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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겐 불효자로 남았지만, 역사에는 애국자로 남고 싶다"

[창간 2주년 특집 인터뷰 - 탈북자 영화감독 정성산]
Written by. 윤경원   입력 : 2005-11-11 오후 2: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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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나스>가 창간 2주년 특집으로 기획한 인터뷰 시리즈- 지난 7일 북한민주화동맹 위원장 황장엽씨에 이어 이번에는 탈북자 출신 영화감독 정성산씨를 만났다. 지난 9일 서울 남산 근처의 한 카페에서 본지 기자와 2시간 동안 인터뷰를 한 정씨는 평양에서, 모스크바에서 그리고 탈북 후 서울에서 영화를 공부했던 영화 전문가다. 그는 문화·예술인 답게 "(보수단체들이) 길거리에 나와 투쟁만 하는 방식만으로는 김정일을 이길 수 없다"며 "김정일이 두려워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문화·예술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주민 해방'이라는 역사적 과제에 '문화적 파워'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하며 현재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참상을 소재로 한 뮤지컬 '요덕 스토리'를 준비하느라 눈코 뜰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편집자>

 지난 10월 18일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 나라의 좌경화를 우려하는 각계의 사회원로들의 '시국선언' 대회가 열리는 자리였다. 이날 행사의 마지막 연사로 나선 한 낯선 젊은이의 기막힌 사연이 500여석의 좌중을 눈물바다에 빠뜨렸다. 냉정을 유지해야하는 사회자도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다. 이 젊은 연사 역시 울먹이고 있었다.

▲정성산(37) 감독이 9일 기자와 만나 인터뷰 하고 있다.ⓒkonas.net

 그의 이름은 정성산(37). 탈북자 출신 영화감독이다. 지난 1995년 탈북해 남한으로 입국한 그는 최근 부모님이 자신 때문에 양강도 정치범 수용소에서 돌팔매질로 공개 처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머리에 피를 흘리며 죽어가던 아버지는 푸른 하늘만 바라보셨다고 합니다." 이 대목을 읽어 내려가던 정 감독은 울컥 쏟아지는 눈물 때문에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부모에게는 불효자로 남았지만 역사에는 애국자로 남고 싶다"며 요덕 정치범수용소를 소재로 한 뮤지컬 '요덕 스토리'의 제작 사실을 처음으로 알렸다. 이메일과 핸드폰을 통해 "죽이겠다"는 협박이 오지만 굴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밝혔다. 눈물을 훔치던 청중들은 정 감독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으며 "힘내라", "도와주겠다"는 격려의 외침들이 그의 양쪽 어깨위로 쏟아졌다.

 그는 그 뒤로 계속된 자유진영 집회에 참여해 북한인권 해방의 절실함을 외쳤고, 언론사들의 집중 주목을 받아 지금까지 수 차례의 인터뷰를 가져 '유명인사'가 됐다. 그런 정 감독을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밀려오는 언론 인터뷰와 강연·칼럼기고 요청, 막바지로 치닫는 뮤지컬 기획작업 등 몸이 두 개라도 모자를 지경. 몇 번을 거듭한 전화통화를 한 끝에 9일 기자와 어렵사리 만난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지만, 협박은 더 많아졌다"며 털털하게 웃었다.

 정씨는 평양 연극영화대를 졸업하고 모스크바 국립영화대에 유학까지 한 영화학도. 인민군에 복무 중 한국 방송을 듣다가 발각돼 군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가 모진 고초를 겪다 탈북해 1995년 한국에 왔다. 남한에 와서도 영화에 대한 꿈을 버릴 수 없었던 그는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했고, 지금까지 영화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실미도'등을 각색하는 한편, 최근에는 자신이 감독한 '빨간 산타'라는 영화도 개봉을 앞두고 있다.

-뮤지컬 '요덕 스토리'에 대한 소식이 많이 알려졌다. 주위의 반응은 어떤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적어도 이 일을 하면서 외롭지는 않게 됐다.  그러나 전보다 더 많은 협박이 오고 있다. <조선일보>에 처음 기사가 나간 날에는 정말 무서웠다. 새벽 6시부터 핸드폰 벨이 울리기 시작하더니 '죽여버린다', '명대로 잘사나 보자', '너 같은 놈들이 있으니 통일이 안 된다' 등등 험한 내용의 전화가 연이어 걸려왔다. 안 될 것 같아 전화기 전원을 꺼놨다 밤에 켜봤더니 '콜키퍼'(핸드폰 전원을 끈 상태에서 걸려온 전화를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에 게재된 수신 전화번호가 300∼400건이나 됐다.

