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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무요원 수기 ‘동행, 함께 성장하는 우리’(입선)

Written by. 김건중   입력 : 2019-11-25 오후 2: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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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무청은 지난 5월 24일∼ 6월 21일까지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를 공모해 선발된 내용을 책으로 엮은 '2019 젊음, 향기로 피어나다'를 9월 26일 발간했다. 2006년 시작된 체험수기집 발간은 올해가 14번째로 사회복무요원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겼다. 코나스는 병무청의 협조 아래 우수작을 중심으로 게재한다.<편집자 주>

대학생의 나
 7시, 휴대폰 알람이 귀청을 휘저을때 내 하루가 시작된다. 떡진 머리에 물을 칠하고 식탁 위의 계란 프라이를 몇 개 집어먹고 버스를 타러 집을 나선다. 붐비는 지하철 안, 자리 경쟁에서 밀린 난 손잡이를 잡고 부족한 잠을 청한다. 동아리 활동을 끝으로 저녁 9시가 되어서야 전철에 오른다. 평택역에 도착하면 10시, 인스턴트로 저녁을 때우고 카페에 들러 과제를 한다. 커피만 5잔 째다.

 훈련소 가기 전 마지막 방학, 휴학 신청서를 내고 그 동안의 시간을 되짚어 봤다. 행복하지 않다. 3년 대학생활 만에 깨달은 사실이다. 그것은 인생의 회의감으로 다가왔고 곧 나를 부정적인 사고로 내몰았다. 내 외형, 내면 모두가 싫었다. 바뀌자! 명쾌한 해답이었다. 그렇게 2년간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했다.

 2년간의 목표 : 아쿠아 슬론 완주, 금연, 자격증 취득하기, VMS, 1356에 봉사활동 500시간 채우기, 행복하기 등

동방학교
 근무 첫날, 안개가 유난히 짙었던 날이었다. 이슬비를 맞으며 걸었던 출근길은 상쾌했다. 학교 옆 숲은 나무가 물을 머금어 시원한 바람을 여과시켰고 흐릿한 동방학교의 운동장은 적막의 무게를 더했다. 학교 안, 계단을 올라가면서 앞으로 내 2년의 삶이 담길 곳이기에 학교 안의 풍경을 유심히 살피며 걸었다. 아이들 등교 전, 담당 선생님을 찾아뵙고 앞으로 주의사항 및 배정받을 반을 공지 받았다.

 그리고 학교 내부를 구경하는데 헬스장이 있었다. 훈련소에서 꾸준히 팔굽혀펴기를 하며 운동에 취미가 생겼는데 교내에 이런 시설이 있다는 것에 너무나 큰 기쁨이었다. 그 외에도 강당(예배 시설 구비), 체육관(실내 농구 코트 구비), 음악실, 공예실, 가사실, 사회 복무요원실, 감각 훈련실 등 상당한 시설이 구비되어 있어 기대감을 자극했다. 또, 동방학교에는 당시 13명의 사회복무요원이 복무하였는데, 모두 처음 온 나와 동기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고 이 동료들은 내가 동방학교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다.

 경험해보지 못한 환경
 고등학교 1학년에 배정이 되면서 다 큰 아이들을 상대한다는 것에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나의 편견은 1교시 수업시간에 아이들의 활발한 모습과 쉬는 시간에 반에서 노래를 틀면 춤을 추러 오는 학생들을 보며 사라졌다.

 “중간고사는 언제죠?” 동방학교에 와서 담임선생님께 고심 끝에 던진 첫 질문이었다. 선생님께서는 특수학교에는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보지 않는다고 말씀해 주셨다. 의아했다. 경쟁이 없는 환경은 나에게 익숙지 않았다. 동방학교 학생들에게 ‘비교’라는 단어는 불필요했다. 국어 선생님께서 들어오자마자 한 학생은 “아그작봐요 아그작!”라고 소리쳤다. 알고 보니 동화 ‘도깨비와 개암’ 얘기였다. 선생님께선 동화를 틀어주시고 인물, 사건 등을 아이들에게 재차 질문하며 내용을 숙지시켰다. 내가 초등학생 때 받았던 교육이다.

  대부분의 수업들은 이러했으며 색종이 접기, 가면 색칠하기, 쿠키 꾸미기, 춤 따라하기, 비즈공예 만들기 등이었다. 20대가 돼서, 경제학과를 전공하면서 접하기엔 어려운 경험이었다. 어른이 된 나였지만 이런 수업들이 색다르고 재밌었다. 더 잘 만들고 싶고 다른 것들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 이러한 활동들을 통해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학생들도 나를 구성원으로 생각해 주었다. 이제 먼저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인사해 주었다.

 만나면 손가락 하트를 해주는 학생, 매일 안부편지를 써주는 학생, 품에 안기는 학생 등 아이들과 정서적인 교감을 나눌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순수함은 내가 동방학교에 근무하면서 찾았던 잃어버린 감성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특수학과를 전공하지 않은 내가 아이들을 잘 지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선생님들이 사회복무요원들이 있어서 아이들이 형처럼 따를 수 있는 존재가 있어 다행이라 하시는 것처럼, 학생과 나는 같은 Z세로서 관심사와 통하는 것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농구이다. 실내 농구 코트가 있듯이 동방학교 학생들은 농구를 좋아한다.

