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군과 국군의 정통성
1940년 9월 17일의 광복군 창설의 역사적 의미 되새겨 국군의 날 재 검토해야
다가오는 10월 1일은 건군 62주년이 되는 날이다. 인생으로 치면 원숙한 60에 들어 온 것이다. 통상 각국의 군대는 전통적인 군대로부터 상비군으로 전환하면서 체제를 갖추어 현대적인 군대의 모습으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군은 그렇지 못했다. 즉 국권이 상실되어 36년 동안 국가의 군대를 갖지 못하다가 일본의 패망 이후 미군정에 의해 군이 조직되었으며, 그 이전에는 민족사의 단절에 의해 군대를 보유하지 못했다.
우리사회는 그동안‘한반도에서의 정통성은 북한에 있다’는 북한의 끈질긴 대남심리전 공격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둘러싸고 소모적인 이념논쟁을 겪어왔다. 정통성이란‘통치를 받는 사람에게 권력지배를 허용하게 하는 논리적・심리적인 근거’로 정의된다. 이러한 정통성의 논리에 비추어 볼 때 대한민국의 정통성 왜곡은 국민으로 하여금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나 정권 그 자체를 불신하거나 부정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되며, 국가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정신적 파워를 파괴시킨다. 따라서 정부에서는 2011년부터 중・고 역사교과서에‘대한민국은 대한제국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한 정통성 있는 국가’임을 중점적으로 교육할 계획으로 있다. 당연하고도 옳은 일을 이제야 서두르는 것도 아쉽지만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국가 정통성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국군의 정통성을 확립하는 일이다. 우리 국민 대부분은 국군의 창설배경이나 과정, 그리고 국군이 국가에 기여한 공로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피상적으로만 이해하고 있고, 국방의무를 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존재쯤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국군의 정통성과 가치에 대한 우리 국민의 몰이해 현상은 결국 군의 역사성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신뢰와 지지를 보내는 것을 망설이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통합과 편의성을 앞세워 정한 국군의 날
국군의 정통성을 세우는 첫 번째 출발은 국군의 날을 헌법정신과 역사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관점에서 검토하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국군의 날 제정 동기나 과정을 보면 역사성 측면에서 그 의미를 찾기 힘들다.
우리 군은 미 군정기에 육군 중심의 조선경비대로부터 출발해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과 동시에 국군으로 개편되었으며, 1949년 10월 1일 공군이 분리 독립되었다. 따라서 육군은 조선경비대가 창설된 1946년 1월 15일을 창설 기념일로 정했고, 해군은 1945년 11월 11일 조선해안경비대의 모체인 해방병단의 창설일로 정했으며, 공군 역시 1949년 10월 1일 독립 창설된 것을 기념으로 정하여 각각 기념행사를 치루었다. 정부 역시 1955년 8월 30일에 대통령령 제 1084호로 각군의 기념일을 제정 공포했다. 그 이유는 각군의 기념일에 대한 역사적 의의를 깊게 하고 국군의 사기와 국민의 국방의식을 함양해 국토방위태세를 공고히 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육군은 다시 3사단이 38선을 돌파한 10월 1일로 변경하여 기념일을 가졌다.