▲탈북자 출신 영화감독 정성산씨.ⓒkonas.net

-목숨까지 위협하는데, 위축되지는 않은가?

 지금도 협박전화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뜻 있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관심과 협박이 오는 것 아니겠는가. 종종 응원의 전화도 오기도 한다. 목숨을 걸 정도로 가치 있는 일이라면 꼭 성공해야 한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처럼 나 혼자서 끝까지 해내겠다.

-부모님의 공개처형으로 북한인권 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인가?

 복합적으로 일어났다. 원래 나는 민족주의자로, 김대중 정권의 '햇빛정책'을 옹호했었다. 그러나 점점 정체성이 의심되기 시작했고, 노무현 정권 들어서 입만 열면 민족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정작 북한 주민들의 인권 참상을 외면하는 위선을 목격하면서 생각을 고치게 됐다. 그러던 중 공개처형으로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됐고, '문화의 힘'으로 북한의 인권 현실을 알려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작품 소재를 '요덕 수용소'로 한 이유는?

 북한에서 '요덕'라는 단어는 공포의 대명사이다. '야, 너 요덕 갈래?'라는 말은 정말 무서운 협박이다. '요덕'은 관리소(정치범 수용소)의 상징이며, 북한 주민들은 그곳에 들어가면 다시는 못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요덕 수용소는 수감인원이 제일 많고 가장 잔악하기로 소문난 곳이다. 때문에 그곳에서 근무를 하는 국가보위부원들은 승진이 빠르다. 그만큼 악명이 높다.

-뮤지컬을 통해 북한인권의 참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대중성이 중요할 것 같은데, 출연배우들은 누구인가?

 아직 결정되지 안았다. 애초엔 대중화를 목표로 제작에 들어갔고 물망에 오르던 스타들이 몇 명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뮤지컬 제작 소식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자 출연하기를 꺼려하고 있다. 우리 스태프(staff)끼리는 '꼭 유명 스타일 필요 있냐'고 자조하고 있는데, 앞으로 두고봐야 할 것 같다.

-요덕 수용소에 대한 자료수집은 어떻게 했나?

 그곳에서 수감생활을 했던 분들과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나도 북한에 있을 때 군(軍)수용소 생활을 2∼3개월 정도 했기 때문에 그곳에서 자행되고 있는 내용이 낯설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때 내가 있었던 수용소와는 비교도 안 된다는 걸 느꼈다. 정말 살벌하더라. 완전히 수감자들을 죽이려고 작정한 곳 같더라.

-감독님이 들었던 증언 중에 생각나는 것 몇 개만 소개하신다면….

 수용소에서 근무하는 보위대의 내무반에 딱 들어가면 '반(反)혁명론자들은 3대를 멸족한다', '도주자는 그 자리에서 사살하라'라는 김정일의 명령이 붙어있다. 13년 동안 근무를 해야하는 보위대들은 빨리 사회에 나가고 싶어 특진거리를 찾는다. 따라서, 죄수 몇 명을 불러 수용소 철조망을 넘어가는 시늉을 하라고 시키고 이들을 향해 총을 쏴 죽인다. 죄수들도 철조망에 가면 죽는다는 것을 알지만 시키는 대로 해야할 수밖에 없다. 결국 총살시킨 보위대는 일찍 제대를 해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특진을 누리게 된다.

 한 번은 보위대가 얼굴 인상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한 어린아이를 시시때때로 때렸다. 그 아이는 맞지 않기 위해 일부러 인상을 고쳐 웃고 다녔고, 이를 본 보위대는 '비꼰다'는 이유로 그 아이를 때려 죽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죄수들을 불러다 태권도 연습을 하거나, 얼굴이 반반한 여자를 강간해 병신을 만들어 놓는 등 수용소에서 김정일 정권의 만행은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이다.

-'요덕 스토리'의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신다면?

 수용소 내의 이같은 만행들이 기본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것만 넣으면 작품이 재미가 없어진다. 스토리는 이렇다. 평양에서 공훈무용수 출신의 여성이 요덕 수용소에 들어가 경비대장에게 강간을 당하는 등 고초를 겪다 그와 사랑하게 되는 내용이다. 주제는 사랑과 용서이다.

-평양대학 연극영화과를 나오고 러시아로 유학까지 다녀오는 등 유복하게 자란 것으로 알고 있고 있는데, 탈북한 배경이 궁금하다.

