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호국인물 故 김문성 해병중위 현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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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현양식에는 김석원 관장을 비롯, 김익창 유족대표와 보훈처 관계관, 해병3기 간부후보생 동기, 참전동지회장, 해병대전우회 대표와 해병대 사령부 우경하 장군을 비롯한 현역 해병장병 등이 다수 참석해 고인의 나라사랑정신을 기리고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김문성 해병대 중위는 6·25 전쟁 당시 무적해병의 신화를 창조했던 도솔산 전투의 영웅이다.
김 중위는 1930년 제주도 서귀포에서 출생했다. 1950년 8월 해병간부후보 3기로 입대하여 6·25 전쟁이 한창이던 51년 3월 소위로 임관했으며, 이후 해병 제1연대 3대대 9중대 2소대장으로 중동부 전선 도솔산 전투에 참전했다.
해병 제1연대는 51년 6월 4일 강원도 양구 지역에 위치한 도솔산에서 인민군 최정예 12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당시 도솔산은 중동부전선의 핵심 요충지로서 이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해병대는 물론 좌우에 인접한 아군이 한 걸음도 전진할 수 없는 전략상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북한군의 저항은 완강했다.
김문성 소대장은 도솔산 지구 탈환작전에서 도솔산(1,175고지) 24개 목표 중 가장 험준한 지점인 제 13목표에 투입되었다. 적은 난공불락의 지형적 이점을 이용하여 자동화기로 집중 공격해 왔고, 최선두에서 지휘하며 적진지 50미터 지점까지 접근했다.
그러나 적의 집중 포화에 의해 정면공격이 불가함을 깨닫고 우회 공격을 개시하던 공격 개시 5일째인 6월 8일 목표를 눈앞에 두고 적탄에 피탄 되어 장렬히 전사하고 말았다.
소대장의 전사 장면을 목격한 소대원들은 격분하여 총돌격을 감행함으로써 마침내 난공불락의 요새인 도솔산 목표지점을 완전히 탈환하였으니, 작전개시 16일만의 일이었으며, 또 하나 무적 해병의 신화를 창조한 것이다.
정부는 고인의 살신성인 정신과 공훈을 높이 기려 1계급 특진과 함께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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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관장은 이어 "도솔산 전투가 6·25 전사 중 특별한 이유는 미 해병대마저도 탈취하지 못한 지점을 아군 해병대가 작전을 전개하여 탈환함으로서 무적해병의 신화를 창조했다" 며 "자유와 평화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지키려고 하는 의지가 있을 때 지켜지는 것이다. 호국의 달 6월을 맞이하여 김중위님과 같이 나라를 위한 살신성인의 정신을 계승하고 더욱 가슴깊이 새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 날 현양식에 참석한 당시 김중위와 같은 9중대 1소대장으로 전투에 참전한 석태진(경기 파주거주) 참전용사는 "김중위는 수재에다 키도 크고 인물도 훤칠한 남자중의 남자로 책임감이 누구보다도 투철하고 가장 부하를 아낀, 항상 선두에서 부하를 독려하며 임무를 수행한, 도덕성과 예의바른 청년장교였다" 고 말하면서 "작전을 벌이다 그가 전사하자 부하들과 더불어 통분을 금치 못한 채 후방에 안치해놓고 돌격을 감행했다" 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면서 그는 "만약 김중위가 생존했더라면 정말로 나라를 위해서 더 큰 일을 했을 재목"이라며 안타까운 표정을 얼굴에 감추지 않았다.
이날 현양식장은 박유철 국가보훈처장을 비롯, 김명균 해병대 사령관, 김명환 해병대전우회장, 송창우 재경 제주도민회장 등 각계에서 답지한 화환이 김중위의 영정을 중심으로 배치돼 나라를 위해 꽃다운 나이에 산화한 김중위의 높은 뜻을 기리는 듯 했다.(Ko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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