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짓
본 내용은 병무청이 실시한 자원입대 체험수기 공모전에서 우수상으로 선정된 작품임.(편집자 주)
세상에는 두 가지의 선택이 있습니다. 하나는 O, 다른 하나는 X입니다. 만약 선택권이 주어졌다면 사람들은 가장 안정적이며 의견이 중복되는 다수의 원칙을 따를 것입니다. 반대로 다수의 원칙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소수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외로 선택이 아닌 의무라면 선택권조차 주워지지 않습니다. 이처럼 군 입대의 문제도 어떤 이에게는 선택권이 주워지고 주워지지 않기도 합니다.
군 입대는 대한민국 남자가 해야 할 국민의 의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은 선택권이 주워지지 않으며 선택권이 주워졌다 하더라도 다수의 원칙을 따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선택권이 주워졌음에도 다수의 원칙을 깨고 다른 길을 택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논리로 보았을 때 가장 멍청한 짓을 한 것입니다.
‘군대 간 거 후회하지? 솔직히 후회하지?’ 군 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입니다. 보통은 ‘힘들지? 얼마나 남았어? 휴가 언제 나와?’라는 말을 듣겠지만 저는 달랐습니다. 항상 저에게는 제가 마치 후회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것처럼, 저의 선택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것처럼 사람들은 물어봤습니다. 남들의 기준으로 보면 어리석은 결정을 했기 때문입니다. 신체검사 4급을 받고도 남들은 가기 싫어하는 군대를 자원해서 왔으니까!
2009년 8월.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신체검사는 마치 성인식처럼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제가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저는 경기도 수원에 있는 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았습니다. 저는 누구나 가야하는 군대이기에 검사의 결과는 중요시하지 않은 채, 언제 군대를 가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더 좋은 시기에 가서 나의 인생도 설계하고 운동도 하며 인생의 터닝 포인트시기를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결과였습니다. 결과는 4급. 보충역이었습니다. 저는 남들보다 난시가 심하여 신체등급 4급에 해당하는 시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남들에게는 의무복무인 군대가 저에게는 선택의 문제로 다가왔습니다. 처음부터 재검을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주위에서는 아이러니하게 신체등급 4급인 저를 부러워하며 ‘신의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저 역시 다수의 원칙을 벗어난 길을 걷는 것이 불안하고 두려웠습니다. 그렇게 주위의 부러운 시선을 받으며 저는 저의 의지와 상관없이 보충역으로 군 복무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나에게 주워진 길이 보충역인가?’라는 생각과 함께 1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어디를 갈까하는 선택의 잣대는 점점 더 무뎌져만 갔고 대학교 생활도 4학기를 마치고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이 일어났습니다. 군인이 아닌 일반 국민을 상대로 한 북한의 도발. 북한의 도발은 이슈화되었고 국민의 관심은 국가 방위에 쏠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군 입대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하게 되었습니다. 보충역을 갈지 재검을 받아 현역을 갈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 것입니다.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몇 년 후의 같은 병역의 의무를 끝마쳤을 때 어디로 가는 것이 저에게 득이 될지 가치를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남자로 태어나 사회에서 보는 보충역과 현역의 편입견, 너무나 다른 생활방식, 현실적인 기간의 차이 등 많은 걸림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정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에 제가 따라가기보다 저 스스로 떳떳할 수 있을게 무엇일까 생각했습니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기준에서 벗어나 ‘내 인생의 설계자는 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결정은 쉬워졌습니다.
20대의 2년간 벌 수 있는 돈과 군 생활에서 얻는 전우애, 가족의 소중함, 국가관 등은 비교할 수 없는 가치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살아온 현실과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고 더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변화를 통한 인생의 도전이 더 값지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 후, 2010년 12월 저는 주위에 만류 속에도 재검을 받고 3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2011년 3월 15일. 저는 사랑하던 가족과 친구들의 품을 떠나 군대에 입대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었습니다. 생활방식부터 말투, 자세, 표정까지 신경 써야 할 부분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나 밖에서 생각했던 것 보다 부조리는 없었고 이미 선진병영을 통해 이등병부터 병장까지 평등한 권리를 보장 받는 군대가 정착되어 있었습니다.
