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러시아 대선과 푸틴의 선택
2008년 3월 임기가 끝나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올해 자신의 집권 마지막 해를 맞아 두 가지 중요한 과제를 안고 있다. 먼저 2000년 초 권좌에 오른 이래 ‘강력한 국가 재건과 강대국 지위의 회복’을 겨냥했던 자신의 국정을 잘 마무리하는 일이다. 둘째, 국내적으로는 중앙 권력기반을 조기에 굳건히 하고 대외적으로 지구촌의 세력균형 게임에서 뒤처
지지 않을 역량 있는 후계자를 지명하는 일이다. 지난 7년 집권기 동안 자신이 성취해 놓은 정국 안정과 경제적 역동성이 뒷받침해준다고 하더라도 그 어느 것도 푸틴에게 결코 쉽지만은 않은 과업이다.
2007년 새해 러시아는 선거 정국에 돌입할 태세다. 12월 초에 국가두마(하원) 선거가 예정되어 있고, 이어 2008년 3월 2일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1년 내내 온 나라가 대대적인 선거전에 휩싸일 것임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푸틴은 2005년 11월 개각을 통해 이미 크렘린의 후계 구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당시 대통령 행정실장이었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Dmitri Medvedev)를 제1부총리에, 국방부 장관 세르게이 이바노프(Sergei Ivanov)를 부총리직에 임명하였던 것이다. 이는 미하일 프라드코프 총리, 알렉산드르 주코프 부총리 쌍두체제에서 2명의 부총리가 추가 임명됨으로써 정부 차원의 업무를 재조정하는 계기도 되었다.
2006년에 들어와서도 푸틴과 그의 측근들의 정권 연장을 위한 판짜기는 계속되었다. 제1야당인 공산당을 견제할 목적으로 중도좌파 정당들의 통합 신당 창당을 지원했다. 국가두마의 선거법도 개정하였다. 의석 과반수인 225석을 지역구에서 선출하던 이전의 체제를 바꿔 정당 지지율에 따른 비례대표제로만 의원 모두를 선출토록 하였다. 그 결과 새로운 선거법 환경에서 치르는 올 12월 총선에서 여당 통합러시아당은 별 어려움 없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할 수 있을 듯하다. 반면, 군소 정당들은 국가두마에 자리 잡는 것마저도 힘들게 되었다.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이 미디어 계열사를 통해 ‘이즈베스티야’ ‘코메르산트’ ‘프라우다’ 등을 인수하는 움직임도 정권 재창출을 위한 크렘린 선거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현 시점에서 ‘포스트-푸틴 러시아’를 조망하면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시나리오로는 공론화되어있는 바대로 이바노프와 메드베데프, 둘 중의 하나를 지명하거나, 혹은 제3의 인물을 등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크렘린 측이 수용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서면 푸틴은 - 혹은 그 측근들이- 대통령직을 연장하려고 할 수도 있다. 다만 현 정황으
로선 중임제만을 허용하는 헌법을 개정하면서까지 현임 대통령의 임기를 연장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러시아 일각에서는 국민 스스로가 차기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도록 푸틴이 사전에 지명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옐친의 일방적인 후계자 지명으로 2000년 대선에서 자유선거가 유명무실했던 지난날의 비민주적인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마지막 한 해를 남기고 있는 푸틴을 지지하는 국민 절반은 그가 지명할 후계자를 뽑겠노라 하고 있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남다른 지도력을 토대로 정국의 안정과 경제의 회복을 이뤘던 푸틴과 비슷한 인물을 내심 기대하고 있다. 차기 대통령이 국가 경제성장을 이어가면서 자신들 삶의 질까지도 크게 개선해주기를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푸틴이 누구를 내세울 것인가 문제가 집권 엘리트층은 물론 일반 국민 사이에도 최대 관심사가 되고 있다.
러시아 여론이 주로 거론하는 대통령 후보들 중 먼저 러시아 최초의 민간인 국방장관이자, 재작년 11월부터는 방산 업계의 구조조정은 물론 검찰과 경찰 개혁까지 관장해온 세르게이 이바노프 부총리를 생각해볼 수 있다. 구소련 시절부터 구(舊) KGB 동지로서 또한 집권 후에는 7년 내내 푸틴과 호흡을 함께하면서 열린 식견과 경륜을 쌓아왔다. 크렘린 파벌 구도에 매이지 않은 그는 부정부패에도 연루되지 않은 비교적 청렴한 인물로 알려진다. 지도자로서의 관리 역량과 결단력에 대해선 견해가 엇갈리곤 있으나 보수적인 군부를 상대로 푸틴의 군 개혁 의지를 펼침으로써 나름대로 성과를 거둬왔다.
