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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독립운동가...을사늑약 부당함 알린 홍만식 등 4인 선정

죽음으로 민족정신을 지킨 ‘홍만식·이상철·김봉학·이건석 선생’
Written by. 이숙경   입력 : 2021-10-29 오후 2:2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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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훈처는 11월의 독립운동가로 홍만식·이상철·김봉학·이건석 선생을 선정했다고 29일 밝혔다.

 네 분의 선생은 일제가 군대를 동원하고 고종을 협박하여 강압적으로 1905년 11월 17일에 을사늑약(乙巳勒約)을 체결하자 이에 통분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어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렸다.

 홍만식 선생은 영의정 홍순목의 아들이며 갑신정변의 주역인 홍영식의 친형으로 갑신정변 이후 20여 년간 여주의 산골에서 세상을 등지고 살다가,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통분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며 의관을 차려입고 부친의 묘소에 사별 인사를 드리고 독약을 삼켜 순국으로 일생을 마감했다.

 당시 ‘매천야록’에는 “홍만식이 순국하자 당시 사람들이 그를 더욱 훌륭하게 여기며 슬퍼했다”라고 기록됐다. 

 이상철 선생은 1904년에 학무행정을 담당했던 학부 주사로 임용되고 시사(時事)에 대해 비분강개를 느끼고 있다가,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분통함에 밤늦게까지 통곡을 그치지 않았고, 민영환 선생 등의 자결 소식이 들려오자 뒤를 이어 약을 먹고 30세의 나이로 자결 순국했다. 

 김봉학 선생은 평양에 있는 군대에 입대하여 평양진위대에서 근무하다가 서울로 상경하여 징상대(徵上隊) 상등병으로 복무했다.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선생은 군인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려고 동지들과 모의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일이 누설되었고 거사가 실패로 돌아간 것을 알고 자결 순국했다.

 이건석 선생은 1880년부터 1905년까지 고종에게 상소를 올리기 위한 소청(疏廳)을 여러 차례 열어 반개화(反開化)·반일(反日)의 국권수호운동을 벌였다.

 선생은 일본군사령부에 체포된 후 심한 고문을 받았으며 “을사늑약을 반대하는 상소를 포기하면 석방시켜 주겠다”라는 회유성 제안을 했으나, 이에 거절하자 6개월이나 죄목 없이 감금했다. 유생들이 연명으로 석방을 탄원했으나 끝내 출옥하지 못하고 옥중에서 순국했다.

 이처럼 불의에 굴하지 않고 결기를 보여준 선생들의 자결 순국은 우리 민족의 조국 광복을 위한 항일 투쟁의 불씨가 됐다.

 정부에서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홍만식 선생, 이상철 선생과 김봉학 선생에게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그리고 이건석 선생에게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각각 추서했다.(konas)

코나스 이숙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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