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칼럼] 북한의 국호 변경 의도와 향후 남북관계 전망
몇 달 전 수원에서 열린 AFC 여자 챔피언스리그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여자축구단 리유일 감독은 취재진이 ‘북측’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바로 불러 달라”며 기자회견장을 떠났다. 단순한 언쟁처럼 보였지만, 이는 김정은 정권이 추진하는 적대적 두 국가론이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도 일관되게 관철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이제 북한은 국제사회는 물론 대한민국에도 자신들을 ‘북한’이나 ‘북측’이 아닌 하나의 독립된 국가로 호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국제정치에서 호칭은 단순한 언어가 아니다. 상대를 어떻게 부르느냐는 곧 그 존재를 어떻게 인식하는가를 의미하며, 외교적 지위와 정치적 정당성을 반영하는 상징 행위다. 북한이 국호 사용을 집요하게 고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한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과의 관계를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에서 주권국가 간 적대관계로 재편하려는 국가전략의 일부인 것이다.
김정은 정권은 이미 통일을 국가의 최우선 과제에서 사실상 후순위로 전환했다. ‘우리 민족끼리'라는 구호는 사라지고, 남북은 서로 다른 국가이며 대한민국은 제1의 적대국이라는 인식을 공식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국호 사용 요구, 대남기구 개편, 남북 연결도로와 철도 단절, 군사분계선 일대 요새화 등 일련의 조치와 맞물려 추진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를 바라보는 시각이 엇갈린다. 한편에서는 북한의 국호를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순간 대한민국 헌법상의 영토조항과 평화통일 원칙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북한을 별개의 정상국가로 인정하는 인상을 줄 경우, 통일정책의 헌법적 기반이 흔들리고 북한 인권 문제나 체제 책임을 묻는 논리 또한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상대의 실체를 인정하는 것이 곧 국가승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궁색한 해석을 내놓는다. 국제법상 국호 사용은 상대방의 공식 명칭을 존중하는 외교적 관행일 뿐이며, 국가승인과는 구별되는 문제라는 것이다. 오히려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긴장을 관리하고 대화의 공간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북한이 자신들의 정식 국호 사용을 지속적으로 고집할 경우 향후 남북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지를 전망하기란 쉽지 않다. 분단 이후 북한이 남북관계를 국가 대 국가의 관계, 그것도 적대적 국가관계로 설정하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은 상황에 따라 편의적으로 자신들이 견지해오던 정책과 논리를 조변석개하듯 바꾼 전례는 있다. 남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했을 때가 대표적인 사례다. 북한은 이전까지 남과 북 각각의 유엔 가입은 반대한 바 있었다.
향후 남북관계는 세 가지 방향에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첫째, ‘민족’공동체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의 통일 지향과 적대적 ‘국가’관계를 확정하려는 북한의 의도가 장기적으로 충돌하며 지속될 것이다. 남북 관계가 북한의 의도대로 쉽게 ‘국가' 간의 관계가 기본 단위가 되는 시대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북의 의도를 수용하여 이른바 평화적 두 국가관계로 전환하자는 목소리도 일부 제기되고는 있으나, 대한민국의 근본적인 대북노선의 전환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 이른바 평화적 두 국가관계라는 이상적인 구상은 취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실현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둘째, 이에 따라 남북 모두 상대의 실체를 부정하기보다 각자의 체제를 유지한 채 경쟁하는 장기적 공존 국면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김정은은 통일을 포기하는 것 같은 정책적 뉘앙스를 풍기고 있으나, 향후 10-20년 뒤 또 어떤 조변석개 같은 정책의 변화가 있을지 미지수이다. 대한민국으로서는 중장기적으로 더 극심한 경쟁 체제로 접어들고 있는 오늘의 남북관계를 어떻게 향후 발전된 통일의 패러다임으로 설계할 것인지 모색하고 성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셋째, 안보 측면에서는 군사적 억제와 위기관리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북한의 핵무력 고도화와 대한민국의 확장억제 강화가 병행되면서 남북관계는 관리되는 긴장(managed tension) 상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노골적으로 통일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대화나 교류협력 같은 정상적 남북관계를 위한 노력은 당분간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남북 간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확고한 안보 태세를 정비해야 한다. 위기관리를 위한 최소한의 군사적 소통 채널의 복원을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고 본다.
남북관계에 대한 전망보다 대한민국 내부의 남남갈등에 대한 대비는 우리가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할 측면이다. 이미 일각에서 북한의 주장을 인정한 위에서 이상적인, 이른바 평화적 두 국가 관계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있다. 향후 법·제도 측면에서도 호칭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계속될 수도 있다.
정부 차원의 국호 사용 여부는 단순한 언어 선택이 아니라 헌법, 국가보안법, 남북관계발전법, 통일정책 등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충분한 국민적 합의 없이 호칭 정책을 변경할 경우 불필요한 이념 갈등과 사회적 분열을 초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정부는 북한의 전략 변화에 감정적으로 대응하거나 조급한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
특히 북한의 요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접근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헌법적 정당성과 현실주의를 조화시키는 국가전략이다. 북한이 스스로를 ‘조선’으로 호명하는 시대에 대한민국 역시 자유민주주의 헌법 질서를 흔들지 않는 범위에서 원칙적으로 통일을 향한 일관된 노력을 지속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과 ‘조선’ 사이의 호칭 논쟁은 단순한 언어 문제가 아니다. 섣부르게 분단체제의 성격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정치적 신호라는 식으로 북한의 주장을 손쉽게 수용한다면 자칫 우리가 수십 년 동안 전개해 온 대북정책의 정당성을 부인하는 잘못된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가 북한에 대해 어떤 이름을 사용할 것인가는 결국 어떤 한반도를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국가적 선택과 직결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명칭을 둘러싼 소모적 논쟁이 아니라 변화하는 안보환경과 국제질서 속에서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와 국익을 동시에 지켜내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위해 통일·안보 전략을 발전적으로 업그레이드 하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konas)
권영태 : 향군 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한국산업경제연구소 국방사업연구팀 책임연구원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안보칼럼] 한미연합연습 축소에 따른 우리 군의 대책](/img_data/article/110307/110307_37776.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