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수기5] 24살의 꺼지지 않은 열정....
1일차 2일차[서울, 수원 경기도 방면]
앗 ! 7시닷!!!
이른 아침부터 나는 고성을 질러대고 있었다. 바로 오늘이 국토대장정 첫날이기 때문이다.. 그 전날 나는 해낼 것이다 .. 라고 다짐하고 다짐했던 강한 마음은 어디 가고, 마치 엄마에게 떼쓰는 어린아이처럼 나도 내 자신에게 때를 쓰고 있는 것이리라..
부산한 아침을 뒤로하고 지하철을 타고 오는 동안 무수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이 지하철을 타고 바로 서울역으로 가서 집으로 내려가 버릴까 ...”“이제 막 전역한 예비역인데 ,, 낙오되면 쪽팔리진 않을까..”“다른 대원들도 다 올까..”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지하철을 타다보니 어느새 동대 입구역에 도착을 하고 나는 어느새 내 키의 절반의 크기의 배낭을 메고 장충체육관 앞에 서있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안으로 들어갔는데, 다행히 늦지 않았고.. 대원들도 다 도착해 나를 기쁘게 반겨주었다.. 모두들 학교도 고향도 나이도 얼굴도 다 달랐지만, 이렇게 기쁘게 반기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다들 오랜 친구 만난 기분이었다. 장충체육관에 출정식을 하기에 앞서, 우리는 밖에서 기다리며 OT때에 나누지 못했던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했다. 그때 한쪽에 계신 참전용사 분이 오셔서 나에게“아 자네 건강하니 완주 꼭 하겠네..”라고 말씀을 하셨다..그리고 갑자기 물으셨다.“ 혹시 자네는 6·25가 북침이라고 생각되는가 남침이라고 생각되는가 ? ”순간 당황한 나는 차분히 생각 한 뒤에 남침이라고 대답했더니 참전용사 분은 흐뭇해하시며 열심히 잘 하라고 당부의 말씀을 건네시며 자리를 떠나셨다. 난 그 순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솔직히 여기 출정식 오기에 앞서 나는 국토대장정을 지원하게 된 계기는 다음과 같다.
“군대에서 막 나온 24살의 꺼지지 않는 열정의 혈기왕성한 청년, 하지만 그 어느 곳도 그 청년의 열정을 채우기에 충분치 않았습니다. 그 어떤 자양분을 공급받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고 시들고 막막한 삶을 살고 있을 무렵, 무료하게 인터넷검색을 하다가 이곳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순간“여기라면 내가 꿈꾸고, 세상으로부터 동경하는, 주어진 길만 뚜벅뚜벅 걷는 것 만이 아닌, 내 발로 내 힘으로 걸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시각에서 벗어난 세상의 넓은 시각을 몸소 체험하고 싶고 또한 저의 삶의 모토인 正道를 걸을며 세상을 섬기고 인류를 섬기고 또한 배우고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 국토대장정 자기 소개서에서 발췌-
하지만 참전용사분과의 대화를 통해 나는 새로운 지원동기를 내 마음속에 정의하게 되었다. 나의 열정, 끈기, 투지를 시험하는 동시에 군대에서 들어왔던 6·25참전 얘기를 스스로 전적지답사를 통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돌아가신 그분들의 혼을 진심으로 느끼고 체험하여 올바른 국가관을 정립하여 나라의 기둥이 될 것이리라..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스텝들의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출정식합니다.. 준비하세요..”나는 우리 분대원들과 함께 엄숙한 분위기 속의 출정식을 거행하려 발걸음을 내딛였다. 6·25 전적지 답사 국토대장정 출정식이 시작되고 출정보고에 이어 학생대표 이민우대원, 신소영대원이 당당하게 출정 결의문을 낭독했다. 그 후 회장님의 격려 말씀에 이어 참전용사분들의 따뜻한 배웅과 격려를 받으며 11박 12일의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출정식이 끝난 직 후 우리는 국립현충원으로 발걸음을 내딛였다. 첫 순례지, 국립현충원에는6·25 참전용사들뿐만 아니라 해외참전용사, 베트남전 용사, 순직한 경찰들이 잠든 곳이었다.
우리는 엄숙히 그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들을 대신해 열심히 국가를 수호할 것을 다짐하며 참배를 올렸다. 참배를 하면 나는 지금의 민주주의와. 대한민국이 있음으로 인해 우리가 이렇게 부족할 것 없이 살 수 있다는 것에 매우 감사했다. 그리고 위패봉안관 가운데에 있는 영현승천상을 보며, 나라를 지키다 돌아가신 그분들의 가족들은 이제 눈물을 거듬고 영현승천상이 가리키는 하늘을 바라보며 더욱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라고 다짐도 하였다.
참배를 마친 후 주변 공원에서 삼삼오오, 분대별로 모인 우리는 도시락을 받고, 조금 이른 점심을 먹었다. 나는 직감을 하였다. 도시락으로 밥을 먹는 건 이번뿐이라고, 나머진 군대 밥을 먹을 것이라고, 그래서 우리 분대원들에게 말해줬더니, 군대를 다녀온 남자 분대원들은 별로 달갑지 않게 여기었고, 여자대원들은 호기심 찬 눈빛을 지으며 도시락을 먹었다. 그 후 쉬는 시간.. 다른 분대들은 이미지 게임을 한다던가.. 술래잡기를 하는 반면, 우리분대는 잔디밭에 누워서 다들 쉬었다. 역시 쉬는 게 최고야..
