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評>석유가격의 국제정치학
미국이 사용한 “오일카드”는 중국이 세계 석유 시장에 내 놓은 수백억 달러가 러시아로 유입되도록 작용 했을 것이다.
* 이글은 월간조선 2009년 11월호 서평으로 기고한 글입니다.
서평한 책: James R. Norman, The Oil Card: Global Economic Warfare in the 21st Century Trine Day 출판사, Waltersville, Oregon, 2008.7.
어떤 상품의 가격은 그 상품의 희소성 여부에 의해 결정 된다는 사실, 즉 상품의 가격은 공급과 수요의 크기에 따라 결정 된다는 사실은 경제학을 깊이 공부하지 않은 보통 사람들도 다 알고 있는, 상식화된 경제지식이다. 어떤 상품을 사려는 사람이 많고, 그 상품의 공급이 부족하다면 상품가격은 오를 것이요, 그 반대라면 상품 값은 내려 갈 것이다. 그런데 반드시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 되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상품이 있으니 그 대표적인 것이 석유라고 말 할 수 있다.
지난 수 십 년 동안의 국제 석유 가격 변동을 살펴보면, 석유가격의 등락은 수요 공급의 법칙을 본질적으로 위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석유는 현대 산업 국가들이 모두 자국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전략 상품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에, 석유가격이 시장의 법칙을 초월 할 수 있는 것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할 경우라도, 석유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시장이 아니라면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라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국제 석유가격은 배럴( 약 160 리터) 기준으로 1970년대 초반에는 2-3 달러 수준, 74년-79년 까지는 15달러 수준, 1980년대 초반에는 약 40달러 수준을 유지 했다. 그러던 것이 1985년 이후 갑자기 10달러 초반으로 하락, 그리고 1990년 까지는 10-20 달러 사이, 90년대 10년간은 대체로 20 달러대를 유지 했었다. 그런 석유가격은 2000년 이후 터무니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상승, 2008년에는 150 달러에 육박했었다. 2009년 인 현재 50-60달러 대를 유지하고 있다.
세계 전체의 석유 수요는 대체로 완만한 증가세를 보여 왔는데 반해 석유 가격은 등락의 폭이 극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석유 가격을 결정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은 전쟁의 발발과 석유가격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전쟁이 발발하면 석유가격이 오른다는 것이다. 1973년의 이스라엘과 아랍권의 욤 키푸르 전쟁(Yom Kippur War), 1980년 초반의 이란-이라크 전쟁 발발은 석유 가격을 상승 시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1991년의 걸프 전쟁은 오히려 석유 가격을 낮추는데 기여 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룬 중국과 인도가 석유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기 때문에, 혹은 석유가 고갈 되고 있기 때문에, 혹은 세계 수많은 운전자들의 주머니에서 돈을 빼내려는 월 스트리트의 교활한 석유 투기꾼 때문에, 석유가격이 오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국, 인도의 석유 소비량 증가, 석유자원의 고갈, 월가의 투기꾼이 원인 이라면 석유가격은 오르기만 해야 할 터인데, 몇 달 사이에 갑자기 석유가격이 반 토막 혹은 1/3 로 떨어지는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석유 가격 변동에 관한 이 모든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과감한 논리를 제시하고 막강하고 정교한 통계 자료를 동원, 석유가격의 변동에 대한 자신의 설명을 증명해 보이는 저서가 출간 되었다. 과감한 논리란 석유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강대국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특히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경제전쟁”(Economic Warfare) 이라는 주장이다. 이 책의 저자는 석유의 생산, 분배, 가격 및 이에 얽힌 정치적 문제점들을 오랫동안 보도해 온 석유문제에 관한 전문기자인 제임스 노만(James Norman) 으로 1980년대와 2000년대 석유가격 변동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는 석유문제 전문가 중 한 사람이다.
우리는 ‘경제전쟁’ 이라는 용어를 오랫동안 들어서 익히 잘 알고 있었지만, 경제전쟁은 군사력을 동원해서 싸우는 전쟁에 비교하면, 설사 그 전쟁에서 지더라도 그 대가가 그렇게 심각한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 해 왔다. 제임스 노만은 경제전쟁을, 강대국들이 핵무기 등 각종 현대 군사력을 동원해서 진짜 전쟁을 할 경우 모두 공멸해 버릴 것이기 때문에 생각해 낸, 그러나 패자에게는 진짜 전쟁에 버금가는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다른 수단에 의한 전쟁이라고 본다. 경제전쟁에 지는 나라는 국민생활이 궁핍 해 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국가가 붕괴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제임스 노만은 우선 1980년대 석유가격이 배럴당 10달러 대를 유지했다는 사실과 1999년 15달러 정도 였던 석유가격이 2008년 1배럴당 150 달러에 도달할 정도로 급격히 상승했던 것은 모두 사장가격에 의한 석유가격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는 석유가격이 시장가격을 반영하고 있지 못한 이유를 ‘강대국 간의 경제전쟁’에서 찾는다. 특히 패권국 미국이 미국에 대항하는 도전자 들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석유 카드”(Oil Card)를 사용하고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이 가설을 성실하게 증명해 내고 있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을 악의 제국(Evil Empire) 로 상정했다. 기독교 국가인 미국이 어떤 나라를 악(Evil) 으로 상정 했다는 사실은, 미국이 그 나라의 현존하는 정치 경제체제를 제거 하겠다는 정책을 전개할 것 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소련을 자유주의, 자본주의 국가로 체제 교체(regime change)시키기로 마음먹은 레이건 대통령은 자신이 가장 신뢰했던 참모인 윌리엄 케이시를 그에게 주어야 할 직책보다 훨씬 낮은 중앙정보국 국장으로 임명한다. 소련 붕괴라는 목표는 외교(국무부),전쟁(국방부) 의 영역이기 보다는 은밀한 작전(Operation)의 영역이었고 그 일에는 CIA 가 적격 이었고, 윌리엄 케이시가 CIA 국장직을 담당하기에 가장 적격이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경제전쟁은 은밀한 작전을 전개하는데 필수적인 수단이다.
