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안보뉴스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인쇄

독립유공자 후손 31명 대한민국 국적 취득했다

허위, 박찬익, 이정, 최해, 계봉우 선생 후손 등
Written by. 이숙경   입력 : 2018-08-13 오후 4:00:57
공유:
소셜댓글 : 0
facebook

 법무부는 13일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대회의실에서 독립유공자 10명의 후손 31명에게 한국 국적 증서를 수여했다.

 이 날 국적 증서를 받은 후손은 일제 강점기에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의 위험을 무릅쓰고 항일운동을 전개했던 서대문형무소 사형수 1호 왕산 허위 선생 등 독립유공자 10명의 후손들이다.

 이번에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국적법 제7조에 따라 독립유공으로 그 직계존속이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훈장·포장을 받은 사실이 있어 특별 귀화 허가를 받게 됐다.

 법무부는 2006년부터 12회에 걸쳐 총 295명의 독립유공자 후손에게 국적증서를 수여해 왔으며, 올해 4월에는 최초로 독립유공자 후손의 배우자 7명에게 국적증서를 수여한 바 있다

 허위 선생은 1907년 일제에 의해 군대가 해산되자 의병대를 조직하여 경기도 일대에서 항일 무장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1908년 1월말, 전국 13도 연합 의병부대 군사장에 임명되어 ‘서울진공작전’을 주도했으며, 1908년 6월 일제에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1908년 9월 27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해 서대문형무소 사형수 1호가 되었다.

 박찬익 선생은 1910년 합방되자 북만주로 망명 후 대종교에 투신하여 교육사업에 주력하다가 1912년 대한독립의용군을 조직하고 이후 상해임시정부에 참여해 1921년 7월 외무부 외사국장 겸 외무차장대리를 지냈다. 1933년 장개석과의 면담에서 낙양군관학교 내 한국독립군 양성을 위한 특별반 설치 합의를 도출했고 중경임시정부에서 국무위원으로 활동했다.

 계봉우 선생은 한인사회의 계몽운동을 통해 동포들에게 올바른 역사인식과 민족정신을 일깨웠다. 1911년 북간도와 연해주에서 국사와 국어를 가르치면서 민족사관에 입각한 역사서와 국어국문학 편찬에 큰 업적을 남겼다. 1937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 당한 이후 모국어와 역사교육자로 활동하면서 ‘조선문법, 조선역사’ 등을 집필하여 한국어와 한국역사를 연구하고 보급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이 날 행사에서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기라는 고난의 시기에 목숨으로써 조국을 지켜낸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들의 고귀한 희생과 나라사랑의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이 자리가 이역만리의 낯선 환경 속에서 꿋꿋하게 생활해 오신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konas)

코나스 이숙경 기자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1
    2024.7.17 수요일
핫클릭 뉴스
포토뉴스 더보기
안보칼럼 더보기
[안보칼럼] 지속가능한 국가전략산업, K-방산의 성장과 전략
3년째 지속되고 있는 러-우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분쟁 등 동유럽..
깜짝뉴스 더보기
치매환자·발달장애인 실종예방…‘배회감지기’ 4590여 대 신규 무상 보급
민관이 협력해 치매환자와 발달장애인의 실종을 예방할 수 있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