 나 또한, 고등학생 시절 친구들과 점심시간마다 농구를 했을 만큼 농구를 좋아한다. 그래서 주말에 농구를 하자는 학생의 부탁을 흔쾌히 수락할 수 있었다. 그렇게 주말에 시간이 날 때마다 근처 학교 농구 코트에서 아이들과 공을 던지곤 했다. 업무가 아닌 내 취미로 말이다.

 동방학교는 기독교 학교이다. 그래서 매주 수요일마다 예배를 드리는데 주마다 한 반씩 특송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 반 차례가 다가왔고, 노래만 부르면 뭔가 심심할 수도 있어서 전 주 주말에 직접 영상을 제작해 무대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본인이 나오는 영상을 너무 좋아해줬고 무대가 끝났어도 학생들이 매일 노래를 흥얼거리는 모습에 준비 기간 동안 고생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예전부터 성격이 소심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만큼은 적극적이고 싶었다. 점심 쉬는 시간, 아이들이 TV 앞에서 아이돌 무대를 보고 있으면 옆에서 장단을 맞춰주거나 아이들의 장난에 맞춰주는 등 이전엔 하지 못했던 행동들로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너희들은 더 성장할 수 있어!
 고등부에서 2학급을 지내면서 학생들이 전공과를 가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봐왔다. 전공과에 입학하려면 배수관 조립, 도서 분류, 콘센트 조립 등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서도 독립하여 일을 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시험을 보고 면접도 봐야 한다. 동방학교 학생뿐만 아니라 외부 학교 학생들도 지원을 하여 경쟁률도 높다고 한다. 다행히도 작년 우리 학교에서 지원한 학생 전원이 합격을 하였다. 선생님들, 사회복무요원들 모두 몇 달 전부터 스피드 연습, 면접 연습 등을 도와가며 아이들의 합격을 기원하였다.

 처음부터 잘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중간에 포기하고 좌절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왜 저는 다른 친구들보다 배수관을 더 빨리 조립하지 못 할까요?” 한 아이가 나에게 와서 한탄했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거야.” 그리곤 더 연습하면 다른 친구들처럼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얘기했지만 속으론 학생이 걱정이 되었다. 같은 장애를 갖고 있어도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의 연습을 도왔고 더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다독여 주었다. 그리고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부모라도 된 것처럼 너무 기뻤다. 노력의 성과였다.

 답답한 자신 때문에 눈물 흘리며 연습한 아이가 너무 대견해서 합격한 아이들을 데리고 주말에 중국집에서 밥을 먹으며 합격을 축하해 줬다. 모든 아이가 전공과에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런 아이들은 성인 생활시설, 그룹 홈, 주간보호 센터, 취업(보호 작업장 등) 혹은 집에서 지낸다고 한다.

 난 아이들이 학교를 떠나서도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으면 한다. 그래서 매번 휠체어를 탄 아이의 근육을 길러주기 위해 손에 그립 볼을 쥐여 주고 당겨준다. 그리고 색칠 공부를 할 때도 되도록 본인의 힘으로 색연필로 색을 칠할 수 있도록 해준다. 또, 반에 다운증후군 학생은 등교 때 손을 안 잡아주면 계단을 올라가지 않는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혼자 올 수 있도록 옆에서 다독여준다. 이렇듯 학교를 떠나더라도 아이들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져 나 외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아이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학생들은 나의 □다.
 아이들은 나의 가치관의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다. 난 행복하지 않았다. 무엇이 행복의 기준인지를 몰랐고 나라는 존재를 부정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만난 뒤, 내가 이 사회에 할 수 있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난 색칠 공부를 함께 해줄 수 있고, 밥을 먹여줄 수 있고, 농구 경기에 관하여 얘기를 나눌 수 있고, 휠체어를 끌 수 있으며, 요리를 해서 아이들과 함께 먹을 수도 있다. 아직 행복하다고 단정하진 않지만,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래도 난 어쩌면 내가 이 세상에 밝은 빛이라도 될까 봐” (볼빨간사춘기 - 나의 사춘기에게 中)

앞으로의 나
 아직 반도 복무하지 않았지만 꽤 많은 것을 이루어낸 것 같다. 매일 1시간 일찍 출근해서 운동하고 자격증도 취득하고 금연도 하는 등 잃었던 자존감을 많이 회복했다. 그 중 가장 자랑스러운 점은 봉사시간 300여 시간을 달성했다는 점이다. 영어교육 봉사, 요양원 봉사, 헌혈 등 많은 봉사를 해도 가장 행복한 시간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다. 앞으로 1년, 긴 여정을 떠나며 동방학교에서 아이들과 동행하며 성장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김건중(동방중학교)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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