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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칼럼] 대한 청년 윤봉길, 성혈(聖血)로 독립을 외치다!

Written by. 최경선   입력 : 2021-04-22 오전 9: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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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2년 4월 29일 오전 11시 50분, 3만 명의 상해 주재 일본군 및 거류민이 참석해 축제분위기가 넘실대는 상해 훙커우(紅口)공원에서 폭발음이 울렸다. 폭탄을 던진 이는 25세의 대한 청년 윤봉길. 야채상으로 가장한 윤 의사는 이날 일본 국왕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기념행사와 일본이 중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상해점령 경축식을 축하하는 기념식이 시작되자 요인들이 늘어선 단상에 물통형 폭탄을 던졌다. 폭탄은 무대 중앙에 정확히 떨어져 상해 파견군 사령관이자 중국 침략의 원흉인 시라카와 요시노리 대장과 상해 일본인 거류민단장 가와바다 사다지가 즉사했고,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 기치사부로 중장은 한쪽 눈을 잃었다. 일본공사 시게미쓰 마모루는 한쪽 다리를 절단해 훗날 외무대신이 되어 일본 패전 후 미주리함에서 항복문서에 조인할 때는 의족에 의지해야 했다. 제9사단장 우에다 겐키치 중장 등 수 십명이 중상을 입었고 기념식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윤 의사의 상해 의거는 이봉창 의사의 의거(1932년 1월 동경에서 일본왕을 폭살하려다 실패함)와 원심창 의사가 주도한 육삼정 의거(1933년 중국 음식점 육삼정에서 주중 일본공사 아리요시 아키라를 처단하려 했으나 미수에 그침)와 함께 일제 치하 해외에서 벌어진 3대 의거로 손꼽힌다. 윤 의사의 의거는 세계에 알려졌고 중국의 장개석 총통은 “중국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냈다.”고 격찬했다. 윤 의사는 거사 직후 현장에서 일본군에 구타당하고 체포돼 일본 헌병대에서 모진 고문을 받았으며, 그해 5월 25일 상해 파견 일본 군법회의에서 ‘살인 및 살인미수 폭발물위반’이란 죄명으로 단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11월 20일 일본으로 옮겨져 오사카 위수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2월 19일 오전 7시 27분 가나자와 육군형무소 공병 작업장에서 총살형을 받고 25세의 짧은 생을 순국으로 마감했다. 그의 마지막 유언은 “사형은 이미 각오했으므로 하등 말할 바 없다. 사나이로서 해야 할 일을 했으니 떳떳하다”였다. 일본군은 윤 의사의 유해를 일반인들이 도보로 다닐 수 있는 쓰레기 처리장 부근의 좁은 통행로에 암장하고는 신문에 '시신은 화장했다'고 보도했다.

 ▲ 윤봉길 의사(좌)와 상해의거 전날 두 아들에게 남긴 유서(우)ⓒkonas.net


 1919년 3·1운동 이후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독립운동의 거점이 중국으로 옮겨지면서 항일운동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중심으로 중국과 만주 등지에서 활발히 진행되었다. 윤 의사는 23세인 1930년 3월6일 “대장부가 집을 떠날 뜻을 세웠는데 어찌 살아 돌아오리오(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란 내용의 편지를 남기고 부인과 두 아들을 뒤로 한 채 만주로 떠났다. 그러나 평안도 선천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45일간의 옥고를 치른 이후 만주를 거쳐 1931년 8월 상해로 건너가 김구선생이 결성한 의열투쟁조직인 ‘한인애국단'에 가입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칠 뜻을 밝혔다. 1932년 3월 윤 의사는 훙커우의 일본군 무기창고 폭파 계획을 세웠으나 폭탄 제작 과정에서 시일이 지연돼 계획이 중단됐다. 그때 시험했던 도시락과 수통 모양의 폭탄은 한 달 뒤 훙커우 의거에서 사용됐다.

