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 "조창호는 이 시대의 영웅"
오는 5일 국립극장 무대서 귀환 국군포로 故 조창호 중위를 기리는 연극 '아! 나의 조국!' 막 올려.."국방부葬으로 다시해야"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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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귀환 국군포로 1호(1996년 10월)로 기록되는 조창호 (예)중위를 소재로 한 연극 '아! 나의 조국!'이 국립극장 '청소년 하늘극장'에서 오는 5일부터 7일까지 무대에 오른다. 6·25전쟁 60주년을 기념하는 여성악극으로 선보이며 이 뮤지컬의 극본과 연출을 담당한 이가 소설가이자 우파 논객으로 평론가인 복거일씨다.
복거일씨가 조창호씨를 연극 무대에 올리게 된 것은 그가 지난 2004년 지병으로 타계했을 때 당시 노무현 정부가 그의 죽음에 대해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은 데 대한 국가적 영웅에 대한 무시와 홀대에 대해 강한 분노를 느꼈기 때문이다.
당시 대한민국재향군인회는 조창호 소위(1950년 6·25발발하자 포병간부후보생으로 자원 입대)가 북한을 탈출해 귀환하자 대대적인 환영과 함께 이후 타계하자 향군장으로 장례를 치뤘다.
그러나 복거일씨는 이에 대해 예비역 군인단체인 향군이 최대의 예우를 다해 그의 장례를 치렀지만 조국을 위해 싸우다 43년 간 북한에 포로로 억류된 상태에서 적국 탈출을 기도하다 붙잡혀 13년간 강제노동수용소를 전전하면서도 오직 조국 대한민국만을 가슴에 품었음에도 그의 죽음에 (현재까지도)국가가 유야무야 하고 있는데 대한 예술가로서의 강한 외침이자, 국가가 국가로서 책임 있는 역할을 위해서라도 그의 장례를 육군장(葬)이나 국방부장(葬)으로 해야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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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날도 우리시대의 영웅 상에 대해 강조하고, 영웅에 대해 소홀한 사회, 특히 당시 조 중위의 죽음을 모른 척 방관하고 도외시 한 참여정부에 대해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이번 연극을 여성 악극으로 준비하다 보니 배우들이 군가 등에 대해 다소 생소한 것 같다고 하면서도 당시 시대상황과 고려해 볼 때 여성악극이 6·25 전후에 대세를 이루고 있었기에 전쟁세대를 염두에 두고 기획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우리사회 뜨거운 문제이기도 한 북한 억류 북한포로 문제와 결부해서도 "워낙 어려우므로, 신중하고 끈기 있게 추진해야 한다"며, 특히 중요한 것이 국민의 관심이라면서 "이번 연극은 국군 포로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일깨우려는 노력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2006년 문화미래포럼을 창립하고 초대 대표를 역임하고 자유주의자로 칼럼을 통해 자유의 가치를 널리 전파하고 있기도 한 그는 "우리 사회가 너무 자유의 소중한 가치를 모르고 북한의 현실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고 우리사회의 불감증 의식을 꼬집기도 했다.
그런데 오는 5일부터 7일까지 막을 올리는 이 연극공연에는, 전문여성 배우와 대학에서 연극을 공부하고 학생 등 총 25명이 출연, 여성악극 형식으로 공연되며, '전우여 잘 있거라', '비 내리는 고모령', '3.8선의 봄', '굳세어라 금순아' 등 6·25 전쟁 전후에 불린 노래 15곡이 불려진다.
또 구성상으로는 조창호 중위의 삶을 시간 순으로 따라가며, 앞서와 같이 "한스럽게도 지금 나라 형편이 옹색해서 당신의 훌륭한 행적에 걸맞은 장례를 치르지 못합니다. 언젠가는 당신의 조국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당신을 다시 모시겠습니다"라는 대사로 막을 내린다.
연극 공연을 위해 막바지 연습을 위해 연출가로서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복거일(64세)씨를 시내 한 커피숍에서 만나 그가 생각하는 조창호 중위와 이 연극을 기획하게 된 동기, 그리고 오늘 이 시대의 영웅상 등에 대해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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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복거일씨와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임.