 나는 2남1녀 중 늦둥이 막내로 태어났고, 어렸을 적 소아마비에 걸렸다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어 가족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자랐다. 아버지가 중앙당 간부였던 탓에 평양에서 200평 아파트에 사는 등 유복하게 자랐고, 그런 나에게 세상은 '만만한' 곳이었다. 북한의 유일한 예능고등학교인 금성고등중학교와 평양대학 연극영화과를 입학해 당 간부 자녀들과 어울리며 '사고'를 치고 다녀도 부모의 '빽'으로 모두 풀려 나오곤 했으니 말이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능력이 출중함에도 출세길이 번번이 막혀, 알아보니 할아버지가 한국전쟁 때 행실에 문제가 있었다. 도와주자는 생각으로 국가보안부문서관리 차장의 아들과 함께 조총련에 수 백 달러를 보내 문서를 조작했다. 빨간 줄 하나 긋고 '영웅이었음'이라고 수정하면 인생이 180도 달라지는 마당이었다. 그러나 이 공문서 위조 시도는 발각됐고, 당에서 요주의 인물로 찍혔다. 그러다 94년 김일성이 갑작스레 사망해 비상사태가 선포됐고 나는 군대로 소환됐다. 그 곳에서 우연히 남한 라디오 방송을 듣다가 잠이 들었고, 이를 발견한 동료가 그 채널을 그대로 고정해 상부해 보고했다. 보통 고위층 자식이 남한방송을 듣다 걸리면 '주의'를 받는 정도로 그치곤 했었다.  그러나 당시는 김일성이 사망한 시기. 내부 단속차원에서 내가 '시범 케이스'로 걸린 것이다. 이 사실은 군 보위부, 국가보안부, 중앙당까지 알려졌고, 사상에 문제가 있는 인물로 낙인 찍혀 황해도에 있는 군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됐고, 13년형을 선고받았다.

-보위부와 정치범 수용소에서의 생활은 어땠나?

 보위부 사단에서 조사를 받을 땐 매일같이 보통 헌병들의 주먹과 발로 정신 없이 맞았다. 그러나 군 범법자를 수용하는 서부노동연대로 갔을 땐 이보다 더 악질적으로 폭행을 당했다. 기억도 없는 어렸을 적 잘못을 만들어내야 하고, 김일성 배지를 떨어트린 것, 여자를 겁탈한 것 등등 없는 죄를 만들어내야 했다. 이 곳의 보위부원들은 때리는 것도 귀찮아 참나무 꼬챙이를 손톱에 끼우고 대답이 맘에 안들 때마다 몽둥이로 내리쳤는데, 마치 전기고문을 당하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보위부원들은 또, 총에 달린 긴 쇠꼬챙이로 수감자들의 머리를 수직으로 내리쳤는데, 이 때문에 우리들의 머리통은 뻥뻥 뚫리곤 했었다. 밥도 군견(軍犬)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먹었는데 그것마저도 힘센 수감자들 차지가 먼저였다. 또, 수감자들끼리 격투를 시켜 지는 사람들은 군견 우리에 보내져 몸을 심하게 물리곤 했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인간이 아니었다. 

▲정 감독은 문화·예술의 힘으로 북한주민을 해방시키겠다는 생각으로 김정일 독재정권의 비인간적 만행을 고발하는 뮤지컬 '요덕 스토리'를 준비하고 있다.ⓒkonas.net

-어떻게 탈출했나?

 재판을 받고 수용소로 돌아오던 중 우리를 싣고 가던 호송차가 산길에서 구르는 사고가 났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른 사람들은 피를 흘리고 신음하고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나는 다친 데 하나 없이 수갑이 풀려 있었다. 그 길로 평양에 있는 집으로 줄행랑을 쳤다. 그러나 이미 집은 나 때문에 이미 초토화된 상태였고, 부모님이 양강도 탄광촌으로 추방됐다. 나중에 안 일인데, 당시 같이 어울려 놀았던 당 간부 자녀들이 거의 다 나 같은 처지에 놓였었다. 나는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 양강도로 향하다 내 얼굴이 포함된 거리에 붙은 수배자 명단과 헌병과 마주쳐 중국으로 도주했다. 압록강을 건너는 과정에서 북한병의 총을 발목에 맞기도 했다. 그곳에서 운 좋게 좋은 사람을 만나 소련, 베트남, 홍콩을 거쳐 간신히 남한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노동당 간부의 자녀로써, 김정일에 대한 특별한 반감은 없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중국으로 탈출해 1주일을 있어보니 김정일 욕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너무나 허망됐다. 나는 나름대로 주체철학과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론에 심취했었다. 심취하지 않으면 문학.문예 작품이 나올 수가 없다.(그는 대학시절과 군시절에 예술단에서 문예활동을 벌였었다.) 중국에 오니 욕이 터져 나왔다. 너무나 먹을 게 많고 욕을 해도 잡아가는 사람도 없었다. 내가 가졌던 사상과 배운 것은 허황된 것이었다는 생각을 하게됐다.

