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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忠臣'이고 '逆臣'인가!

세종시, 4대강 문제 역사 앞에서 오늘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다시 한번 되새겨 봐야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09-12-24 오후 12: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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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으로부터 1349년 전인 660년 음력 7월9일 지금의 충남 논산시 연산면 신양리 일대에서는 국가의 사활을 건 일대 혈전이 펼쳐졌다. 바로 황산벌 전투다. 국가의 흥망이 기로에 서 있음을 예감한 백제의 계백 장군은 "살아서 모욕을 당하느니 죽는 것이 낫다"며 가족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고 5천 정예병으로 5만의 나-당 연합군에 맞서 4차례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결사대와 더불어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다. 

 1598년 11월 임진왜란의 막바지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은 왜군에 월등히 열세한 200여척의 조·명 연합군 병력으로 500여 척의 왜선과 맞닥뜨려 200여 척의 왜군을 격파하고 포위되었던 명나라 장수 진린 제독을 구하고 도주하던 적을 추격하다 왜적의 흉탄에 맞고 쓰러졌다.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고 당부한 그의 마지막 말에 의해 노량해전에서의 승리이후에야 알려졌다. 

 그리고 정확히 100년 전 10월26일 설흔의 한 젊은이가 하얼빈 역 구내에서 6발의 총성을 발사했다. 이 6발의 총성은 나라를 잃은 한 젊은이의 분노의 함성만은 아니었다. 위대한 선각자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울린 6발의 총성은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민족적 의거의 신호탄이었고 평화와 평등사상인 '동양평화론'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들만이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668년 9월 평양성을 포위한 당나라군과 내통해 성문을 열어준 반역자로 <삼국사기>에 기록된 고구려 소장(小將)‘요묘(饒苗)’의 묘지명이 얼마 전 중국에서 발견돼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1905년 일제가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제로 체결한 을사조약에 찬성하여 승인한 5명의 대신인 학부대신 이완용,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군부대신 이근택,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을 역사는 을사오적(乙巳五賊)이라 칭한다. 이들은 한일합병 후에 모두 친일의 대가로 '조선귀족령'에 따라 일제의 작위를 수여 받았다.

 그러나 현재에 자신에게 불리하고 때로 죽음을 당할 줄 알면서도 후세의 영광을 위한 이는 충신이 되었고, 자신과 가문, 그가 속한 조직의 영광만을 위한 이는 역사의 죄인으로 오늘도 회자(膾炙)되고 있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그 시대에 위대한 민족정신을 대변하는 충신(忠臣)과 열사, 선각자가 있었다면 그에 反하는 역신(逆臣)도 있었음을 우리는 지난 역사를 통해 알게 된다.  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대부분은 타인으로부터 존경과 추앙을 받고자 하지 구설(口舌)과 비난의 대상으로 손가락질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특히 한 나라의 지식인이요 지성인이며, 식견 있는 지도층 인사라면 더욱 자기 자신의 명예와 가문을 위해서라도 분별력 있는 행동을 취할 것이며, 특히 자신의 의지로 인한 행위와 행동이 10년, 50년, 1백년 후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내다보는 과업이라면 집념을 갖고 냉철함으로 확인하고 검증하면서 주장하고 내세워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작금에 우리사회의 소위 지식인이요, 지성이며, 국민을 위한 일꾼이라고 자부하는 일부 지도층 인사들이 일 범부(凡夫)의 사고에도 미치지 못하는 자신들만의 아집과 독선, 그들만의 이익을 추구하고자 국가와 국민의 미래와는 동떨어진 시각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려놓고 현혹하고 있어 공분(公憤)을 자아내며 국정(國政)을 붙들어 매고 있다. 

 바로 세종시와 4대강 사업 발목잡기가 그것이다. 구태여 여기서 누구 편을 들고 편을 가르자고 함이 아니다.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 이 나라의 백년대계와 통일 미래를 위하는 길이고, 국민을 통합해 삶의 질을 향상시키게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고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국리민복(國利民福)이 아닌 오직 정권을 위하고 당리당략(黨利黨略)만을 챙기며 선거를 의식한 편협한 이기주의에 편승해서는 결코 해당지역은 물론 국가와 국민전체 의식의 일체화나 성장동력 창출에도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정운찬 국무총리가 19일 충남 연기군을 방문해 "세종시는 2002년 대선 과정에서 나온 잘못된 아이디어로 처음에 정치적 계산에 의한 것으로 과거 결정이 잘못됐고, 그것이 정치적 이해득실에 관한 것이었다면 지금이라도 고치는 것이 낫다"고 원안 수정의지를 강력히 피력한 점은 무엇보다도 잘못된 사실에 대처하는 공직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 가를 보여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 총리는 "행정부처 이전보다는 자족 기능을 보강해 세종시와 대전·대덕·오창·청주까지 포괄하는 커다란 발전벨트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며 "(수정된 세종시 안으로)나라에 도움이 되고 명품 도시에 이어 국가 대계를 위할 것"임도 거듭 밝혔다. 

