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

언제까지 김백일 장군 동상철거를 획책할 것인가?

Written by. 서진현   입력 : 2011-10-12 오전 9:09:18
공유:
twitter facebook
소셜댓글 : 0

  2011년 5월 27일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내에 합법적으로 설치된 김백일 장군 동상에 대하여 거제 시민단체와 경남도가 압력을 가함에 따라 거제시가 동상 철거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대해 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측의 철거명령 취소 소송으로 법적 판단이 진행중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거제시 시민단체(거제경실련, 농민회, 거제시민개혁연대, 참교육학부모회, 거제YMCA, 거제YWCA 등)들이 김 장군 동상철거 범시민대책위를 결성하고 동상철거를 획책하고 있다.

 이들은 김 장군에 대해 “국가기록물상으로도 명백한 반민족친일행위자”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이 거론하는 ‘국가기록물상’이라는 것은 지난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을 근거로 들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정체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민족문제 연구소가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에 부합하는 단체인지 아니면 국가 분열을 획책하려는 단체인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먼저 친일인명사전을 펴낸 민족문제연구소는 좌편향 인사들과 좌익사건 연루자들이 주도하는 단체다.

 예컨대, 이 연구소의 김승교 고문변호사는 대표적 친북좌파단체인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의 상임대표이고, 이 연구소의 활동을 주도해온 3대 소장 임헌영(본명 임준열)은 1977년 김일성에게 남민전 조직의 결성을 알리는 편지 초안을 작성한 인물이다.

 임준열은 1977년 7월 반국가단체인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이른바 남민전)에 가입하고, 그해 10월 ‘남조선 인민들이 자신의 손으로 혁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지식인, 학생, 노동자 등 광범위한 각계각층의 세력이 모여 민족해방전선을 결성했으며 앞으로 굳게 투쟁해 나갈 것입니다. 아낌없는 성원을 바랍니다. 사회주의국가 건설을 지향하는 이 투쟁을 당의 이름으로 굳게 유대 맺어줄 것을 당부합니다’라는 요지로 김일성에게 남민전의 결성을 알리는 편지의 초안을 작성하였다는 등의 범죄사실로 기소되어 1980.5.2 서울형사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 및 자격정지  5년을 선고 받은 바 있고, 그 외에 한 차례 더 공안사건에 연루된 바 있다.

 결과적으로 이들 연구진들로 작성된 친일인명사전은 신뢰성이 결여된 편향된 자료로 발간 초기부터 사회 문제를 일으킨 출판물임을 인식해야 한다.

 더불어 故 김백일 장군에 대한 평가 또한 재조명되어야 한다. 거제 시민단체가 주장하듯 일제식민치하에서 민족을 고통으로 몰아간 반민족친일행위자에 대해서는 준엄한 심판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섣부른 판단과 오류로 나라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분들을 두 번 죽게 해서는 안된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특히 이들 세력이 주장하는 내용 중에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먼저 김백일 장군이 근무했던 ‘간도특설대’가 ‘수많은 애국지사를 살해했고 독립군에 대한 탄압과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내용은 사실 왜곡이다. 국내학자 신주백이 지은 ‘만주국군속의 조선인 장교와 한국군(2002)’과 신동아(2007.9.1, 통권576호)를 보면 ‘간도특설대 창설(1938년 9월) 당시 한국독립군이나 광복군은 만주지역에 없었고, 중국관내에서 활동하고 있었으며 중국 공산당 동북항일연군의 김일성 부대를 토벌대상으로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김백일 장군과 중학교 시절 함께 공부했던 김광옥 예) 해군중장은 ‘당시 만주국은 일본, 조선, 중국, 몽고, 만주족 등 5개 소수민족이 합쳐져 만들어졌는데 소수민족들은 자신들의 거주지구 보호를 위해 자치부대를 만들었고 간도특설대는 1938년 말 간도 조선인 치안유지 및 불순세력 퇴치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증언한바 있다.

 이렇듯 간도특설대의 임무와 기능에 대해 민족문제연구소가 부정확한 내용의 자료로 故 김백일 장군을 친일파로 규정하고 거제시민단체 또한 김백일 장군을 폄하, 모독하는 행위는 국가안보를 해치고 국민의 사회적 통합을 저해하는 망동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참고한 20세기 중국조선족 력사자료집이나 연변학계자료 등은 중국공산당 및 친북학계 자료로서, 자신들의 행위를 미화한 객관성이 없는 자료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므로 ‘간도특설대’에 대한 평가부터  올바르게 조명되어야 한다.

 나무를 보고 숲을 평가하는 것은 지극히 근시안적이고 편협된 사고(思考)다. 나라를 잃었던 시절, 김백일 장군이 짧은 기간 ‘간도특설대’에 초급장교로 근무한 경력과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살신성인의 희생정신과 업적은 결코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특히, 김 장군은 6.25전쟁 당시 낙동강 전선 동쪽(포항,안강,기계,영덕)에서 북괴군을 저지하여 北進의 발판을 만들었고 北進시에는 김 장군이 지휘한 1군단 3사단이 가장 먼저 38선을 돌파했다. 이어 중공군의 개입으로 발생한 흥남철수작전시에 美 10군단장(알몬드 장군)을 설득하여 군인 10만 5000명과 함경도민 10만명을 군함, 상선, 어선을 동원해 철수시키는데 성공함으로써 피난민들에게는 생명의 은인으로 생생히 살아있다.

 또한 장군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직후 발생한 여순반란을 진압해 좌익세력의 준동에 의한 한반도 공산화 책략을 저지했다. 당시 여순반란을 진압하지 못했다면 제주도 4.3폭동사건과 맞물려 대한민국이 좌익극렬분자들이 득세하는 혼란 상황으로 전개되고 말았을 것이다. 

 김백일 장군은 전쟁 중이던 1951년 3월, 여주에 위치한 미8군사령부에서 작전 지휘관회의 종료후 군용경비행기로 강릉에 위치한 1군단사령부로 복귀 중 대관령 인근 상공에서 추락하여 34세의 젊은 나이로 전사한 6.25전쟁의 영웅이다.

 살아서는 을지·충무·화랑무공훈장을, 전사 후에는 최고 등급인 태극무공훈장까지 받은 후배 군인들에게 진정으로 존경 받는 군인이다.
 
 이처럼 위대한 행적을 남긴 장군에게 잘못된 역사의 잣대를 들이대며 근거없이 매도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와 평화를 희망하는 절대다수 국민을 모독하는 것이다.
 
 따라서 종북세력의 왜곡된 주장에 동조하며 망동을 일삼는 시민단체들은 대오각성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과연 누구의 희생으로 우리가 자유와 권리를 누리고 있는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김백일 장군의 동상 철거를 주장하는 시민단체들이 동상철거 준동을 당장 철회하고 바른 역사관과 국가관으로 진정한 국가안보를 생각하는 시민단체로 거듭나기를 촉구한다.
(konas) 

서진현 (대한민국재향군인회 호국안보국장)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facebook twitter 책갈피저장 메일보내기
소셜댓글
로그인선택하기 트위터 페이스복
원하는 계정으로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여 주십시요.
입력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1
로그인하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