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사 기념관, 하얼빈의거 101주년 맞아 재개관
국민성금과 정부지원으로 서울 남산에 준공, 안중근의사 동상제막식 동시 거행
안중근 의사가 일제 침략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권총으로 저격한 하얼빈 의거 101주년 기념일인 26일, 서울 남산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새로 준공돼 개관했다.
이날 준공 및 개관식에는 김 양 국가보훈처장과 안 의사 유족, 독립운동관련 단체장, 광복회원, 시민 등 1,000여 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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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의사는 1909년 10월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저격한 후 체포돼 뤼순 감옥으로 이송됐고 사형 선고를 받은지 152일이 되는 1910년 3월26일 순국했다.
보훈처는 25일 일본 관리들이 안 의사의 사형을 집행한 뒤 당시 뤼순고등법원장 관사에 기생을 불러 축하 파티를 열고 재판 관계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한 사실도 공개했다.
보훈처가 발굴한 사료는 안 의사 순국 3일 후 발행된 1910년 3월29일자 ‘만주일일신문’과 ‘만주신보’ 등이다. 두 신문은 당시 기사에서 “3월26일 안중근의 매장이 끝났다는 보고가 있은 지 얼마 후 오후 5시에 안중근 재판의 최고책임자인 뤼순고등법원장 히라이시 요시토의 관사에서 ‘안중근사건 관계자 위로만찬회’라는 이름으로 축하연을 개최했다”며 참석자들의 이름을 나열했다.
참석자들은 관동도독부의 사토 경시총장과 요시다 경시(경찰고등관·총경급), 뤼순 감옥의 구리하라 전옥(형무소장급), 변호사 미즈노, 검찰관 미조부치, 판관 다이와다 등이었다.
두 신문은 “참석자들은 오후 5시에 모여 기념사진을 촬영한 후 응접실에서 바둑을 두었으며, 두 고급 요정에서 불러온 홍군(기생)들이 술 잔치를 벌였고, 10시가 넘어 산회했다”고 기록했다.
또 일본 정부가 재판을 시작하기도 전에 사형을 미리 결정하고 재판을 통해 교수형을 선고했으며, 이에 관여한 법원과 감옥 관리 등 25명에게 보상금을 준 사실도 확인됐다.
이번에 재개관한 기념관은 2004년 8월17일 당시 서울 시장이던 이명박 대통령이 새 기념관의 건립을 지시했고 2005년 12월26일 ‘안중근의사 기념관건립위원회’가 발족, 40년 전에 지은 구 기념관을 철거하고 지난해 3월 기공식 이후 국고 146억 원과 국민성금 33억 원 등 모두 179억 원을 들여 건립했다.
기념관은 지하 2층, 지상 2층 규모로 ‘단지(斷指)동맹’에 참여한 12인을 상징한 12개의 기둥으로 건물을 형상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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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에서는 이에 맞추어 기존 안 의사의 동상을 철거하고 가로 4m, 세로 4m, 높이 7.2m의 청동 동상을 새로 건립했다.
안중근의사 기념관은 안중근의사의 출생에서부터 순국까지의 일대기를 알려 주는 전시관과 관람객의 추모, 명상, 교육을 위한 명상의 길, 추모홀, 도서휴게실, 수장고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현재 기념관 2층 특별전시실에서는 안중근의사 유묵전을 개최하고 있다.
이 날 이명박 대통령은 김양 보훈처장이 대독(代讀)한 축사에서 “안 의사께서는 인재를 키우기 위해 사재를 털어 학교를 세워 무장항일운동을 벌였고 민족의 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해 하얼빈역 의거를 결행하셨다”면서 “사형을 앞둔 순간까지 ‘동양 평화론’이라는 선구적이고 위대한 사상을 말씀하셨던 안 의사의 숭고한 삶과 의연한 정신은 후손들에게 용기와 힘을 주었다”고 말했다.
덧붙여 “국권을 회복하거든 고국에 뼈를 묻어 달라는 안 의사의 말씀을 아직도 받들지 못해 안타깝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정부는 우리나라 주변의 모든 나라와 힘을 합쳐 안 의사 유해를 찾고 모셔오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영일 광복회장은 축사에서 일본 정부에 대해 안의사 유해발굴에 성의있는 태도를 보일 것을 촉구했다.
안중근 기념관은 국민성금과 정부지원으로 건립됐다. ‘안중근의사기념관건립위원회’에 따르면 기념관 건립 모금 마감 기한인 9월 30일까지 1만1,055명이 34억 7,600만원의 성금이 모아졌다. 일본 교토의 류코쿠(龍谷)대학 도서관장 히라다 아쓰시(平田厚志·66) 교수와 도서관 학예원 다나카 히로유키씨도 각각 10만엔(약 140만원), 100만원을 기탁했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