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라! 이젠 국민이 '創軍의 날'을 기억해야한다
“‘創軍의 주역’이 스러지고 있다.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창군’의 위대한 족적을 남긴 이들 주역들은 그 자체로서 영원한 빛을 발한다
5천1백만 국민 중 ‘창군(創軍)의 날’이 1월15일이라 기억하고 살아가는 이가 얼마나 될까? 아니 전체 국민이란 포괄적 범주를 떠나 현역 군인을 포함한 국방관계자들 중에서도 이 날을 기억하고 있는 이는 과연 얼마일까?
매순간 촌각(寸刻)을 다툴 정도로 급박하게 돌아가는 일상으로 인해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마저 해결하기도 벅찬 삶속에서 60년이 훨씬 지난 외떨어진 ‘창군의 날’을 떠올리고, 기억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무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군의 현대사에 있어 창군의 날이 갖는 의미는 영겁(永劫)의 세월이 흘러도 결코 잊혀 지거나 퇴색될 수 없으며, 대한민국 국군의 역사와 영원한 의미로 남을 수밖에 없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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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15일은 1945년 8월15일 일제 폭압으로부터 해방을 맞아 기쁨과 혼란이 혼재하던 직후인 1946년 대한민국 육군의 모태인 경찰후비대 성격으로 발족한 남조선국방경비대의 창설일 이자 미군정 당국이 장차의 주한 미군 감축 및 철수에 대비하여 한국에 미국식 군사제도와 교리에 입각한 토착군사력을 양성하고자 영어를 이해하는 간부요원을 확보하기 위해 1945년 12월 5일 개교해 교육시킨 창군 동우회원들이 임관한 임관기념일이기도 하다.
우리 군이 막 걸음마를 시작하기 위한 이 과정에서 임관한 주역들은 이미 고인이 되신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이형근(李亨根)·채병덕(蔡秉德)·정일권(丁一權)·최경록(崔慶祿)·민기식(閔機植) 장군 등을 비롯해 백선엽 전 합참의장 등 6·25전쟁 때에 혁혁한 공훈을 세운 장군들이 많다.
이렇듯 창군의 기틀을 다진 군사영어학교는 폐교 이전까지 110명이 졸업, 장교로 임관되었고 나머지는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 제1기로 편입되었다가 임관하였는데, 이들은 국군의 창설과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겼을 뿐만 아니라 앞서와 같이 6·25전쟁에서는 국토방위에 많은 공훈을 세웠다.
맹위를 떨치던 강추위가 설핏 비켜서던 1월18일 오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한 작은 방(room)에서는 우리 국군사의 산 증인이자 ‘살아있는 전설’로 회자되는 6․25전쟁영웅(戰爭英雄) 백선엽 장군 등 군의 대 원로 몇 사람이 자리를 함께 했다. ‘창군의 날’이자 본인들의 임관67주년을 자축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 자리에는 박세환 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도 함께 했다.
창군 초기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쏟아 부으며 초창기 우리 군의 생생한 역사를 온몸으로 일궜던 창군동우회원들은 어쩌면 그 자체만으로도 기록이고, 역사관 격이다. 평균 연령 92세를 훌쩍 넘긴 생존 회원들은 국내외 거주자를 다 합해 열분.
해방 직후 좌․우대립 등 극한 혼란으로 어수선 하기만 했던 그 시기, 이들 청년장교들은 여수․순천 반란사건, 제주4․3사건, 지리산 공비토벌작전 등 전장이 있는 곳에서는 최전선을 누비며 자유민주주의체제 수호에 앞장섰고, 전후(戰後)에는 군과 국가발전을 선도했다.
하지만 창대한 군력(軍歷)에 큰 획을 수놓은 창군회원들도 무심한 세월의 흐름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가냘프고 노쇠한 모습 우리 이웃의 보통 할아버지로 변모되었다. 그렇지만 총폭탄이 뇌성벽력(雷聲霹靂)되어 우박처럼 쏟아지는 포화(砲火) 속에서도 “나를 따르라!”는 돌격 명령과 함께 적진을 돌파하며 호령호령했던 호랑이 장군으로서의 존재감은 인자와 온화한 성품 이면(裏面), 형형한 안광(眼光) 과 함께 쏟아지는 한마디 한마디에는 국가 안위에 대한 염려와 걱정이 그대로 묻어나고 있었다.
그날도 당연지사였음이다. 2015년 12월1일로 예정돼 있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및 한미연합사 해체’에 대해 우려와 걱정이 태산. 북한의 도발과 침략의도가 멈추지 않고 완전 제거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뤄지는 전작권 전환과 한미연합사 해체에는 단연 반대한다면서 반대의 목소리를 분명히 했다.
이와 함께 한 시절 온몸으로 북한 공산주의자들과 부딪히며 체득한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속성에 대해서도 경험론을 숨기지 않았다. 현역시절 지금의 기무사령관에 해당하는 특무부대장을 지낸바 있는 한 분은 “공산주의자들과는 말 자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아니 대화는 하더라도 그들의 말엔 그 어떤 진정성도 없고, 용어를 혼란시키면서 오직 상대방을 속이는 데만 일가견이 있는 자들”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더불어 “공산당, 북한 쟤네들이 세번 ‘으쌰 으쌰’하면 우리는 여섯번 해야 대항되고 국민에게 공산당의 극한 실상을 깨우쳐줄 수 있다”고 노쇠한 모습과는 반대로 목청을 높였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엔 어쩔 수 없는 게 인간의 한계 아니던가. 지난 2011년 1월 필자가 ‘창군의 날’ 행사장을 찾았을 땐 직전 두분이 타계해 회원은 18명이었다. 해외 거주자도 여섯 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지난해는 전체 14명에 해외거주 회원은 3명이었다. 그러나 올해 기념일 참석자는 총 10명 중 이런 저런 건강 사정으로 4명 참석에 해외 거주 회원은 한명도 없었다. 한 해가 다르게 요단강 저편으로 스러지고 있는 것이다.
뉘라서 세월을 거스를 수 있겠는가. 흐르는 세월의 더께는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법. 염라대왕의 명부를 훔쳐 자신의 사망날짜를 지워 버림으로써 삼천갑자(1갑자=60년, 도합 18만년)를 살았다는 동방삭을 제외하고, 불로장생을 꿈꿨던 진시황 [始皇帝, BC 259 ~ BC 210]도 채 50을 넘기지 못했으며, 그리스, 로마의 시저와 솔로몬 등 영웅호걸도, 클레오파트라도, 호메로스와 징기스칸도, 세기를 풍미했던 대정치인, 장군, 문인 등 소인묵객(騷人墨客) 모두가 인간으로서 피해갈 수 없는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는 법이다.
그러나 이들이 일궜던 역사, 오늘의 중국 그 자체를 만들게 한 전설적 황제 시황제처럼 살아생전 일으켜 세운 위대한 업적은 시대의 흐름을 타고 연면(連綿)히 이어가는 것처럼 해방직후 혼란 상황에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창군의 위대한 공적을 남긴 이들 주역들은 활자화된 그 자체로서 영원한 빛을 발하게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시한번 역사의 한 주체로서 큰 획을 그은 백선엽(94), 강영훈(92), 김계원(91), 백인엽(91) 김완룡(96) 김웅수(91) 임선하(90) 원태섭(95) 황헌친(93) 김종면(91) 장군 등 생존 창군동우회원분들의 만수무강하심을 기원해본다.(konas)
코나스 (이현오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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