 물론 이에 앞서 지난 11월27일 이명박 대통령은 TV '국민과의 대화'에서 세종시 수정과 관련해 후보시절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며 유감의 뜻을 표했다. 그리고 "(표를 의식한) 그 일이 지금은 부끄럽게 느껴진다"고 고백했다.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지만 국민 앞에 솔직하게 잘못된 부분을 인정하는 모습에서 많은 국민은 대통령의 '진정성'과‘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9부2처2청 등 부처를 옮기게 되면 원활한 국정 운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국정 면에서의 비효율성과 '자족도시'의 기능 미비 등을 제시하고 국민의 이해와 동의, 특히 충청권의 민심을 헤아리기 위해 머리를 숙였다. 

 그것은 대통령 자신이나 정권을 위한 것과는 전혀 거리가 먼 것이었다.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로서 후대를 위해서라는 분명하고도 올바른 역사관을 갖고 욕먹을 각오를 다지면서 TV앞에 선 것이다. 비록 현재에 욕을 먹더라도 먼 훗날 역사에 부끄러움을 남기는 대통령이 되지 않겠다는 확신에 찬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충청도 출신을 포함한 역대 국무총리, 장관, 국회의원 등 고위 공직자를 지낸 분들이 행정중심복합도시로의 세종시 이전을 극력 반대하고 나선 게 오래지 않았다. 19일 저녁 심야TV토론에서 충청북도 진천이 고향이라는 한 시민은 전화 의견을 통해 "세종시에 행정도시가 들어서서는 결코 발전이 없을 것이고, 통일시대를 위해서도 부합하지 않다"는 목소리를 전했다.

 필자가 만난 절대 다수의 많은 충청인들도 이 시민과 같은 의견에 목소리를 같이 하고 있었다.  4대강 사업 마찬가지다. 정부는 친환경녹색성장을 강조하며 야권의 강한 반대에도 22조원이 투입될 4대강 사업을 추진해 착공에 들어갔다. 세계적인 추세의 일환이자 장래 후손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의지와 더불어 대체적인 국민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하나의 정책을 내걸고 추진하기까지 다양한 경로를 통한 검토와 확인과정이 필요하고 검증된 방안은 정책의 성공을 가져오기 위해서도 필수불가결 할 것이다. 그러기에 반대만이 능사는 아니며 건전한 비판과 대안은 항시 필요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우리사회는 이런 건전한 기능이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 각처에서 매우 인색하고 부족하다는 점을 지우기 어렵다.

 얼마 전 필자에게 전남 나주가 고향이라는 한 여성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 여성은 대뜸 "왜 요즘 정치인들은 사사건건 반대만 하느냐? 제대로 현장을 알고 그런 식으로 하느냐"고 볼멘 소리를 쏟았다. 나주 영산강 근처가 고향이어서 어려서부터 수없이 지켜봐 왔지만 지금의 영산강은 그녀가 어렸을 적 지켜본 강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나 있다고 했다. 

 드넓었던 강은 상류에서 흘러내린 토사가 산처럼 메워져 강으로서 기능은 오래 전에 잃어 버렸고, 어느 정도만 비가와도 주변 일대를 잠식하기 일쑤라고 했다. 그러면서 4대강 사업이 대운하 사업으로 번져갈지 어떨지 알 수는 없지만 영산강 준설을 비롯한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며 "여의도 푹신한 의자에 깊숙이 들어앉은 국회의원들이 단 한번이라도 현장을 방문해 확인해 본다면 그런 불필요한 잡음들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을 지경이었다. 

 나라를 지키고 보위하는 일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국가와 나라의 안위를 위해 그 주인된 자가 어떤 의식과 행동으로 일깨우느냐에 따라 그 향배(向背)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충신(忠臣)이 되느냐, 역신(逆臣)이 되느냐의 갈림길 또한 마찬가지다.

 역사 앞에서 오늘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고자 한다.(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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