예전에 아버지 세대들로부터 들어온 폭행 및 가혹행위 그리고 말도 안 되는 부조리는 사라진지 오래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군 생활도 적응해 나갔고 벌써 군대에 온지도 어느덧 16개월째 접어들고 있습니다.
그동안에 군 생활을 통하여 저는 첫 번째로 가족의 소중함을 배웠습니다. 입대하는 날에 부모님께서 왜 그렇게 식사를 못 하셨는지, 제가 입던 옷이 소포로 집에 도착했을 때 왜 그렇게 우셨는지, 저를 떠나보내는 순간 왜 그렇게 저를 붙잡으며 우셨는지 저는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군대라는 타지에서 얼굴 한번 보기 힘든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님의 마음이 담긴 편지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이 곳에 나와 부모님을 생각하며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씩 알아갑니다. 전화통화를 통해 안부를 묻는 것이 전부이지만 가족들을 떠올리며 전역할 때까지 모두 건강하고 화목하기를 기도중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어디서나 저를 응원하고 있을 가족이 있어 아무리 힘든 훈련이 있더라도 계속 힘이 납니다.
두 번째로 인내심과 끈기를 배웠습니다. 주야로 이어지는 혹독한 행군 속에서도 저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포기하고 싶고 멈추고 싶을 때에도 다 같이 가는 힘에 이끌려 끝까지 걸었습니다. 아무리 힘든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목표한 바를 이루었을 때 성취감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그 맛을 모를 것입니다.
이제는 어떤 극한의 상황이 주워져도 포기하지 않는 강한 정신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견뎌 낼 수 있는 한계치가 높아진 것은 정말 저의 인생의 큰 소득입니다.
마지막으로 같이 군 생활을 하는 전우들을 얻었습니다. 20대의 청춘을 함께 자고 먹고 훈련하며 지내는 전우들은 저에게 가장 큰 힘입니다. 군생활의 희로애락을 같이 보내며 누구보다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며 생활하는 전우들이야 말로 군 생활을 통해 얻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전우들을 통해 그동안 제가 보지 못했던 삶의 모습을 보았고 저보다 어려운 삶을 보낸 전우들에게는 힘이 되었고 저와 다른 삶을 지낸 전우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해할 수 있던 마음의 그릇이 커졌고 제가 기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에 행복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 전우들과 같은 공간에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지내다 보면 인생에서 앞으로 이러한 기회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 시간을 소중히 여기게 됩니다. 하지만 아직도 군 입대를 고민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세상은 현재 쌍방향의 소통을 원하고 말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며 일방적인 것을 거부합니다. 군대를 제2의 세계라 부르는 이유도 그 전까지는 경험하지 못한 일방적인 소통으로 이뤄진 계급사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군대는 예전처럼 일방적이지 않고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도록 'Green Zone'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Green Zone'은 인간의 인권을 존중하며 소통을 통해 최대한의 사기를 이끌어 내려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군대도 더 이상 일방적인 계급사회가 아닌 쌍방향의 소통을 말하는 하나의 공동체로 변화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군대를 가야할까? 의무이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다수일 것이고 몇 안 되는 사람들만이 국가를 지키기 위해서, 자기발전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라고 답할 것입니다.
모든 답이 저희가 군대에 가야하는 답이 될 수 있습니다. 군대는 20대의 청춘을 낭비하는 곳이 더 이상 아닙니다. 군대는 어느 곳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경험을 통해 자기 인생의 힌트를 찾는 곳입니다. 저도 아직까지 남은 군 생활을 통하여 찾지 못한 힌트들을 찾아가며 열심히 군 생활에 임할 것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짓을 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저는 이 순간을 통해 그 동안 알지 못하고 얻지 못하고 생각지 못한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만약 누군가 다시 한 번 ‘후회하지 않아?’라고 묻는 다면 저는 당당히 말할 것입니다. 후회는커녕 최고의 선택이었다고...(Konas)
박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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