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 방문기> 한많은 두만강아!!
주변 강대국들이 동북공정과 독도 문제 등 21세기형 새로운 침략을 감행하려는 단순한 기도를 개탄하면서 서릿발 같은 기상으로 광활한 저 대륙과 바다를 향해 호령하던 자랑스러운 선조들의 흔적과 체취라도 느껴보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우리의 고토를 장기 임차라는 방법으로 라도 차지해서 남북한 식량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서는 조국통일의 기반조성과 고구려의 영광을 다시 한번 누려야 한다는 외고집으로 123차례나 연해주를 왕래 하면서 노력하는 국제 농업 개발원 이병화 원장의 장대한 계획에 크게 감동하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벌써 우리의 기업들과 종교단체들이 이원장의 도움으로 5억8천 만평이나 되는 방대한 토지를 평당 30원내지는 50원정도로 49년간 장기 임차해서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슴을 뿌듯하게 했다.
지난날 우리의 영토 였지만 지금은 삼국(중국 러시아 북한)의 닭울음소리가 들린다는 두만강 하류 방천에서 한·중·러 정상회담기념 평화마라톤대회를 위해 서울시 재향군인회 회원과 국제농업개발원 회원 200여 명이 러시아령 자루비노 항을 향해 닻을 올렸다.
5년 전부터 속초-자루비노-훈춘을 있는 해륙 교통로를 개설하여 운항하고 있는 동춘해운의 김갑중 회장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면서 17시간의 먼 뱃길이 시작되었다.
쾌청한 날씨 덕분에 바다의 진면목을 볼 수없었지만 북방 경계선(NBL)을 넘는다는 기대에 특히 노진덕 제독을 비롯한 해군 출신들은 더더욱 감회가 큰 것만 같았다.
우리의 지루한 뱃길을 염려하여 농업개발원 이병화 원장께서 초대해온 연예인들의 공연으로 선상의 밤은 황홀의 극치를 이루었다.
대부분 들뜬 기분으로 과음들을 했는데도 바다의 맑은 공기 덕분인지 전혀 피곤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아침을 맞았다.
예정된 시간에 맞추어 러시아 입국절차가 시작되면서 일정을 예정되로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한때 냉전체제에서 미국과 대등한 경쟁을 하던 나라라고는 어느 구석에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세관의 근무자들인 국경 수비대 요원들은 우리가 반가운 손님이 아니라 자신들의 시간을 빼앗은 귀찮은 존재로 생각하는 것만 같았다.
이유도 없이 우리가 기다리든 말든 통관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주눅이 들어 무표정하게 눈만 반짝이는 국경 수비대들의 눈치만 살피고 있을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마치 인내의 한계를 실험하는 것만 같았다.
겨우 통관을 해서 준비된 버스에 오르자마자 타임머신을 타고 30년전으로 돌아온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반갑게도 그 버스는 우리가 70년대 시내 좌석버스로 사용하던 버스로 심지어 버스 앞자리에 노약자 보호석이라고 한글로 표기한 안내판이 그 되로 남아 있었다.
아직까지 폐차되지 않고 운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낡은 버스지만 통행량이 전혀 없는 광활한 들판을 가로 질러 달리기 시작하면서 더 넓은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말달리던 우리의 자랑스러운 선조들의 기개가 가슴을 뜨겁게 했다. 못난 후손들이 제 땅도 지키지 못한 것도 모자라 강토마저 둘로 갈라져 반나절이면 당도할 거리를 30여 시간이나 넘게 걸렸을 뿐만 아니라 무려 여권을 왕복 10여 차례나 제시해야하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 국경에서는 아무 이유 없이 5시간이나 붙들어 놓고 있어서 의아하게 여겼는데 근무자들이 점심 먹느라고 자리를 비웠기 때문이라는 애길 듣고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과연 저들이 냉전시대 미국과 함께 최강대국으로 군림 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공산주의라는 소극적인 공생을 무려 일세기 가깝게 하는 동안 삶의 지고한 가치가 소멸되고 말았다는 사실이 새삼 큰 교훈으로 다가왔다.
