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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비핵화가 북한에 주는 교훈

핵 대신 경제발전기반 확립, GDP 1만 달러 … 평화 애호국 위상 확립
Written by. 황은철   입력 : 2016-08-30 오전 9: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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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자흐스탄이 29일(현지시간) 수도 아스타나에서 구소련 최대 핵 실험장이었던 자국 동북부 ‘세미팔라틴스크’ 실험장 폐쇄 25주년과 유엔 ‘핵실험 반대의 날’을 맞아 ‘핵 없는 세상 만들기’를 주제로 국제회의를 개최했다.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경제발전을 이룬 대표적인 비핵화 성공 모델로 꼽히고 있는 카자흐스탄의 비핵화 추진과정은 ‘핵-경제 병진노선’이라는 실현 불가능한 정책을 추구하는 북한이 교훈으로 삼아 실천해야하는 모범적 사례가 될 것이다.

 이 국제회의에는 홍용표 통일부 장관도 초청되었으며 홍 장관은 기조연설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촉구했다.

 다음은 연합뉴스의 보도를 요약해 정리해 본 카자흐스탄의 비핵화 추진과정이다.
 
 1991년 12월 독립 당시 카자흐스탄에는 1천410개의 전략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 104기, 전략 핵폭기(TU-95) 40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아울러 세계 2위 우라늄 매장국이면서 고농축우라늄(HEU) 10t, 플루토늄 3t 이상 등 대량의 핵물질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생 독립국인 카자흐스탄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핵무기를 포기하고 선진국의 원조를 토대로 한 경제발전을 택했다. 1992년 2월 카자흐-러시아 정상회담을 통해 자국이 보유한 핵무기의 러시아 인도에 합의했다. 이듬해 12월에는 미국과 ‘비핵화 협력 협정’을 체결, 대규모 경제 원조를 약속받았다.

 러시아는 카자흐스탄이 보유한 HEU를 재처리, 발전용 저농축 핵연료 봉으로 제작해 돌려줬다.

 카자흐스탄은 핵무기 비확산 체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1992년 5월 NPT에, 1993년 10월에는 IAEA에 각각 가입했다.

 카자흐스탄의 비핵화가 가능했던 것은 안보를 위해 핵무기 보유보다는 사회·경제발전이 우선이라는 최고 정책결정권자의 확고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특히 카자흐스탄 동북부에 있는 세미팔라친스크에선 구소련이 40년간 456회의 핵실험을 실시해 피폭자가 많았다. 이로 인해 카자흐스탄 내 반핵 여론이 강했던 것도 비핵화의 동력으로 꼽힌다.

 또 러시아, 미국 등 주변 강대국도 카자흐스탄 비핵화에 대한 이해관계가 일치했다.

 러시아는 구소련이 보유하고 있던 핵무기의 통제권을 인수하는 것이 필수적이었고, 미국은 핵무기 비확산 목표를 위해 구소련에서 독립한 국가의 비핵화를 원했다. 유럽도 정세 안정과 안정적 자원 수급 등을 위해 카자흐스탄의 비핵화를 적극 지지했다.

 카자흐스탄은 약속대로 1995년까지 핵무기 전량을 러시아로 넘겼고, 핵시설과 핵무기 발사시설을 해체했다.

 카자흐스탄은 자발적 핵 포기 이후 중앙아시아 비핵화 지대화 창설을 주도하는 등 국제사회의 핵무기 비확산 노력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면서 약 1천200억 달러의 외자를 유치했고, 1인당 GDP 1만 달러 등 경제발전 기반을 확립했고, 평화 애호국 이미지로 국제적 위상도 강화했다.(konas)

코나스 황은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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