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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적지 답사 대학생 국토대장정 소감문 ⑧

[장려작5]누구도 알려주지도 말해주지 않았던 6.25를 깨우치게 한 값진 기회
Written by. 이현주   입력 : 2008-08-11 오후 4: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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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대학생의 생활이 4학년의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을 때쯤 나는 슬슬 불안해졌다. 대학생이 되면 반드시 도전하리라 생각했던 국토순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는 두려움에서였다. 더군다나 대학생 신분으로 떠날 수 있는 시간이 나에게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쓸쓸함이 들어 우연한 기회에 접한 건군 60주년 기념 6.24 전적지 답사 국토 대장정에 주저 없이 신청하게 되었다.

 20살 그 시절, 대학생이 된 나에게 선배들이 가장 먼저 물었던 것은, 고등학생 때 대학생이 된다면 무엇이 가장 먼저 하고 싶었냐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주저 없이 제일 먼저 국토순례를 하고 싶다고 말했었다. 그 때 선배들의 당황하던 눈빛은 4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질 않는다. 선배들은 국토순례는 여자의 몸으로는 하기 힘들뿐만 아니라 너같이 키가 작고, 체구가 작은 여자아이들은 절대로 완주할 수 없다는 엄포로 나를 겁주었다. 그리고 이후에도 내 입에서 국토순례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모든 사람이 만류했었다.

 그들이 만류했던 이유는 내가 직접 국토순례를 시작한 첫 날부터 몸소 알게 되었지만, 대학생 시절 반드시 내 두 다리로 나의 조국을 걸어보고 싶었던 나는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은 채 국토순례를 지원하고, 참여하게 되었다. 물론 가족들에게도 단순한 답사를 간다고 말을 남긴 채 떠났었다.

 사람들이 나에게 국토순례 도중 언제가 가장 인상 깊었느냐고 또는 언제가 가장 힘들었냐고 물어본다는 나는 주저 없이 대장정 시작 첫 날이라고 답할 것이다. 대장정 시작 첫 날의 일화들은 아직도 나에게 너무나도 생생해서 가슴이 벅차오르게 만든다.

 첫 날 우리의 시작은 제58주년 6.25 기념행사와 우리의 출정식이었다. 많은 젊은 학생들이 6.25가 어느 시대에 일어났는지, 북한군의 침공인지 남한군의 침공인지도 모른 채, 심지어 북한과 남한의 전쟁인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6.25 전쟁의 참상과 실체를 알려주기 위해 시작된 이 국토순례의 시작은 당연히 6월 25일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나에게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그리고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던 것들에게 대해서 조금씩 깨우칠 수 있는 시간들을 가져다주었다. 출정식 참가를 위해 앉아 있던 우리들 눈앞에는 많은 훈장들과 함께 군복을 차려입으신 할아버지 분들께서 지나가셨다. 맨 끝에 앉아 있던 나는 사람들의 박수소리에 함께 박수를 치기 시작했는데, 6.25 전쟁을 도와주기 위해 오셨던 많은 UN군으로 출정하셨던 외국인 할아버지들께서 지나가시는 것이었다.

 단순히 교과서에 실린 UN군의 참전, 공산군의 개입이라는 단어로만 전쟁을 접했던 나에게 실제로 6.25전쟁에 참전했던 UN군들의 존재는 나에게는 상당히 낯설게 느껴졌다. 그 분들은 우리의 박수와 환호에 악수와 환한 미소로 우리를 맞아주셨다.

 그리고 우리의 출정식 예비연습 당시 우리는 손을 흔들면서 퇴장하라는 말을 팀장님으로부터 전해 듣고, 낯설고 어색하다며 “이게 뭐하는 거야?” 라는 말로 불평을 토로했었다. 사실 우리가 연예인도 아니고, 사람들 앞에서 손을 흔들면서 퇴장하는 것이 우리들에게는 너무나도 낯설고 쑥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했던 우리들의 모습을 반성케 했던 것은 아까 악수를 나누며 인사했던 UN 참전군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출정식을 마치고, 손을 흔들면서 퇴장하는 나의 눈에 들어왔던 것은 많은 6.25 참전군 분들의 모습이었다. 많은 분들이 카메라를 꺼내서 우리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시는데, 순간 나는 울컥하고야 말았다.

 저 분들은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전쟁을 도와주시러 목숨을 걸고 전쟁에 참전하셨던 분들이셨다. 그런데 나는 저 분들의 도움으로 인해서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편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 분들을 잊고 살았을 뿐만 아니라, 손 흔드는 게 어색하다고 불평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저 분들은 우리가 6.25 전쟁을 잊지 않고, 기념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는 것에 우리에게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씀하셨다.