▲ 연극 '아! 나의 조국!' 준비로 바쁘실 텐데요.
- 요새 연극 때문에 정신이 없네요. 연극은, 소설가로서 생소하고 여러 사람이 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조정에 시간을 많이 빼앗기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소설 쓰는데 등한히 하고 있는 편이기도 하고요.
▲ '아! 나의 조국!'을 기획하게 된 계기와 어떤 내용인지?
- 조창호 (예)중위가 돌아가셨을 때, 우리는 향군장으로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때 저는 한 신문에 실린 컬럼에서 제 마음을 밝혔습니다. 국방부가 전사자로 처리했던 그가 돌아와 병상에서 국방부 장관에게 "육군 소위 조창호, 군번 212966, 무사히 돌아와 장관님께 귀환 신고합니다" 라고 신고했을 때, 뜻 있는 시민들은 속으로 울었습니다. 반가움과 부끄러움에.
그리고 아직도 몇 백 명의 국군 포로들이 북한에서 어렵게 살고 있다는 사실 앞에 무력한 분노를 느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영웅을 묻고 있습니다. 국군장도 아니고, 육군장도 아니고, 이름조차 낯선 향군장으로. 재향군인회는 규모도 크고 공적 성격을 짙게 지닌 조직입니다. 그래도 대한민국 국군의 공식 기관은 아니지 않습니까?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국방장관도 현역 장군들도 참석하지 않은 영결식엔 예비역들만 참석해서 영웅의 죽음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이럴 수가 있는가요?(이 때 그는 안경을 곧추 세웠다) 죽음과 여러 번 맞선 전쟁 영웅에 대한 이 초라한(정부의 철저한 무관심) 대우가 안타까움과 부끄러움으로 가슴을 저리게 했습니다.
그 장례에 우리의 참된 모습이 비쳐진 것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웅을 동료 시민으로 지닐 도덕적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봅니다. 하나의 예로 1차대전의 갈리폴리 작전에 참가했던 마지막 노병 앨렉 캠벌이 103세로 죽었을 때, 호주 전역엔 반기가 내 걸렸고, 그의 국장에 참가하기 위해 호주 수상은 중국 방문 일정을 단축해서 귀국했습니다. 영웅들을 기리지 않는 사회의 앞날이 어떻게 밝을 수 있겠습니까?
이 칼럼을 쓰면서, 저는 언젠가는 제가 느낀 부끄러움과 분노를 작품으로 승화시키리라고 다짐했습니다. 이번 공연으로 그런 다짐을 지켰다고 할 수 있지요.
▲ 조창호 중위가 귀환 당시 재향군인회가 환영대회를 가진바 있고, 돌아가셨을 때는 향군장으로 했습니다. 이번 공연의 극본에 향군 관련 내용도 있다고요?
- 제가 위의 칼럼을 썼을 때, 당시 재향군인회장이셨던 고 박세직 장군께서 전화를 하셔서 고맙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제게 큰 격려가 되었어요. 이번 공연에도 재향군인회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많은 회원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여러 모로 배려해 주셨습니다.
특히, 박세환 회장님께서 큰 관심을 보이시면서 격려해 주셨고요. 연극의 내용에서도 재향군인회는 중심적 존재입니다. 당연히, 재향군인회장의 극중 비중도 큽니다. 아래 대사에서 그 점을 이내 알 수 있습니다.(대사내용 소개)
재향군인회 회장: [앞으로 나가서, 조사를 읽는다.] 조창호 중위님, 당신은 진정한 군인이셨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영웅이요 자랑입니다. 한스럽게도, 지금 나라 형편이 옹색해서, 당신의 훌륭한 행적에 걸맞은 장례를 치르지 못합니다. 못난 저희를 용서하소서. 지금은 재향군인회의 이름으로 당신을 보냅니다. 언젠가는 당신의 조국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당신을 다시 모시겠습니다. 그때까지 편히 쉬소서.
이번 공연이 워낙 짧은 데다가 서울에서만 공연해서, 지방의 향군 회원들이 보시기 어렵다는 사정이 못내 아쉽습니다.
▲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는 우리사회의 뜨거운 이슈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접근되어야 한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