서 대한민국이 망할 날을 고대하고 있는 자를 제정신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놈을 진보니 좌익이니 하고 치켜세울 수는 없습니다. 대한민국 국회 의사당에 앉아서 태극기 대신 인공기만 흠모하는 미친놈은, ‘진보’라고 높이면 나라가 망합니다.
노동조합이, 강성이건 약성이건,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의 생활향상은 안중에 없고 다만 김일성의 손자가 적화통일 하는 날만 바라보고 뛰고 있다면 그건 노조가 아니라 반국가단체가 아닙니까. 우측통행하는 나라에서 좌측통행을 감행하는 자들을 그대로 두고 이 땅에 ‘희망의 꽃동산’을 가꿀 수는 없습니다.
‘진보’라고 쓰인 깃발을 들고 나오는 자들이 대부분 ‘진보’가 아니라 ‘반동’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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