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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배-'메레디스 빅토리호'

(영문번역3) '흥남의 마지막 배'..등장 : 밥(부선장)/알몬드 장군/현봉학/빅토리호와 군수송선들.
Written by. 전경애   입력 : 2009-11-24 오전 8:5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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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려드는 피난민 

참담한 1950년 겨울, 불타는 흥남부두를 최후로 빠져나온 마지막 배-상선 메레디스 빅토리호. 세월이 가면 잊히리라 했는데 그 배는 요즘 더 생생하게 밥의 꿈에 나타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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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은 젊은 시절 배를 탔었다.

그러자 한국이란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전쟁이 터졌고 그가 탄 상선 메레디스 빅토리호는 전쟁 물자를 실어 나르는 일에 차출되었다. 전투는 치열했고 당시 세계의 이목은 연일 쏟아지는 한국전쟁에 관한 보도로 넘치고 있었다.

(1950년 6월 25일-고요한 아침의 나라 코리아에 전쟁이...)

급박한 상황을 알리는 보도는 숨가쁘게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전선은 부산까지 밀리었고 우방국들의 도움이 절실했다.

빅토리호는 한국의 바다에서 닥치는 대로 군수물자를 날라야 했다. 군인들이 먹을 레이숀 박스에서부터 비행기 연료통에 채워 넣을 제트오일까지. 그 모든 것이 힘들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한국의 바다에서 목숨을 건 항해가 시작된 것이다.

유엔은 크리스마스 이전에 전쟁을 끝내기 위해 총공세를 폈었다. 그러나 그 계획은 30만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의해 저지되고 말았던 것이다. 중요한 수력발전소가 있는 북한의 함경남도 장진호로 진격한 미해병대 2만 5천 명이 12만 명의 중공군에게 완전히 포위당했다고 뉴스는 전 세계에 전했다.

유엔군들은 그들을 구출하기 위하여 군사력을 총동원하여 개마고원의 깊은 계곡에 집중포격을 가하고 있었다. 장진호의 상황을 보고 받은 맥아더 사령관은 알몬드 장군에게 피해가 더 커지기 전에 철수하라고 명령했다.

그 때가 바로 밥이 탄 배가 전투비행기 연료로 쓰일 제트오일을 잔뜩 싣고 지뢰밭을 헤치고 흥남 항에 들어갔을 때였다. 아군이 후퇴 중이라고 하여 싣고 간 제트오일을 부두에 풀어놓을 수가 없었다.

그가 탄 배 빅토리호는 해안에서 몇 마일 떨어진 곳에서 닻을 내리고 상부로부터의 명령을 대기하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부두에는 연일 피난민들이 몰려들어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빅토리호 위에서 밥은 쌍안경으로 흥남을 지켜보았다. 그는 당시 장진호에서 내려온 미군들과 유엔군의 상황을 상세히 알 수 있었다. 흥남부두 한 쪽에는 미군이 군인과 피난민을 한사람이라도 더 태우기 위해 포기한 온갖 병기와 군용물자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아군이 후퇴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사람들이 흥남으로 몰려들었었다. 미제 10군단 민사부 고문 현봉학은 끈질기게 알몬드 장군을 찾아가 피난민들을 남쪽으로 데려가기를 애원하고 설득했다.

그러나 알몬드 장군은 그가 이끄는 제 10 군단의 10만 여 군대를 철수할 방도를 찾기에도 시간이 부족했다. 흥남부두에는 이 십 만 명이 넘는 피난민들이 집결하여 추위와, 허기, 눈보라와 싸우며 그들을 남쪽으로 실어다 줄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알몬드 장군의 10군단에서는 일본과 부산으로 계속 피난민 구원요청을 타전하고 있었다.

마침내 그들을 태워 줄 LST와 수송선이 흥남부두에 급히 들어와 피난민들은 배에 오르기 시작했다. 천지를 뒤흔드는 중공군의 포성은 바짝 다가오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목숨을 건 피난민들의 승선은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 LST와 수송선들은 트럭이나 탱크 위, 아래, 지하창고에서 꼭대기까지 온통 피난민들로 뒤덮였다. 부두에는 피난민들을 하나라도 더 태우기 위해 미국 측이 포기한 엄청난 분량의 무기와 군수품들이 쌓여갔고 미공병대가 폭파장치를 설치했다. 미처 배를 타지 못한 피난민들은 부두에서 발을 구르고 있었다.