 윤 의사의 상해의거는 침체됐던 독립운동에 활기를 불어넣는 전환점이 되어 꺼져가던 민족혼을 일깨웠고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독립운동의 중심으로 되살려냈다. 장개석 총통은 임시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하고 김구 선생이 교장으로 있는 중국군관학교에 한인장교 훈련반을 설치하게 하여 후일 임시정부 산하의 한국광복군과 조선의용대 창설의 기초를 세우게 하였으며, 1945년 일제 패망때까지 임시정부 활동을 도왔다.

 거사 전날 윤 의사는 두 아들에게 남기는 유서를 김구 선생에게 건넸다.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는 내용이었다. 또한 거사 당일 아침 윤 의사는 “제 시계는 한 시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라며 김구 선생의 낡은 회중시계와 거사를 위해 구입한 자신의 신형 회중시계를 바꾸었다. 김구 선생은 “윤 동지! 지하에서 봅시다.”라고 답했다. 젊디젊은 청년을 사지로 보내야만 했을 김구 선생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그러나 윤봉길, 25살 한 조선 청년이 뿌린 성혈(聖血)은 민족 전체의 의사를 대변해 조선이란 작은 나라의 독립 의지를 만방에 알렸으며 대한민국 탄생의 밑거름이 되었다.

 해방후 중경에서 귀국한 대한민국임시정부는윤 의사의 유해를 수습하여 이봉창·백정기 의사의 유해와 함께 1946년 용산구 효창공원 3의사 묘역에 나란히 안장했다. 비록 윤 의사는 생전에 독립 염원을 이루지 못하고 이국땅에서 형장의 이슬이 됐지만, 그가 그토록 원했던 민족의 독립과 자유, 평화는 이루어져 후손들이 영광을 누리고 있다. 오는 4월 29일, 잠시나마 윤봉길 의사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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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Crusader(crusader)   

    @ 이 나라가...[반공-진리]교육을 햇엇던 나라라고...?? 과연~ 지구상에...그? 누가 믿겟니~???ㅎ (대만애들은 절대~ 못~믿을거같다~!!ㅎㅎㅎ) P.S) "배우면~ 배운대로 하질 않는...불-순종의 AM-민족성~!!"ㅎ

    2021-04-22 오전 10:34:13
    찬성0반대0
  • G-Crusader(crusader)   

    @ 지상-최강의 [인본주의-민족성] 맞제~???ㅎ

    2021-04-22 오전 10:30:28
    찬성0반대0
  • G-Crusader(crusader)   

    @ 카미가제? == 총-폭탄-정신~!!ㅎ @ 인간신-천황? == 인간-유일신-수령~!!ㅎ P.S) 일제의 "천황-돌격대"나...북한-공산당애들의 "수령-돌격대"나...?? 대체~? 뭐가 다른데~???ㅎㅎㅎ Oh~~ 민족이라꼬~???ㅎㅎㅎ

    2021-04-22 오전 10:28:56
    찬성0반대0
  • G-Crusader(crusader)   

    @ 지금도 봐라~?? 종북-매국노들은...?? "한반도-평화?"를 위한...[615연방제-통일]을 지지하잖니~!!ㅎㅎㅎ 대전에서도...대학에서도...교회에서도...???ㅎ 20년간...다~ 반역-615-찬동자들뿐이야~!!ㅎ (유일하게~ MB장로-정권만 빼곤~!!ㅎ)

    2021-04-22 오전 10:26:06
    찬성0반대0
  • G-Crusader(crusader)   

    @ [대한-독립]을 외치기전...??ㅎ 그 수십년전에...[대동아시아-평화?]를 위한...[대동아-연방/한일-합병]이 잇엇단다~!!ㅎㅎㅎ @ [위헌-615-연방제찬동-행위]도 ...바로~ 그것의-100년후~ "재현"이구~!!ㅎㅎㅎ

    2021-04-22 오전 10:24:11
    찬성0반대0
1
    2021.5.16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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