소련을 경제적으로 고사시키기 위해서는 소련의 주요 수입원인 석유의 가격을 대폭 낮추는 일이 중요했다. 케이시는 국제 석유가격의 변동을 정기적으로 체크 하며, 소련이 석유수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입을 최소화 시키는 작전을 펼쳐나갔다. 미국의 석유 재벌들을 압박했으며, 석유의 최대 생산국 사우디아라비아의 ‘팔을 비틀거나’ 혹은 ‘AWACS 등 최고급 무기 판매를 미끼로’ 사우디의 석유 생산량을 최대로 올렸다. 석유가격의 하락 때문에 소련은 당연히 들어와야 할 돈 수백억 달러가 날아가 버렸다.
2000년 이후 미국의 패권적 지위에 “겁 없이” 도전하고 있는 나라는 중국이다. 불행하게도 중국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양의 석유를 수입해야만 하는 나라다. 사우디에 이어 세계 제 2위 석유 수출국 소련이 미국의 도전자 였던 시절, 세계의 석유 가격은 배럴당 10달러 대라는 그야말로 “껌 값” 수준이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석유를 많이 수입해야만 하는 중국이 미국의 도전자로 간주되는 2000년 이후 석유가격은 그야말로 “금값” 수준인 배럴당 100 달러를 훨씬 넘어서고 있다.
한국군이 국군의 날 61주년 기념식을 아주 조촐하게 치룬 지난 10월 1일, 중국은 건국 60주년을 기념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군사 퍼레이드를 벌여 자신의 국력을 세계에 과시 했다. 온갖 새로운 중국제 무기들이 동원되었고 중국 인민 해방군의 절도 있는 행군 모습은 주변국들을 겁주기 충분했다.
중국은 ‘군사력’을 과시하고 있지만 미국은 중국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군사력 보다는 "경제 전쟁" 이라는 수단을 사용한다는 전략을 이미 오래전부터 가동시키고 있었다. 높은 석유 가격은 중국의 외한 보유고 중 수백억 달러가 세계 석유 시장을 향해 쏟아져 나온다는 사실을 의미하며, 그 중 수백억 달러는 석유 가격 인상으로 사상 유례없는 경기 호황을 맞이하고 있는 러시아로 굴러들어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미국이 사용한 “오일카드”는 중국이 세계 석유 시장에 내 놓은 수백억 달러가 러시아로 유입되도록 작용 했을 것이다. 중국이 지난 10월 1일 엄청난 군사 퍼레이드로 세계를 겁준 바 있었지만 사실상 군사 퍼레이드의 원조(元祖)는 소련 이었다. 소련이 망한 1990년 이후 18년 동안 러시아는 크렘린 광장에서의 거창한 군사 퍼레이드를 벌일 수 없었다. 그런 러시아가 18년 만인 2008년, 그리고 2009년 연이어 크렘린 광장에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벌일 수 있었다. 석유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막대한 오일 달러 덕택에 가능하게 된 일이다.
퍼레이드에 동원된 무기 체계를 보면 러시아 군사력이 중국 보다는 훨씬 더 막강해 보인다는 것이 솔직한 느낌이다. 그런데 다시 일어서고 있는 러시아는 미국과 중국 중 누구에게 더 큰 걱정거리가 될까? ‘보이지 않는 손’ 이라는 설명력이 막강한 경제학 개념에 해당하는 국제정치학 개념은 ‘지정학’ 이다. 지정학은 일어서는 러시아는 미국이 아니라, 중국의 악몽이 될 것이라는 결정적인 근거를 제공한다.
20여 년 전 낮은 석유 가격으로 소련을 붕괴시키는데 성공 했던 미국은 이제는 높은 석유 가격을 유지함으로써 러시아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있는 동시에, 중국의 경제발전을 효과적으로 방해(hedge)하고 있다. 물론 고유가 정책은 미국에게도 힘이 드는 일이다. 제임스 노만 기자는 미국은 고유가로 인해 감기가 걸리겠지만 중국은 폐렴을 앓게 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내가 더 잘살게 되는 것 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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