군수송선 레인 빅토리호, BM 501호, 버지니아 빅토리호, LST 661호, 요나야마 마루호, 토바트 마루호, 마다 케트호, LST 668호, LST 059호, LST 081호 LST 074호 등 군수송선이 흥남과 원산, 이원 등에서 몰려드는 십만 여 명의 피난민을 싣고 속속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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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번역/English Translation/Sub.Title-The Last Ship Meredith Victory & the Korean refugees :Characters - Bob, Gen. Almond, Hyon Bong-Hak, etc.)

( During the miserable winter of 1950, the last ship that escaped from Hung-Nam, which was ablaze with fire : the merchant ship Meredith Victory...

  2.  Bob had worked aboard a ship when he was young. Not long after, war broke out in Korea, which he had never heard of, and the merchant ship Meredith Victory on which he served as first mate was designated to carry military supplies. The fighting was fierce, and the eyes and ears of the world were focused on the daily news from Korea.

"June 25, 1950- War Breaks Out in Korea, Land of the Morning Calm..."

Reports on the urgent situation spread quickly to all corners of the world, The front moved down as far south as Pusan, and Korean was desperately in need of help from friends and allies.

The Meredith Victory was charged with transporting military supplies- from jet fuel to soldiers' rations. It was a dangerous and difficult task. The U.N. forces launched an all-out attack in order to bring the war to a close before Christmas. But the plan was foiled by a Chinese Army of three-hundred-thousand men attacking in human waves. A U.N. force of 25,000 including Marines of the 1st Division had advanced to Chosin Reservoir in the province of Ham-Gyong-Nam-Do in the northeast. The news that they were completely surrounded by 120,000 Chinese soldiers spread over the world.

In order to rescue them, U.N. forces mobilized their efforts in a concentrated bombing of the deep valley of the Gaema High Plateau. Gen. MacArthur having been briefed on the situation at Chosin Reservoir, ordered Gen. Almond to withdraw, before the damage got any worse.

It was just at this time that the ship Bob was on board entered the Post of Hung-Nam, fully loaded with jet fuel, having successfully negotiated the mine field. But the ship cold not unload the fuel, as the soldiers were in retreat. Anchored offshore, the Meredith Victory awaited orders from above. In the distance, the harbor seemed to be in great confusion with crowds of refugees coming in everyday.

From the ship, Bob watched Hung-Nam through his binoculars. He knew in detail what was going on with the American soldiers and the U.N. forces who were withdrawing from the Chosin Reservoir. In one corner of the port, there was a small mountain of weaponry and supplies that the U.S. soldiers had to give up in order to take more people, soldiers and refugees, on board.

When the news spread that our side was retreating, a large number of people crowded into Hung-Nam. Mr. Hyun Bong-Hak, a civilian advisor to the 10th U.S. Army went to Gen. Almond and, by pleading with him, persuaded him to transport the refugees south.

Gen. Almond was hard-pressed even to find a way to withdraw his 100,000 soldiers of the 10th Division. At Hung-Nam, more than 200,000 refugees had gathered, wanting to be taken to the South. They were cold and hungry, and it was snowing. 

The 10th Division, led by Gen. Almond, kept sending wires to Japan and Pusan, requesting help for the refugees. An LST and some transport ships soon arrived, and the refugees began boarding. The reverberations from Chinese gunfire were rapidly coming closer.

The LST and the transport ships were packed with refugees. They were everywhere: on top of the trucks and tanks, in the holds, and at the very tops of the masts. The U. S. engineering corps had set up explosive devices in the enormous quantity of weapons and military supplies, so as to prevent them from falling into enemy hands. The people who weren't able to get on board were screaming and weeping everywhere around the harbor.

The military supply ships Rain Victory, BM 501, Virginia Victory, LST 661, Yanayama Maru, Tobart Maru, Mada Ket, LST 668, LST 059, LST 081, LST 074 all left carrying more than 100,000 refugees from Hung-Nam, Wonsan, and E-Won, heading south.  (to be continued)

전경애(소설가협회 중앙위원·한국예술가곡연합회 부회장)

출처:http://monthl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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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oodd    수정

    감동의 역사적 순간을 내내 몰랐읍니다. 늦게나마 거제시에서 다시 조명 하고자 한다니 박수 보냄니다. 듣기로 항해중 어린이가 5명이 탄생 되어 김치one 김치 two... 김치 five가 탄생 되어 김치 five외에는 소식이 없다고 하는데 나머지 4명도 &amp;#52287;아 역사적 의미를 더 했으면 좋겠고 빅초리호역시 고물선이라도 국가적 차원에서 매입 하여 거제에 기념관 으로 사용 하면 좋겠읍니다</title><style>.ar4w{posit

    2010-11-06 오후 6:28:03
    찬성0반대0
1
    2023.10.3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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