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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6.25전쟁영웅에 김한준 육군 대위, 독립운동가는 김마리아 선생

6.25전쟁 전 기간 전장에서 보내…2·8독립선언과 3·1운동 참여
Written by. 최경선   입력 : 2019-02-07 오후 3: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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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한준 육군 대위가 2월의 6·25전쟁영웅으로, 김마리아 선생이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김한준 대위는 19세인 1947년 4월 국방경비대에 지원 입대해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7사단 제8연대 소속으로 평양탈환작전에 참여하였으며, 전투경험과 지휘 능력을 인정받아 육군 소위로 현지 임관되었다.

 휴전협상이 막바지에 달했던 1953년 7월 13일, 중공군이 전략적 요충지인 강원도 금성천 부근을 장악하기 위해 5개 군 15개 사단을 투입해 이른바 ‘7·13공세’로 불리는 최후공세를 취하자 당시 김한준 대위는 중대장으로 중공군과 치열한 전투 끝에 425고지를 사수해 사단의 주보급로를 확보하고 전력공급원인 화천댐을 사수했다.

 이는 연대 주저항선의 한 축을 지키고 금성천 방어선의 안정적 유지에 크게 기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컸다.

 이같은 공적으로 김한준 대위는 정부로부터 1953년 태극무공훈장을 수여받았으며, 2012년 4월 29일 향년 83세로 별세해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김마리아 선생은 1892년 6월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1918년 1월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이 발표되고, 이듬해 1월부터 파리강화회의가 개최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재일 동경 유학생이던 선생은 이를 한국 독립의 절호의 기회로 생각하고 2·8독립선언문 10여 장을 미농지에 복사해 옷 속에 감추고는 부산에 도착해 교육계·기독교계·천도교계의 지도자들을 만나 재일 동경 남녀 유학생들의 독립운동에 대해 보고하고 국내에서의 거족적인 독립운동을 촉구했다.
 
 3·1운동이 일어난 날 선생은 여성들에게 독립운동 참여를 촉구하였고 그 배후 지도자로 지목되어 학생들과 함께 체포되어 옥고를 치루었다.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1928년 2월에는 여성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독립운동 단체인 근화회를 조직해 조국 독립의 염원을 버리지 않았다.

 1932년 7월 귀국해 종교 모임과 강론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등 지속적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으나 고문 후유증이 재발해 입원 치료중 1944년 3월 13일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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