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北테러지원국 해제'의 정책적 함정
지난 10월 11일 미국 부시행정부의 ‘북한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 조치는 북핵 당사자인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정부, 그리고 미국 내부에도 엄청난 충격을 준 것으로 보인다.
韓美 양국이 충분히 조율을 거쳤고, 2차 핵실험까지 위협하는 북한을 6자회담 프로세스에 잔류시키기 위해 부시행정부가 마지못해 취한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이해되고 있지만, 美 대선 이후 미국의 한반도 정책 전반이 크게 동요할 징조를 보이고 있는 지금, 그 여파(餘波)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 없다. 북핵문제 해결 노력에 약(藥)이 될지 독(毒)이 될지 실로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美 대선에서 민주당 집권 가능성이 높고, 이에 따라 대선 후 새로운 ‘북핵 정책’을 모색하기 위한 키신저ㆍ페리 등 현실주의 외교전문가들의 방북 추진설이 민간 싱크탱크(NCAFP: 전미외교정책협의회) 중심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경우에 따라선 북핵 문제에 있어 새로운 ‘빅딜’ 식의 해법, 예컨대 북한 비핵화를 전제로 북한에 파격적인 정치ㆍ안보ㆍ경제적 체제보장과 지원을 미국이 시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때마침 미국의 대표적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Heritage Foundation)의 선임연구원 브루스 클링너(Bruce Klingner)가 ‘북한 테러지원국 해제’가 갖는 정책적 함정(陷穽)을 조목조목 분석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에 그의 칼럼을 편역, 소개한다.
* * *
부시행정부는 10월 11일, 북한이 6자회담 북핵 검증절차를 수용하는 조건으로, 테러지원국 명단으로부터 북한을 삭제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美 국무성은 우라늄농축프로그램과 핵확산 행위까지 포함, 북한에 대한 모든 검증 기준이 충족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번에 합의된 검증절차는, 국무성의 발표와는 달리, 충분하지 못하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더욱이 몇몇 검증 조항은 북한과의 빈약한 부속합의 내지 구두합의로 이루어졌다.
북한과의 협상에서는 항상 합의내용을 세부적으로 분석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또한, 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이 약속을 지킬 의지(意志)가 있는가의 문제다. 최종 판단은 합의 전문이 공개될 때까지 기다려봐야 하겠지만, 부시행정부가 논란 많은 ‘단기고지(short-notice) 사찰’(북한 측에 충분히 대비할 시간을 주지 않고 사찰로 들어가는 것) 문제와 관련, 물탄 듯한 합의를 수용한 것으로 의심이 간다.
북한 내 의심이 가는 핵시설 지역을 북한당국이 혼란스럽게 만들도록 허용한 것은 이번 합의의 결정적 흠이었다. 북한이 우라늄 시설이나 핵확산 관련 시설의 사찰을 허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북한은 이들의 존재 자체를 부인해왔기 때문이다.
국무성은 말하기를 “사찰을 위해 북한이 신고한 모든 시설에 접근이 가능하며, 未신고시설도 북한과의 합의 후 접근 가능하다”고 하나, 불행히도, 스테픈 해들리 국가안보 보좌관이 인정하듯, 북한이 신고한 내용 자체가 “불완전하고 부정확하다”는데 문제가 있다.
북한이 신고한 내용에는 플루토늄 관련 핵시설 조차 모두 포함되어있지 않다. 美 행정부 관리도 시적(私的)으로 “검증합의에는 핵실험 지역, 플루토늄 폐기장 또는 무기화 시설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다시 말하면, 사찰은 오직 영변과 몇몇 학술단체에만 허용될 것이라는 얘기다. 未신고시설의 사찰을 위해선 북한과 추가적인 협상에서 합의를 이루어내야 한다.
부시행정부 관리들은 이러한 (검증상의) 한계는 과거 미국이 체결한 무기통제 조약, 예컨대 START, CFE, CWC, IAEA 안전합의 등에도 동일하게 있었다고 주장하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들 조약들은 의심 시설 사찰에 대한 보다 강력한 규정을 포함하고 있다.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한 조치는 일본과 한국 등 주요 동맹국들을 화나게 만들었다. 이들 동맹국들은 이제 미국이 그들의 안보 우려에 큰 관심을 갖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일본인 납치문제에 성과가 있을 때까지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지 않기로 한 미국의 약속을 부시행정부가 깨 버림으로써 배신당했다고 느끼고 있다. 일본은 이제 납치자 문제 해결을 위한 대북 지렛대를 잃었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이번 조치는 또한 과거 남한정부가 북한에 제공한 무제한의 경제적 ‘퍼주기’에 대해서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이 새롭게 설정한 ‘조건성((conditionality)’, ‘상호주의(reciprocity)’, 그리고 ‘투명성(transparency)’ 등의 원칙을 훼손시키고 있다.