훈춘으로 가는 도중에 우리의 안중근 의사께서 동지들과 무명지를 자르면서 기필코 조국 독립을 이루고 말겠다고 맹세를 한 단지 동맹의 유적지가 있었다. 모 정치인이 병역을 기피하기 위해선지 아니면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기 위해선지 손가락을 잘라 논란이 되고 있는 시점이라 더 큰 의미로 다가왔다.
|
안 의사 께서는 그 후에 이등박문을 저격하고 여순의 차가운 감방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순간에도 찾아온 동지에게 내 비록 조국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불귀의 객이 되지만 나의 원혼이라도 고국하늘로 날아가서 왜놈들을 몰아내겠다고 호언하셨다고 한다.
안 의사의 정신을 다시금 가슴에 새기면서 힘겹게 당도한 훈춘의 장영자 변경 통상구(세관)은 마치 우리 고향에 온 듯한 기분이 되었다. 그 옛날 발해국의 수도이기도한 훈춘은 조선족 자치주에 속한 도시로서 우리 교민들이 많아 언어부터 전혀 장애가 없었다. 훈춘은 자연자원의 풍부함과 지정학적인 중요성으로 황금의 삼각주라 불리기도 하는데 속초 훈춘간 항로가 개설됨으로서 향후 수년 내에 서해 쪽 어느 곳보다 한 중 경제 교류가 왕성 활 것으로 그 곳 교민들은 기대하고 있었다.
우리를 마중 나온 관광버스부터 러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아 무섭게 도약하는 중국 경제의 현 주소를 짐작하고도 남았다. 러시아 통과지연 때문에 안의사가 기거하던 오두막집을 거쳐서 저녁노을이 짙어 갈 즈음에야 삼국의 국경이 맞닿아 있는 두만강가 방천에 당도할 수 있었다.
|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굶주린 백성들이 식량을 구하기 위해 기약 없이 두만강을 건너가는 남편과의 이별로 여인들의 오열하는 눈물이 나루터에 흘러 넘쳤 다고 한다.
동포의 눈물어린 사연을 듣고 작가 이시우가 그 유명한 눈물 젖은 두만강이라는 노래를 지었다고 하는 그 한 많은 두만강너머로 민둥산 북한 땅이 지척 간이었다. 탈북자들이 목숨을 걸고 강을 헤엄쳐 오다 인민군들에게 사살되는 모습을 수시로 목격할 뿐만 아니라 요즘도 하루에도 200여 북한동포들이 탈북 한다는 가이드의 설명에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남의 나라에서 고국산천을 바라보면서 강가의 방천을 따라 진행된 평화 마라톤대회는 땅거미가 내릴 무렵에야 종료되었다. 200여 회원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북한 땅을 바라보면서 조국통일 만세를 불렀다. 모두가 감정이 북받쳐 눈가에 이슬이 맺는듯했다.
우리 교포3세인 김상진 훈춘시장께서 마련해준 저녁 만찬에서 모든 피로가 한꺼번에 풀렸다.
관광객을 하나라도 더 유치하기 위해서 동원된 무용단들과 우리 교민가수들의 흥겨운 가락에 훈춘의 밤은 깊어갔다. 지난날 목숨 받쳐 조국을 사수한 역전의 용사들이 민족의 얼이 숨쉬는 역사의 현장에서 개최한 평화 마라톤 대회는 분단의 역사를 마감하는 기폭제로 더나아가서는 한민족이 수난의 역사를 마감하고 대웅비하여 한민족시대를 열어가는 힘찬 출발점이 될것이라 확신하면서 협조해주신 많은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konas)
김병관(서울시 재향군인회장)
**이 글은 5월 19일부터 22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필자가 서울시 재향군인회 회원과 국제농업개발원 회원 등 200여 명과 함께 연해주 일대를 방문하고 쓴 글입니다.(편집자)
- 관련기사보기
-
좋은 경험 하셨군여~ 한총련 얘들은 편하게 금강산 가는데 배타고 멀리 가시느라 고생 좀 했겠어.. 같은 곳을 가도 사람의 생각에 따라 느낌이 다르듯 재향군인회장 신분으로 가서인지 글 속에 애국심이 배어 있네여!~~</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5-05-25 오전 9:4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