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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기념 시설물 소개」 ⑰ 아픔과 슬픔 간직한 ‘창경궁’

Written by. 대학생 인턴기자 박태랑   입력 : 2021-09-09 오전 9:3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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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추석 연휴에는 고궁을 찾는 시민들이 많다.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19로 제한사항이 많지만 명절은 여전히 마음을 풍성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안정과 평화를 누리게 해주신 선조들의 충의와 위훈을 느낄 수 있는 창경궁을 방문했다. 

 ▲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 ⓒkonas.net

 서울 종로 경복궁에서 혜화동쪽으로 이동하다보면 도심 한가운데 노인과 어린이들이 뛰어오는 터가 있다. 그 뒤로는 소나무가 많은 조선시대 궁궐이 자리 잡고 있고 기와지붕을 그늘삼아 많은 사람들이 쉬며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바로 1418년 왕위에 오른 세종이 생존한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해 지은 궁인 창경궁(昌慶宮)이다. 창경궁에서 지낸 왕은 태종 말고도 배우 이병헌이 배역을 맡았던 광해군이 있다.

 창경궁의 당초 이름은 수강궁(壽康宮)으로, 세종이 부왕 태종의 만수무강과 평안을 바란다는 뜻으로 지었다고 전해진다. 태종 사후엔 한동안 사용되지 않다가 제9대 성종이 세조의 왕비이자 할머니인 정희왕후, 생모이자 대비인 소혜황후, 제8대 예종의 계비 안순왕후를 모시기 위해 1483~1484년 사이 대대적으로 궁역을 확장했고, 창성하고 경사스럽다는 뜻의 '창경(昌慶)'으로 고쳐지었다.

 창경궁은 아픔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지난 1592년 임진왜란으로 도성 안의 궁궐이 불타 전쟁이 끝나고 궁궐 복구가 진행됐지만, 인조가 왕위에 오른 2년째인 1624년 이괄의 난으로 또다시 소멸됐다. 그 후에도 크고 작은 화재와 수리가 이어지고 순조30년인 1830년 큰 화재가 발생해 환경전, 경춘전, 함인정, 빈양문, 숭문당 등 많은 전각이 재로 변했다. 

 창경궁의 복구는 순조 33년인 1833년에 이뤄지는데 이때의 공사는 정조 14년인 1790년에 소실됐던 통명전을 비롯해 환경전과 경춘전, 숭문당, 함인정, 양화당, 영춘헌, 오행각 등을 중건하는 것으로, 이듬해 마무리됐다. 현재 남아 있는 내전의 전각은 대부분 이때 세워진 것들이다.

 ▲ 창경궁 명정전 서쪽에 있는 정자. 함인정. ⓒkonas.net

 창경궁은 왜란과 민란을 겪으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과 같이 역사를 겪어왔다. 1418년에 상왕궁인 수강궁이 창건된 후 성종 14년인 1483년에 헐고 창경궁을 새로 지었으며, 선조 25년인 1592년 불에 타 광해군 8년인 1616년에 중건했다. 이후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 40여 년 동안 창경원(昌慶苑)이란 이름으로 불렸으며, 1986년 궁궐 복원에 따라 지금의 창경궁으로 환원됐다.

 이러한 아픔은 임진왜란(1592) 당시의 국력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서 참여한 관군은 3만 명 정도에 불과했으며 추가로 5만 명을 동원했고, 의병 4만 명이 참여했다고 전해진다. 반면, 일본은 참전 전투부대 20만 명, 비참전 예비대 45만 명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알려지며 수군의 차이도 조선의 약 20배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창경궁에는 왕과 왕비가 거주하던 궁궐까지 내놓고 도망갈 수밖에 없었던 아픔과, 국력을 키우지 못하고 주변국의 눈치를 봐야했던 조선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 창경궁 내 울창한 숲. ⓒkonas.net

 창경궁에서 만난 한 청년, 북촌한옥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노모 씨(27)는 “집 근처의 작은 궁이자 관광지로만 생각했었지만 최근 관심을 갖고 알아보니 마음속 슬픔이 있는 궁이었다”면서 “당시 왕과 왕비가 머물렀던 궁이 국력이 쇠약해 왜란과 민란을 겪으며 지금의 모습만 남아 있다는 게 많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최근 해병대에서 전역하고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가 앞으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국력을 강화해야 하며, 휴전국가인 만큼 군대의 복지도 중요하지만 군대다운 군대로 거듭났으면 한다”면서 “앞으로도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국가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청년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많은 시민들이 가족.지인들과 창경궁을 관람하고 있다. ⓒkonas.net


 고궁은 우리 민족의 문화와 정신을 집약해 후대에 전달하는 매개체다. 추석을 맞으며 창경궁을 방문해 국력의 흥망성쇠에 따라 부침을 겪어온 우리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와 문화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자.(konas)

향군 대학생 기자단 박태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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