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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귀환 국군포로 문제 해결해야

Written by. 조성훈   입력 : 2015-06-23 오전 9:3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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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6·25전쟁이 일어난 지 65주년이 되고, 휴전협정이 체결된 지도 62주년이 된다. 그런데 ‘돌아오지 못한 국군포로’가 아직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그야말로 전쟁이 잠시 쉬고 있는 상태임을 의미한다. 북한이 냉전적 대결과 도발을 계속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전쟁의 유산을 치유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이 문제의 해결은 현재의 경색된 남북관계에서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휴전협상에서 국군포로 문제가 발생한 이유는 근본적으로 북한의 포로정책에서 비롯됐다. 북한 측은 국군포로 대부분을 북한군에 입대시키거나 주민으로 편입시켜서 포로명단을 교환할 때 이들을 아예 제외시켰다.

 1951년 6월 25일 북한군 총사령부는 국군 및 유엔군 포로의 규모로 10만8000여 명을 공식 발표했으나, 6개월 후인 그해 12월 휴전협상에서 포로명단을 교환할 때 1만1559명으로 축소했다. 휴전 후 귀환한 아군 포로는 모두 1만3000여 명에 그쳤다. 이 때문에 ‘사라진 국군포로’가 발생한 것이다.

 북한 언론에서 남한이 송환한 비전향 장기수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보람찬 삶과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선전했던 것처럼, 생존한 국군포로에게도 남한으로 돌아와 여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군포로는 이미 모두 80세를 넘어 90세를 바라보는 연령에 다다르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책임도 있다. 중국군은 ‘조선인민군 및 중국인민지원군 전쟁포로 관리처’를 공동으로 운영했으므로 그들의 책임 있는 해명이 필요하다. 중국 정부는 포로에 대한 ‘관대한 정책’을 실시했다고 주장해왔다. 이러한 정책에 부응하려면, 중국군이 획득한 국군포로 3만7532명 가운데 미(未)송환된 포로에 대해 해명할 책임이 있다. 중국군의 전과에는 국군 투항자가 몇백 명에 불과한데, 마오쩌둥이 스탈린에게 보낸 전문에 따르면 1951년 1월 포로가 된 한국군 사병 2만 명을 북한군 5개 군단에 나누어 배치하는 안을 제의한 적이 있었다.

 우리 정부는 중국과의 우호관계를 확대하기 위해 2014년 3월 파주 적군 묘지에 매장돼 있는 중국군 유해 437구를 중국에 인도했고, 이듬해에도 추가로 68구를 보냈다. 유해송환이 우리 측의 일방적 송환에 그치지 않고,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국군포로 관련 자료가 교환되기를 기대한다.

 한편 러시아 국방부 자료에 따르더라도 국군포로 규모는 4만1000명으로 파악됐고, 1953년 12월 평양 주재 소련대사관에서 보낸 문서에는 1만3000여 명의 국군포로가 북한에 남아 있다고 명기돼 있다. 또한 1954년 2월 동부 시베리아 마가단수용소에서 귀환한 독일군 포로는 “1951년 9월 전쟁 초기 포로가 된 남한군 50명을 마가단의 수용소에서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늦었지만, 러시아 정부도 이에 대한 구체적인 해명을 해야 할 때다.

조성훈 (군사편찬연구소 전쟁사부장)

* 국방일보 6월23일 17면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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