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발발의 원인은 일제강점
호국보훈의 달에 6.25전쟁이 발발한 근본 원인과 나라의 소중함을 생각해 본다.
학자들은 6.25전쟁은 광복 이후 남측의 자본주의와 북측의 공산주의 이념을 기반으로 한 정권에서 충돌한 민족상잔의 산물이라고들 표현하곤 한다.
해방 이후 한반도는 미·소의 점령과 모스크바 협정으로 합법적 신탁 통치체제가 시작되고 당시 제주 4.3사건과 10.19 여순반란 사건으로 극도로 혼란 속에 북한은 1949년 중국이 공산화 되면서 소련과 함께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로 하나가 된다.
김일성 북한 정권은 남침에 대해 소련의 동의를 얻어내고 드디어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 북한은 소련제 전차를 앞세우고 기습남침하여 사흘만에 서울을 점령한다.
이후 남한은 미군과 유엔군의 도움으로 서울을 수복하나 다시금 중공군 개입으로 서울을 재 점령당하고 계속해서 3.8선을 중심으로 밀고 밀리는 치열한 전투를 하게 된다.
그리고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으로 우리나라는 오늘날까지도 휴전상태로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남아있게 된다.
6.25전쟁의 피해는 어떠한가. 사망, 전사, 부상, 실종자 등 한국군은 총 62만명, 유엔군은 약 15만명이고 민간인은 약 240만명으로 추측하고 재산적 피해는 얼마인지 알 수가 없단다.
그렇다면 6.25전쟁의 원인을 살펴보고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는 일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한다.
6.25전쟁은 남북 민족간의 피흘린 전투로 단순히 남과 북이 갈라지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전쟁이었다. 6.25전쟁 발발 근본 원인은 해방 이후 단일 정부가 아닌 독립전쟁과정에서 좌우 이념 등으로 분열되고 남과 북의 정권이 들어선 것이 원인이다.
우리민족은 1910년 경술국치 이래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36년간의 일제치하에서 부단히 독립투쟁을 벌이지만 1945년 8월15일 연합군에 의한 일본의 패망으로 광복을 맞이한다.
하지만 강대국의 점령과 이념문제의 큰 장벽이 앞을 가로 막고 있었고 국내외의 독립운동가와 민족 계열들의 분열로 각자의 먼 강을 건너면서 남과 북의 분단은 이미 시작되었다.
또한 일제치하 설움속에 살아온 대부분 민중들 역시 깨어 있기 보다는 당시 ‘이풍진세월’ 등 대중음악에서 보듯 무기력감과 수치심, 죄책감에 사로 잡혀 있었다.
특히 일제의 문화 말살 정책에서 민중의 정서는 극도의 정신분열 상태에 놓여 민중의 힘으로의 분단을 막기에는 더더욱 어려웠다.
일제치하의 무기력한 민중의 정서 또한 6.25전쟁 이후 ‘이별의 부산정거장, 단장의 미아리 고개’의 대중음악에서 지속되고 있음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6.25전쟁은 북한의 공산주의 야욕에서 시작되었지만 남과 북을 분단케 한 배경에는 일본 제국주의의 강제 점령이 가장 큰 원인이라 할 것이다.
조만간 정전 61주년이 다가온다. 오늘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을 비판하듯 어떤 유명 언론인은 한국인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세 가지를 지적한 바 있다.
그 하나는 한국인들이 얼마나 잘 사는지 모른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한국이 북한과 얼마나 위험한 대치 상황에 놓여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며, 세 번째는 이웃인 중국과 일본이 얼마나 대단하고 두려운 존재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첫째 우리나라는 6.25전쟁 직후 1인당 67달러로 세계 최고 못사는 나라였으나 2013년도에는 2만6천 달러를 넘어선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루며 잘 사는 나라가 되었음에도 이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둘째 국가안보 면에서 북한과 극한 대치 상황이 길게 유지되다 보니 내성이 생겨 북한의 핵 위협 등의 위험성에 무감각해진 상태라는 것이다. 불과 60여 년 전에 세계사에 유례가 드문 6.25전쟁의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수백만 사상자를 내었음에도 수많은 종북 세력이 활개를 치는 위험에 빠져있고, 전쟁으로 응어리진 가슴을 간직한 채 지금도 365일 병상에 누워 인고의 세월을 보내는 전상자들이 무수히 많은데도 말이다.
또한, 일본 아베 신조 정부는 역사의 퇴행의 끊임없는 망언을 계속하고 있고, 군사 대국화 야욕을 구체화 하듯이 지난 16일 개막한 세계 최대규모의 무기 전시회 ‘유로 사토리’에 참가하면서 무기 수출을 본격화 하고 있는 것이 현실임에도 말이다.
일제치하의 민족적 수치심 무기력감으로 인한 국가 정체성 부재가 6.25전쟁으로 이어져 한반도의 80%가 전화에 휘말리고 약 1천만 명의 전재민이 발생하고 분단의 장벽은 더욱 굳어지게 된 나라 잃은 대가는 너무나 컸다.
하지만 우리 대한민국은 1970-80년대 국민의 경제적 욕망으로 한강의 기적이라는 한국의 경제발전은 국민의 가슴에 용기와 희망을 불어 넣으며 세계속의 대한민국으로 우뚝 서고 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호국보훈의 의미는 국가유공자의 애국정신을 기리어 나라에서 유공자나 그 유족에게 훈공에 대한 보답을 하는 달이다.
우리는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6.25전쟁의 상흔과 근본 원인을 기억하며 국가와 민족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국민 모두가 나라사랑의 마음에서 하나 되어 국민 통합을 이루며 번영되고 항구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 다시금 6.25전쟁의 원인의 원인을 상기하며 나라의 소중함을 깨닫는 호국보훈의 달이 되길 간절히 기원한다.(Konas)
이재진 (서울북부보훈지청 보훈과장)









![[안보칼럼] 한미연합연습 축소에 따른 우리 군의 대책](/img_data/article/110307/110307_37776.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