그 후 1956년 9월 14일 우리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각 군이 개별적으로 기념하고 있는 창설기념일을 통합하는 결정을 내렸다. 국무회의는 각 군별로 시행해 오던 기념일을 경비와 시간을 절약하고자 10월 1일로 통합하여‘국군의 날’로 정하였다. 이와 같은 국군의 날은 1956년 9월 21일 대통령령 제 1173호에 의해 공식 선포되었고 그 해부터 기념일을 갖게 되었다. 당시 국군의 날 재지정 심의 경과표에는‘3군 단일화와 국군이 사기, 국민의 국방사상 함양에 바탕을 두고 재정 및 시간을 절약하는 하는 데 있다’고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
이처럼 국군의 날 제정 과정을 보면 역사적 측면으로 보면 아쉬운 점이 발견된다. 그 이유는 국군의 기념일을 민족사와 호국정신을 계승한다는 역사측면에서 정한 것보다는 3군의 통합성과 기념식 거행의 편의성에 중점을 두었다는 점이다. 이는 국군이 역사적 정통성을 취약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으며, 대한제국의 군과 그 후예인 독립군, 그리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식 국군인 광복군의 정신을 계승하지 못하는 역사적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다. 특히 38선 돌파를 기념일로 정한 것은 하나의 작은 사건이 될지언정 대한민국 국군의 역사적인 정정통성을 대표하는 기념일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1940년 9월 17일의 쾌거
광복을 5년 앞둔 1940년 9월 17일 중국의 임시 수도인 중경(中慶)의 한 전통적인 건물에서는 대한민국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엄숙한 식전이 거행되었다. 그 식전은 바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광복군총사령부가 출범하는 성립전례식(창설식)이었다. 대한인이면 누구나 감격스러워하는 순간이었다. 남의 나라 땅에서 임시로 세운 정부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군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것은 일본 및 미국 등과 연합하여 항일무력투쟁을 벌이는 것만이 조국의 광복을 하루라도 앞당겨 고통의 질곡에서 헤매는 국민을 구할 수 있다는 김구선생과 무장 독립투사들의 한결 같은 신념의 결실이었다.
식장 주변에는 수많은 대한민국 국기와 중국 국기가 교차하여 펄럭였다. 식장 중앙에는 대형태극기가 걸려 있고 붉은 비단에‘한국광복군총사령부 성립전례식’이라는 글씨와 더불어 영자로‘The Inaugural Ceremony of the Headquarter of Korean Independence Army'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중국정부의 대표와 김구주석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 그리고 수많은 광복군이 화려하고 장엄한 식전을 가득 메웠고, 100여개에 달하는 세계의 주요 통신사 기자들도 열띤 취재를 벌이고 있었다.
마침내 김구 선생이 개회를 선언하였다. 그러자 장내에는 사진과 촬영하는 소리로 가득했다. 이어 양국의 국가를 부르고 태극기에 대해 엄숙한 경레를 한 다음 선열을 추모하는 묵념이 10분간 이루어졌다. 김구 선생은 식사(式辭)를 통해 중국정부에 감사를 표하고“대한민국임시정부는 대한민국 22년 9월 17일에 한국광복군총사령부를 청설함을 자에 선언한다. 한국광복군은 중화민국 국민과 합작하여 두 나라의 독립을 회복하고자 공동의 적인 일본제국주의자들을 타도하기 위해 연합군의 일원으로 항전을 계속한다”고 선언하면서 최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인력・정력,물력을 집중하자고 호소하였다.
이어 등단한 외무부장 조소앙 선생은 역사적인‘한국광복군 성립보고서’를 통해“1907년 8월 1일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된 대한제국 국군의 항일 투쟁과, 이들이 중심이 된 독립군이 치열한 무장투쟁을 벌였으니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대한제국 국군과 독립군을 계승하여 광복군 창설을 선언한다”고 힘차게 외쳤다. 이는 광복군이 정신적으로는 대한제국의 국군을, 인적으로는 독립군을 계승 하였다는 것을 만천하에 밝힌 것이다.
끝으로 식전의 주역인 초대 광복군총사령관인 이청천 장군이 등단하였다. 총사령관은 늠름한 기상과 장엄한 태도로 청중을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둘러보았다. 그의 나이는 오십을 조금 넘었지만 삼군을 회동하는 높은 기상과 기개가 서려 있었다. 그는 간곡하고 겸손한 어조로 “군인의 천직을 다하기 위해 마음과 몸을 다하여 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쓰겠다.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 여부는 광복군이 목적을 달성하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동지동포들은 인력・정력・물력을 광복군에 집중해 달라”고 호소하였다.
당시 광복군총사령부 창설식을 현장에서 지켜 본 임시정부 선전부장 엄항섭 선생은 그 감격을 이렇게 적고 있다.‘대한의 형제자매여! 광복군의 완미한 성공을 다 같이 축하하자! 그리고 각각 나는 광복군에 대하여 마땅히 어떠한 의무를 져야 옳을까? 그 의무를 얼마나 이행하였나? 하는 것을 아침저녁으로 자문자답해 보자’........