-탈북자 입장에서 남한 정권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김대중 정부 들어서부터 분위기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한국에 입국할 당시 KBS 사회교육방송(대북방송)에서 일을 했고, 3년 동안 '남과북 하나로'라는 라디오프로그램 MC를 한 적이 있었다. 당시 청취율도 높고 인기가 좋았는데, 남북정상회담 당시 나는 '정상의 만남은 나쁘다고 보지는 않는데, 이것이 쇼인지 아님 우리민족에게 정말 가치 있는 일인지는 두고봐야 하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일주일 뒤 잘리더라. 당시 KBS 간부가 청와대쪽에서 탈북자들을 방송에 기용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말해줬다. 당시 정권은 사회교육방송을 거의 폐지시켰다. 북한 사람들에게 사회교육방송은 굉장히 의미가 있다. 이걸 안 들어본 사람이 없을 정도이고, 북한 독재를 이기고 북한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한 과도기에서 굉장히 필요한 방송이다. 이후 갑자기 좌익세력들이 나오고 공공연히 친북 구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당시 정부의 정체성이 의심되던 차에 노무현씨가 대통령이 됐다. 노 대통령은 그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기대는 무너졌다. UN북한인권 결의안 기권과 국가보안법 폐지시도, 송두율 사건, 황장엽씨의 대외활동을 막는 것 등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실망하기 시작했고, 저건 아니다 싶었다.

-최근 자유진영 집회에 나와 연설을 하셨다.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나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냉정히 얘기하자면 뮤지컬 때문에 하게 된 것이지만, 결정적으로 나서야되겠다는 계기는 '강정구 사건' 때문이다. 이 정권이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뮤지컬은 조용히 터뜨리려고 했다. 내 이름은 뒤로 숨기고, 자연스럽게 알리려고 했는데 최근 일련의 사건들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일찍 나서게 된 것이다.

-김정일의 대남 공작이 가속화되고 있다. 어떻게 보는가?

 지금 북한의 전략을 꿰뚫어볼 필요가 있다. 탈북자들이 다 공감하는 것인데, 김정일이 내놓고 있는 '우리민족끼리'라는 대남 전략은 결국은 연방제를 최종목표로 하는 고도의 전략이며, 김정일 정권 유지에 근간이 되는 것이다. 예전 북한의 대남전선전략은 남한의 혁명세력에 의한 인민봉기가 일어나고 여기에 적절하게 북한이 도발을 하는 것이었는데, 이런 효과가 별로 없다는 것을 알았다. 김대중 정부가 집권하고 나서 현금이 들어오게 됐고 돈맛을 알게된 김정일은 '우리민족끼리'라는 구호를 내걸면서 남한의 좌·우익을 흔들고 전체적으로 국력을 떨어뜨리는 재미를 보고 있다.

 보수 운동의 메카니즘이 달라져야 한다는 정성산 감독. 그는 길거리에 나와 투쟁만 하는 방식만으로는 김정일을 이길 수 없다고 충고한다. 김정일이 두려워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문화·예술의 힘'이라는 것. '북한 주민 해방'이라는 역사적 과제에 '문화적 파워'를 모을 것으로 기대되는 뮤지컬 '요덕 스토리'가 관객과의 만남을 목전에 두고 있다.(konas)

 윤경원 객원기자 kwiat79@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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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라하(greenbamboo)   

    정성산감독의 말만 들어도 등이 오싹하네요. 정작 북한 주민들의 인권 참상을 외면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실상을 더더욱 알려졌음하는 바램이네요. 김정일의 독재정권의 만행을 그린 뮤직컬이 성공하길 빕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5-11-14 오전 9:4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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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기동(lkd919)   

    힘내세요~</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5-11-13 오후 6: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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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x-file    수정

    강철환씨를 주인공으로 쓰면 경험을 살려 실감나는 연기를 펼 칠텐데....어설픈 배우, 문성근이나 명계남 같은.. 이런 인간들 보다 훨 나을거요. 고려해 보세요.</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5-11-12 오후 1:48:08
    찬성0반대0
  • foodle    수정

    요덕스토리가 공전의 히트작품이 되길 기대합니다. 이 땅의 맹목적 친북주의자들에게 북한의 진실을 알리는 계기가 되길 기대합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5-11-12 오전 9:59:39
    찬성0반대0
  • 태서니(sunny67kr)   

    북한바로알기와 북한주민인권개선에 이번 뮤지컬이 작은 디딤돌이 되길 바랍니다.저도 보러갈께요.</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5-11-12 오전 8:34:52
    찬성0반대0
    2026.10.9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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