그러나 이제 국가 지도자로서 이바노프가 경영 마인드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은 심한 불황을 겪고 있는 러시아 항공산업의 흥망과 직결되어 있는 듯하다. 수년째 푸틴이 부심해온 항공산업의 존폐 위기는 중국이나 인도 등에 대한 전투기 수출 물량이 줄어들면서 최근 더욱 악화되고 있다. 급기야 푸틴은 2006년 2월 21일 군수용과 민수용 항공기 제작사를 모두 통합하는 거대 국영항공사(United Aircraft Construction Corp.)를 세우는 대통령령에 서명하였다. 이는 한 해30억 달러 상당의 매출액을 거두는 민․군 항공기 업계를 모두 아우르는 대형 사업이기도 하다. 이제 항공산업을 포함한 방산 업계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은 군 개혁의 가속화와 함께 2007년 이바노프가 관장해야 할 현안 중의 현안이 되었다.
그렇다면 40대 초반의 변호사 출신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수석부총리는 어떠한가? 최고 수준의 전문가로서 푸틴에게 인정받고 있는 메드베데프는 이미 국가 경제와 행정에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다. 특히 그는 푸틴의 측근 그룹에 대한 견제의 중심에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즉, 푸틴의 최측근인 이고르 세틴, 검찰총장 블라디미르 우스티노프 분파와 쌍트페테르부르그 출신 진보세력 간의 균형과 안정을 책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결함이라면 너무 젊고, 대중적인 이미지가 부족하다는 정도일 것이다.
푸틴은 2005년 10월 출범한 최우선 국가사업 시행 위원회(Council for Implementing Priority National Projects)의 부위원장 직에 메드베데프를 앉힘으로써 그가 대중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 주었다. 더욱이 푸틴은 새해 정책 중점을 사회 복지의 개선에 두면서, 사회 인프라의 확충과 빈곤층을 위한 의료시설 개선, 출산 장려를 위한 육아보조금의 증액과 주택의 지원, 교사와 공무원 임금 인상 등에 4조2천7백억 루블(170조원)의 예산을 배정하였다. 그간 긴축재정을 유지했던 것과는 달리 40%나 대폭 늘어난 복지 재정을 효과적으로 운용하기만 하면 메드베데프에 대한 러시아 대중의 평가는 새로워질 것이다.
오늘날 러시아 정부는 수많은 현안 과업들에 직면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사상 최대의 예산이 배정된 복지정책과 존폐 위기에 와있는 항공업계의 구조조정은 푸틴 정부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만약 이 두 가지 과업이 원만한 성공을 거둘 경우 푸틴은 두 차례 집권기를 잘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이며, 동시에 올바른 차기 권력자를 선택하기 위
해서도 합리적인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푸틴은 현 정권의 성패를 가늠할 최대 국정과제를 두 측근에게 각기 맡기고 시험을 치르게 하는 한편, 가장 신임하는 후계자 후보들의 손에 ‘푸틴정부’의 마무리 과정을 맡긴 셈이 되었다.
지금으로선 과연 누가 2008년 러시아의 대통령이 될 것인가 장담하기엔 때가 이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푸틴이 하야한다고 하더라도 그의 정치적 후광은 지속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2000년 후계자의 정권계승과 함께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진 보리스 옐친과는 구별될 것이다. 푸틴은 실세 총리나 집권당의 대표로서 국정에 직접 관여하거나 가스프롬의 회장직에서 대내외적으로 에너지 파워를 누릴 가능성이 크다. 혹은 실무형 대통령 후임자를 통해 자신 정책의 연속성을 보장하고 4년 후 권좌에 다시 당당하게 복귀할 수도 있다. 그 어떤 대안이 현실화되던지 간에 2007년 선거 정국은 러시아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대한 기회가 될 것이다.(konas) (출처:KIDA)
심경욱(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shim@kida.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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