국군의 뿌리는 광복군에서 출발해야
이역만리에서 망명생활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창설된 광복군은 이렇게 탄생되었다. 그렇다면 광복군의 창설은 국군의 측면에서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까? 그것은 비록 일제의 작품이었지만 나름대로 국군의 성격을 띠고 있는 대한제국의 군대와 독립군의 역사적・정신적・인적분야를 계승한 최초의 대한민국 국군이 탄생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광복군 창설의 또 다른 의미는 그 숫자는 적었지만 광복군은 당시 정규군 수준의 전투조직과 교육훈련 체계, 그리고 전투장비를 구비한 전투력을 보유했다는 점이다. 특히 광복군은 중국정부는 물론 미국 정부에서도 그 역량을 인정하여 연합작전을 함께 할 것을 수락함으로써 국제적인 정통성을 확보했고, 필요시에 최선봉에 서서 한반도에 진공하는 계획까지 수립했던 야심찬 전략도 구상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국군의 뿌리는 대한제국 군대와 독립군을 계승한 광복군으로부터 찾아야 하는 것이 옳다. 더구나 헌법 전문에는‘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는 대한민국의 법통성을 임시정부에 두었기 때문에 임시정부에 의해 창설된 광복군 역시 국군의 효시가 되어야 하며. 이렇게 될 때 현재의 국군은 광복군의 법통성을 계승한 존재라는 분명한 논리가 서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국군의 법통성, 역사성을 도외시하고 미 군정에 의해 조직되거나 38선 돌파를 기념하고, 행사의 편의성을 이유로 정한 현재의 기념일은 신중하게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만약 우리 정부가 국군의 날을 광복군 창설기념일로 정하게 된다면 우리 국군은 다음과 같은 긍정적인 의미를 찾게 될 것이다.
먼저, 헌법정신에 부합된 국군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국군의 날은 헌법전문에 나타난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국가는 임시정부의 법통성을 이어 받아 이를 헌법 전문에 명시하고 그 업적과 정신을 이어받기 위한 다양한 교육과 문화행사를 활발하게 펴고 있는 반면에, 군은 국군의 날을 38선 돌파 기념일로 정하여 시행하고 있거나, 창군의 배경과 정신을 교육할 때 임시정부의 법통성 계승과, 독립군 및 광복군의 역사를 크게 다루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국군도 창설기념일을 광복군 창설기념일로 정한다면 법통성 계승 측면에서 대한민국 헌법정신을 적극 구현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은 국군의 역사적 정통성을 더욱 확고하게 해 줄 것이다. 만약 광복군 창설기념일을 국군의 날로 정한다면 우리 군의 역사는 대한제국 군대로부터 독립군, 그리고 광복군으로 거슬러 올라가 역사적 정통성 계승은 물론, 국군의 역사를 대폭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우리 국민은 물론 나라를 지키는 국군 장병들에게도 국군의 역사에 대해 긍지와 자부심을 크게 높여 줄 것이며, 장병들에게 독립군과 광복군의 국권회복을 위한 투쟁사를 알게 하고, 이를 숭고한 군인정신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역사의 뿌리를 찾고 그 역사를 올바르게 세우는 일은 후손의 책무이다. 역사적 뿌리에 근거하지 않고 단지 3군의 통합성이나 행사의 편의성, 그리고 6・25전쟁의 한 사건을 대한민국의 탄생을 기리는 상징으로 삼는다는 것은 이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옳은 일이라면 가능한 이른 시일에 바로 잡아야 한다. 이는 국군의 법통성은 물론 역사와 전통을 바로 세우는 매우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konas)
유명덕(국방칼럼리스트/md8608@hanmail.net)
광복군의 역사성과 전통성은 백번 강조해도 모자람이 있지요.그리고 그날을 국군의 날로 하는 것도 옳은 일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통일을 국시로 역사가 진행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민족통일을 위해 북진을 결행했던 바로 그날의 의미'는 또한 크다고 보지요. 더구나 10.1일을 '육군의 날로'로 보면 어색하지요.</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2010-09-19 오전 11:21: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