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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짓기 공모전 입선작> 북한포로, 나의 아버지 !

Written by. 함오숙   입력 : 2023-11-01 오전 9:4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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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대한민국재향군인회가 ‘6.25전쟁 73주년,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호국안보 글짓기 공모전에서 일반부 최우수에 선정된 글입니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6.25전쟁을 말씀하실 때 “내가 ○○전투에 참전해서 공을 세웠어... 그때 죽다 살았어... 총성과 포탄을 뚫고 북한군과 싸웠지”라고 말씀하시며 회상을 하신다. 

 하지만 나의 아버지께서는 그렇지 않으셨다. 내가 아버지께 6.25전쟁 때 어떻게 싸우셨냐고 물으면 그냥 조용히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어렸을 때는 그런가 보다 하고 더 이상 묻지 않았지만 학생이 되어 학교 과제 때문에 진지하게 물어보는 계기가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남한군이 아닌 북.한.군.으로 6.25전쟁을 참전하셨단다. 지금부터 북한군 출신으로 남한에서 살아가기란 힘든 일이고 한평생의 그 어려운 여정을 걸었던 나의 아버지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아버지의 고향은 황해도 금천군 금천면. 지금의 38선과 아주 가까운 지역인 개성 근처이시다.  아버지께서는 고향에서 부모님과 농사를 지으며 평범한 농사꾼의 삶을 살고 계셨다. 그렇게 평범한 20대 청년의 삶은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여 북한군으로 강제징집이 되면서 하루아침에 북한 군인으로 참전을 하시게 되었다. 

 전쟁 이후 가족과 인사도 제대로 못 나눈채 북한군에 끌려가 특별한 군사교육도 없이 군복과 소총만 받고 남으로 남으로 내려오다가 첫 번째 전투에서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포로로 잡히셨단다. 포로로 잡힌 뒤 아버지께서는 거제도로 보내졌고 6.25전쟁 기간 동안 대부분 거제포로수용소에서 생활하셨단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혹독했다. 당시 거제도에는 약 15만 명의 포로들이 수용되어 있었으며 포로들 중에는 북한과 중국으로 돌아가려는 공산포로와, 돌아가지 않으려는 반공포로로 나뉘어 수용소 내에서도 심각하게 대립하고 있었단다.

 아버지께서는 공산당 당원도 아니셨고, 전쟁 후 남하하면서 잔인했던 공산당을 보면서 자신의 이념을 민주주의로 전향을 결정하셨단다. 또한 수용소에는 흔히 말하는 ‘골수분자’ 빨갱이들이 많아 수용소 내에서도 공산당 혁명 공부를 강제로 시키고 북한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친공 포로들이 남한에 남겠다는 반공 포로를 수용소 내의 인민재판에 회부해 살해하는 일이 수시로 발생했단다. 

 그리고 마침내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이 체결되었고, 포로수용소에 있는 포로들을 맞교환이 이루어져 북으로 돌아갈 사람 그리고 남한에 남을 사람을 결정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기로에 서서 고민 끝에 민주주의를 결정하셨고 정체성 혼란의 시기에 민주주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고 남한에 남기로 결정하셨다.  

 이 결정은 생의 기로에 선 결정이고 어쩌면 북에 두고 온 가족을 다시는 볼 수 없고 만날 수 없을 결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민주주의를 선택하셨고 남한에 홀로 남기로 결정하셨다.

 아는 사람 한 명도 없이, 일가친척도 없이, 재산도 없이, 맨땅에 몸뚱이 하나로 성실히 일하시면서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고생 중 어머니를 만나 남한에 뿌리를 두게 되었고 언젠가는 통일이 되어 북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시면서 평생을 사셨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 손을 잡고 명절 때는 임진각에 종종 따라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는 북한이 고향이신 실향민들이 다같이 차례를 지내고 북쪽을 향해 조상님께 절을 하는 곳이 마련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자식으로서 부모님 제삿날도 모르고 산소도 모르기 때문에 항상 죄인이라고 하셨고, 『남북이산가족』만남 신청도 하셨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기한이 없는 이 기다림은 아버지까지 끝내 순서가 오지 않아 한평생 실향민의 아픔을 안고 사셨다. 

 임진각에서 차로 1시간이면 갈 거리의 너무나 가까운 황해도 땅, 그렇게 멀지 않기에 더욱 안타깝고 항상 북녘땅을 그리워하시던 아버지는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종종 말씀하셨다. “이 땅에 다시는 6.25전쟁 같은 비극이 없어야 한다고, 또한 공산당이 얼마나 잔인하면서 무모하고 허무한지를 젊은이들이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전쟁을 겪어 보지 않았기에 공산주의를 이상주의로 생각하는 삐뚤어진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다”고 말씀하시며 큰일이라고 걱정하셨고, 직접 공산주의를 겪어 본 세대들의 경험과 교훈을 들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안보상황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국력의 힘을 키우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우리의 국력을 키우는 힘은 물론 자주국방이 중요하지만 한미공조도 그만큼 중요한 문제라고 말씀해 주셨고, 북한에게 한치의 틈을 보여서도 안되며 온 나라 온 국민이 한뜻을 모아 이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시던 누구보다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애국자 이셨다. 

 아버지의 나라사랑의 가르침을 배운 나 또한 부사관에 지원하여 여군으로 복무를 했고, 아버지는 내가 군대를 지원한다고 하니까 격려해 주시면서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나는 아버지와 약속을 했다. 통일이 되면 아버지 고향 황해도 금천군을 내가 꼭 방문해 보겠다고... 아버지가 그렇게 가보고 싶던 ‘나의 살던 고향’은 어떻게 생겼는지,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비록 아버지 눈으로 바라 볼 수는 없지만 딸인 나의 눈으로 보여드리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많은 실향민들의 통일에 대한 염원을 모아 하루라도 빨리 통일이 되어야 한다. 아니 간절히 원한다. 

 나 또한 아버지의 유업을 받들어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앞으로 나에게 주어진 일에 매진하고 이 나라에 필요한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해 본다. 우리의 부모세대가 목숨을 걸고 지킨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깨달고 제2의 실향민이 생기지 않도록 민족의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똑바른 안보의식을 갖고 올바르게 열심히 살아야겠다.(konasnet)

함오숙(서울 송파구)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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