李 대통령은 그의 원칙있는 대북정책을 포기하라는 보다 큰 내부의 압력에 직면하고 있다. 더욱이 북한은 남한에 대해 “남북관계 파탄”, “남한을 잿더미로 만들겠다” 등의 대담한 ‘벼랑끝전술’과 과도한 위협 선전을 펼치고 있다.
이번 검증합의와 관련, 의회는 다음 10가지 사항을 부시행정부에 추궁해야 한다.
1. 리비아의 경우, 테러리스트 명단에서 삭제되기 이전, 1988년 스코틀랜드 로커비에서 발생한 팬암기 폭탄테러 사건에 관여했음을 인정ㆍ배상했는데, 왜 북한은 115명의 목숨을 앗아간 1987년 KAL기 폭파사건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가?
2. 지난 2006년 11월 부시대통령은 “북한이 핵무기ㆍ핵물질을 다른 국가나 집단에게 이전할 경우, 미국에의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할 것이며, 그러한 행동의 결과에 대해 북한에게 완전히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언명했는데, 북한이 시리아에 핵기술을 전파한 것에 대해선 어떤 처벌이 가해졌는가?
3. UN결의 1718호에 의하면, 북한은 IAEA 안전규정을 준수하도록 되어 있는데, 왜 이번 검증합의는 오직 IAEA에게 제3의 역할만을 담당하도록 규정하고 있는가?
4. 미ㆍ북 간 이루어진 구두합의나 부속합의들은 법적으로 유효한가? 이들 사적인 합의들은 지난 6ㆍ26 북한의 신고내용 및 별도의 우라늄-핵확산 관련 추가합의와 함께, 공개될 수 있는가?
5. 왜 美관리들은 (합의 발표 시) “우리가 추구해 온 모든 검증 요소들이 이번 패키지 내에 있다”고 주장했는가? 사실이 그렇지 않음에도. 왜 미국의 협상가들은 과거 미국의 무기통제 조약이나 UN결의 1718호가 요구했던 것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검증 기준을 수용했는가?
6. 북한의 6ㆍ26 신고내용에 다음 정보가 포함됐는가? 플루토늄 폐기장, 무기제조 시설, 고폭실험 시설, 핵실험 시설, 그리고 플루토늄과 무기 저장 시설.
7. 북한이 지난 2005년 9월 핵포기에 합의한 이후, 북핵 협상가들은 북한의 핵무기가 어떻게 폐기될 수 있고, 핵폐기 완성을 위한 시간스케쥴은 어떠한지 결정하는데 얼마만큼의 진전을 이룩했는가?
8. 6자회담 제2단계는 모든 핵무기 시설의 불능화를 요구한다.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도 “‘모든’은 ‘모든 시설’을 의미한다”고 의회에 확답한 바 있다. 부시행정부는 “모든 시설”의 의미를 再정의하여, 오직 영변에만 검증을 적용하려 하는가?
9. 북한 관리들이 거듭 주장하는 ‘핵보유국 지위 획득’ 목표와 북한당국이 6자회담의 ‘비핵화’ 요구를 수용한 것과는 분명 괴리가 있다. 부시행정부는 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10. 왜 북한은 자신들의 의무사항을 명문화하는 것에 반대하는가? 이는 규정 준수를 최소화하려는(피하지는 않더라도) 의도가 아닌가?
북한이 국제사회와의 비핵화 합의를 기만(欺瞞)하지 않고 준수토록 하는 데에는 엄격한 검증절차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혹자(或者)는 이번의 미봉책과 타협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반(半)개의 빵이라도 없는 것보단 낫다”라는 경구를 인용할지 모른다. 그러나 잘못된 합의는 아예 합의를 안 하는 것보다 더 나쁘고, 더 위험하다.
10ㆍ11 검증합의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라기 보다는 북한의 압력에 굴복한 미국의 선례로 기록될 것이다.
* * *
클링너 헤리티지 재단 선임연구원의 분석은 미 국무성관리들 특히 힐 대사가 ‘성과’와 ‘협상 성공’에 조급해 한 나머지, 서둘러 북한과 이룩한 10ㆍ11 검증합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다. 초기에 머뭇거리던 부시대통령도 북한의 2차 핵실험 등 임기 말의 한반도 상황 악화를 두려워 해, 마지못해 승인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한반도 정세는 김정일 와병으로 북한이 약세로 몰리면서도, 오히려 대남 도발 위협을 증대시키는 혼란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대선 후 미국의 新행정부가 어떤 형태로든 새로운 對한반도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한국은 ‘북한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로 인한 ‘통미봉남(通美封南)’을 막고, 북한의 핵ㆍ인권ㆍ체제위기 등 3大 대북정책 과제에 대비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konas)
홍관희(안보전략연구소장/ 재향군인회 안보교수)












![[안보칼럼] 강한 국군이 곧 평화의 조건이다](/img_data/article/260930/260930_63035.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