 그 동안 내가 얼마나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던 전쟁에 대해서 무지했고, 관심 없이 살아왔던가에 대해서 반성하게 되는 순간이었고, 그 만남으로 인해서 나는 좀 더 진지하게 6.25 전적지 답사 국토 대장정에 임하게 되었다.

 그리고 첫날을 잊을 수 없었던 것은 비단 이 뿐만이 아니었다. 내리쬐는 햇빛과 처음으로 짊어진 엄청난 무게의 배낭과 함께 시작된 국토대장정은 내가 그 동안 해왔던 어떤 일들에도 비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심지어 첫날에 가방을 메고 쓰러지기까지 했던 나는 여러 사람들을 걱정시키게 만들었지만, 곧바로 일어나 꿋꿋하게 가방을 메고 걷기 시작했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그 때의 아찔함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고통스럽고 힘겨운 날들이 지속되었고, 나는 낯선 환경과 힘든 행군 속에서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면서 점점 지쳐만 가고 있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내리쬐는 햇볕 속에서 많은 대원들이 탈진하기도 하고, 끝없이 쏟아지는 폭우를 맞고 감기에 걸리기도 하며, 거의 모든 대원들이 물집이 잡히고, 자신들이 버티기에는 힘든 체력상의 문제로 힘들어 했지만, 다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한 발짝씩 걸어 나가게 되었다.

 그렇게 국토대장정에서 처음 만났던 우리들은 단순한 대원이 아닌 서로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한다는 것이 이토록 든든하고, 서로를 힘나게 하는 것인지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절실히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도 우리가 힘을 내어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걷고 있던 그 길 모두가 과거 6.25 전쟁 당시 많은 군인 분들께서 군장을 메고, 나라를 지켜내기 위해 전투에 임하셨던 곳들이기에 우리는 더더욱 멈출 수가 없었다. 우리가 걷고 있는 이곳이 어떻게 지켜진 곳인지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기에 우리는 절대로 포기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 고통의 일정을 마친 우리들을 위해 재향군인회분들께서 마련해주신 캠프파이어는 지금뿐만이 아니라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다른 대원들보다 많이 지치고 힘들어 했던 나는 내가 대원들에게 짐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과 두려움 때문에 항상 마음이 답답했었다. 특히나 쳐지는 나를 끌어주기 위해서 많은 대원들이 애를 써야만 했기 때문이다.

 힘들었지만 스스로와의 도전을 지키고 싶었던 나는 모든 이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가방을 스스로 들었고, 캠핑카에 의지하려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대원들이 나 때문에 힘든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고민하고 있던 나에게 우리조의 재홍오빠는 다가와 이런 말을 해주었다.

 “사실 군대갔다온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나는 체력이 남아서 행군했던 거리 뛰어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힘들다는 생각은 거의 안했었거든. 하지만 이 멀고 긴 거리를 혼자 걸어간다고 생각했다면 나는 아마도 절대 할 수 없었을 거야. 다 너희들과 함께 왔기 때문에 완주할 수 있었던 것 같아. 너희들과 함께 얘기하고, 함께 웃을 수 있었기 때문에 완주할 수 있었어. 고맙다.”

 우리의 힘든 일정 속에서는 분명히 체력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믿고, 서로의 힘이 되어 주었기 때문에 우리의 완주가 이토록 빛나는 것은 아닐까? 힘든 일정이 끝난 것을 기념하는 캠프파이어에서도 힘든 완주가 끝났다는 생각보다 우리의 헤어짐이 아쉽다는 것만이 느껴졌던 것은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그만큼 소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서로가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 용기를 북돋아주던 시간은 끝났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시간이 될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또한 우리가 함께한 이 시간들은 반드시 우리를 더욱더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나는 이번 6.25 전적지 답사 국토 대장정을 통해서 내가 잊고 지냈던 혹은 관심 갖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되었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지켜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분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는가에 대해서 그리고 그 분들이 지켜주신 자유 민주 대한민국 수호를 위해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이번 국토대장정을 통해 한국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내 조국 대한민국에 대해서 더 많은 자긍심이 생겼다. (konas)

 이현주(동아대학교)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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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imck247    수정

    장하다, 대한민국 아들 딸들아 6,25 당시 좋용한나라 공산주의북은 세벽 4시에 38선으을 돌파 무력남침으로 대한민국은 초토호데였다, 학생들은 대장선 자유를 알게대고 민주&amp;#51474;의 극복을 &amp;#51062;인샘이다, 학생들의 견해에 참전너병으로 깊은 뜻에 감하하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

    2008-08-13 오후 3:07:25
    찬성0반대0
  • 누룽지(kimyun9933)   

    전후세대, 특히요즘 젊은세대들에게 좋은 경험되었으면한다. 이번 국토대장정을 통해서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가져으면한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8-08-12 오전 9:2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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