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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일 장군 동상(銅像)' 더 이상 흔들지 마라!

Written by. 서진현   입력 : 2011-12-10 오전 10:4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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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바 거제시 ‘김백일동상철거범시민대책위원회’(이하 ‘시민대책위’)가 거제시의회 일부 의원과 또다시 ‘김백일 장군 동상 철거’를 주장하고 나섰다.

 ‘시민대책위’는 지난 7월 20일 장군의 동상에 검은천을 덮고 쇠사슬로 감아 자물쇠를 채운바 있고(7. 29 거제향군회원이 원상 복구함), 이어 11월 22일과 12월 2일에는 동상에 가림막을 재설치 시도했다. 급기야 격분한 재향군인회 회원과 관리공단측이 이를 저지했으나, 지금은 동상철거 1만명 서명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시민대책위’ 주장의 허구성을 규명하기에 앞서 김백일 장군의 업적을 다시한번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김백일 장군은 독립운동가인 조부 김영학(1990,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의 후손으로서 일제 말기에 만주국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간도특설대에서 초급 장교로 복무하였다. 해방을 맞아 국방경비대에 입대하여 대한민국 국군 창설에 참여하였으며 이후 경비사관학교장과 초대 보병학교장을 맡아 초급장교 양성과 군사교리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1948년 10월 ‘여순반란사건’이 발생하자 5여단장으로 임명되어 14연대의 반란을 진압 평정하는 등 좌익세력의 준동에 의한 혼란 정국을 수습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6·25전쟁 기간에는 낙동강전선 동쪽(포항, 안강, 기계, 영덕)에서 북괴군을 저지하여 반격작전의 발판을 만들었고, 北進시에는 장군이 지휘한 1군단 예하 3사단이 가장 먼저 38선을 돌파했으며 북진의 선봉에 서서 압록강 혜산진까지 진격했다. 이후 대규모 중공군의 개입으로 인한 흥남철수작전중에 美 10군단장(알몬드 장군)을 설득, 군인 10만 5000명과 함경도민 10만여명을 군함·상선·어선을 동원해 철수 시켰다.

 1951년 3월 28일 장군은 미8군 전방지휘소에서 작전회의를 마치고 강릉의 군단사령부로 급거 귀대하던 중 대관령 인근 상공에서 악천후로 군용 항공기가 추락하면서 34세의 젊은 나이에 전사했다.

 정부는 장군의 전공을 인정하여 전쟁수행 중에는 을지·충무·화랑무공훈장을, 전사후에는 최고 등급인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했다. 후배 군인들에게 진정으로 존경받는 군인이 아닐 수 없다.

 ‘시민대책위’는 ‘왜곡된 친일역사를 바로 잡겠다’는 미명하에 김백일 장군에 대한 어불성설(語不成說)의 주장을 펼치고 있는데,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항일독립운동세력과 양민을 학살한 친일세력으로 국가차원에서 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고, 친일인명 사전에 등재된 인물 ▲흥남철수작전에 이렇다 할 역할을 한 바가 없고 ▲국방경비대 시절, 군보급품 부정처분 비리를 저질러 군내 기강을 무너뜨리고 좌천된 인물 ▲여순사건 이후 지리산 일대 토벌작전에서 민간인집단학살을 자행한 인물 이라는 것이다.

 이에 ‘시민대책위’의 네가지 주장에 대한 허구성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김백일 장군을 ‘간도특설대 창설요원으로 항일독립운동세력과 양민을 학살한 반민족행위자 친일세력’으로 몰아가는 ‘민족문제연구소’는 어떤 단체인가? 우선 이 연구소는 김승교, 임헌영 등 좌편향 인사들과 좌익사건 연루자가 주도한 단체이며 이들이 참고한 20세기 중국 조선족 력사 자료집이나 연변학계 자료 등은 주로 중국 공산당 및 친북학계 자료로서 친일 대상자 선정 기준이 자의적이고 객관성과 신뢰성을 상실하고 있다.

 국내학자 신주백이 지은 ‘만주국군속의 조선인 장교와 한국군(2002)’과 신동아(2007. 9.1, 통권576호) 등의 자료에 의하면 다음 기록이 있다. 곧 “간도특설대 창설(1938년 9월) 당시에는 한국독립군은 만주지역이 아닌 중국관내에서 활동했고, 간도특설대는 1938년 말 간도지역 조선인 치안유지 및 불순세력 퇴치와 중국 공산당 동북항일연군의 김일성 부대를 토벌대상으로 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당시 조선·동아일보 기사(1937년 7월 11·16일)는 김일성 부대가 독립군이 아닌 약탈·납치·방화 등의 비적 활동을 한 공산군(공비) 임을 보도하고 있다. 이런 자료들은 민족문제연구소의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입증하고 있다.

 둘째, “6.25 흥남철수작전시 김백일 장군이 이렇다 할 역할을 한 바가 없다”고 한 내용에 대해서도, 美 10군단장 알몬드 장군의 군사고문관 통역요원이었던 현봉학씨는 “피난민 10만명을 철수시킬 수 있었던 것은 김백일 장군의 노력이 컸다. 당시 김백일 장군은 ‘피난민이 우선이다. 우리는 여기서 싸우다 죽겠다’고 말한 것이 알몬드 장군에게 감동을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밝힌바 있다. 정일권 당시 참모총장 회고록(국가보훈처·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공동, 흥남철수작전 연구보고서)과 당시 수도사단 작전참모 이용 장군 및 1군단 민사참모 유원식 중령의 진술(자유, 1998.9, 통권301호)에서도 장군의 역할이 명확히 확인되고 있다.

 셋째, “국방경비대 시절, 군보급품 부정처분 비리를 저질러 군내 기강을 무너뜨리고 좌천됐다”며 ‘한국전쟁사 1권 406∼408쪽’의 일부 내용으로 왜곡하고 있지만, ‘한국전비사 제158쪽’을 보면 “연대의 경리를 공개했으나 사소한 부정이 없었을 뿐 아니라 결혼비용의 출처도 밝혀내서 사건은 수습되었다. 그러나 사건이 일어나서 소란을 피운 것은 사실이었으므로 송호성 소령이 연대장으로 임명되어 부임했고 김백일 대위는 부연대장으로 격하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편 한국전쟁사 1권 407쪽의 이어진 기록은 “당시 제3연대내는 많은 좌익분자들이 침투하여 세포(細胞)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러한 불순분자들은 그들의 행동목표를 내부적인 분열조장으로 경비대의 질서를 문란시키는 동시에 군·경간의 이간책으로 군내질서를 파괴시키고 경비대의 유능한 간부들을 축출시키고자 획책한데서 본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런데도 ‘시민대책위’는 극히 일부의 단편적 서술 내용만을 적시해 진실을 왜곡·선동하고 있다.

 넷째, “여순사건 이후 전개된 지리산 일대 토벌작전에서 민간인 집단학살을 자행한 인물”이라는 주장도 사실 왜곡이다. ‘여순반란’은 軍 내부 좌익세력들이 한반도 공산화를 위해 일으켰던 사건이었다. 장군은 오히려 지리산 일대 공비 토벌작전중 깊은 산골에 거주하는 민간인들의 사전 철수와 출입금지구역 설정, 양민과 폭도들의 차단선 획정과 선무활동 등을 실시하여 양민의 피해를 최소화했다고 한다.

 이렇듯 김백일장군 동상 철거를 획책하려는 거제시 일부 시민단체와 의회 의원들의 주장이 얼마나 거짓과 왜곡으로 점철돼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위대한 공적을 남긴 장군에게 잘못된 역사의 잣대로 근거없는 매도를 일삼는 것은 장군의 명예 훼손은 물론 풍전등화에 놓인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바친 순국선열과 유가족들을 모독하고 국군을 폄훼하는 파렴치한 행동이다.

 백번을 양보해, 설령 장군에게 사소한 과오가 있다손 치더라도 태산같은 업적과는 비교조차 될 수 없으며 이를 왜곡·비하하는 시민대책위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전쟁중 급박한 생사의 기로에서 美 알몬드 장군을 설득해 10만 피난민을 안전하게 철수케 한 사실과 정부로부터 수많은 전공을 인정받아 각종 무공훈장을 수여 받은 엄연한 현실은 부정될 수 없다. 장군의 업적은 전사(戰史)와 더불어 길이 기억될 것이다.

 편향되고 왜곡된 주장에 동조하며 망동을 일삼는 ‘시민대책위’와 거제시 일부 의원들은 대오 각성해야 한다. 누구 때문에 자신들이 이렇게 풍요로운 대한민국에서 온갖 자유를 누리면서 살고 있는지를 깊이 성찰해야 한다.

 위대한 전쟁 영웅을 조롱하는 이들 단체는 자신들이 ‘역사의 진실, 상식, 정의라는 용어로 위장한 뼛 속까지 반한파’가 아닌지 되새겨 보고 동상철거 준동 행위를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 아울러 바른 역사의식으로 국가의 미래를 위해 진일보하는 시민단체로 거듭나기를 권고한다.

서진현 (예, 육군소장. 대한민국재향군인회 안보국장)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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