다음으로 우리는 프랑스 참전비에 갔다. 국립현충원 과는 반대로 여기는 여기저기 잡초가 무성하고, 달랑 참전비 하나 있다는 게 나에겐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이들은 머나 먼 타국에서 오직 민주주의 수호를 위하여 싸운 용사들, 프랑스군을 비롯한 수많은 UN군이 전쟁을 통하여 부상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하였다. 우리는 힘을 모아 함께 싸워준 UN군이 있기에 이렇게 나라에 두려움 없이 살고 있는 것이다. 한강의 기적과, IMF를 최단기에 극복한 한국, 이와 같은 저력은 6·25 전쟁과 희생된 모든 이들 때문에 생긴 것이며 우리는 이들을 기려서 민주주의 수호와 세계 평화에 이바지해야 할 것이다. 지금 세계는 서로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이같은 추세에 발 맞춰 우리도 다른 나라에 내전이나 위기가 닥쳤을 때 서로서로 힘을 보태고 그들의 피와 땀이 얼룩져 민주주의를 수호할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우리의 발걸음은 수원으로 향했다.
첫날이니 만큼 우리들의 발걸음은 꽤나 가벼웠다. 그리고 2열로 맞춰 행군을 하면서 우리는 서로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이런 뜻깊은 행군시간을 통해 우리는 서로서로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알아가는 중에, 어느새 우리는 공군부대에 도착하게 되었다. 벙커를 지나 공군장병들의 환영의 박수를 받으며 우리는 파이팅을 외치며 숙소에 도착했다. 점심을 일찍 먹은 터라 다들 배가 고파 있어서 그런지 이 글을 쓰는 지금 메뉴가 뭐 나왔는지 기억하지 못 할정도로,,,우리는 식당에서 나온 음식들을 보지도 않고 무조건 입 속으로,, 마치 청소기가 먼지를 흡입하듯이. 음식물을 흡입을 하였다. 예상외로 공군부대에서의 밥의 맛은 꿀맛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숙소로 향했다. 저녁늦게 배급받은 통닭과 수박을 먹으며 다들 서로의 이야기를 하면서 하루를 마쳤다. 군에서 전역한 후 처음으로 막사에서 잔 날, 느낌이 새롭고 내일이면 6시에 기상해서 훈련을 받을 것만 같던 생각이 들어 잠을 이루지 못했다.
둘째날이 밝았다. 첫 아침점호를 시작하게 되었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며 오늘도 행군무 무사히 마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 후, 국군도수체조를 하게되었다.. 이때 난 분대장에 이끌려 맨 가운데에서 국군도수체조의 시범을 하게 되었다. 전역한지 반년이 지난 터라, 잘 모르고 있던 차이지만, 국군도수체조에 있어 학생들의 대표라는 점에서 의무감을 가지고 까먹지 않으려고 천천히 각을 잡으며 하려 노력했다. 색다른 경험이었지만. 이를 통해 다른 분대원들도 알게되고, 친하게 되었다. 각자 행군을 위한 준비를 하였는데 우리 분대원 중 한명이 나를 이상하게 봤다..이유는 나는 여기 오기에 앞서 발목스타킹을 많이 가지고 왔기 때문이다. 왜냐면 파우다를 바르고 스타킹을 신고 마지막 양말으로 마무리를 하고 걸으며 물집이 나지 않는 나만의 방법이 있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뭐가 상관 있으랴, 나는 덕분에 행군을 마치고 나서도 물집이 하나도 안 잡혔다.
우리는 행군중에 UN군 초전비를 들렸다. 이곳은 UN군이 한국에 상륙하여 첫 전투를 기념하여 세운 초전비이다. 이 곳, 죽미령 전투에서 UN군은 북한군을 너무 쉽게 본 나머지 전투에 패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투에 패했지만, 이들의 첫 전투는 역사상 매우 의미 있고, 기려야 할 전투라 생각된다. 이들의 전투가 패했기 때문에 UN군이 더욱 긴장하고 북한을 맞게 되었고, 결국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북한군을 격멸 시키고 다행히 우리가 공산통일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이를 통해 그동안 얕잡아 보고 있는 북한을 다시 보기 생각했다. 과거에 이러한 선례가 있으니,, 나도.. 아니,, 우리도 이 순례가 끝날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죽미령전투에 대해 설명을 들으면서, 국군의 날의 창설근거를 듣게 되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3사단이 38선을 최초로 넘어서 진군을 해서 국군의 날이 결정되었다고 한다.
그들의 기백과 용기는 정말 실로 놀라웠다..행군을 하면서 우리는 수원화성에 들려 쉬게 되었다. 6.25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수원화성은 정조시대 당시의 동서양의 과학과 기술이 총집합되었고, 단원 김홍도를 비롯한 예술가들, 번암 체제공과 실학의 거두 정약용을 포함한 당대 지식인들이 참여했다. 최대 규모로 집적된 기술로 축조된 수원화성은 그 혼들이 우리나라를 지키고 있음을 수원화성을 보며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런 생각동안에 들려오는 의료팀장님의 목소리,, “다들 신발벗고 발을 주물러,, 그래야 물집이 안생겨!!” 발에 물집이 잡히면 걷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다들 의료팀장님의 말에 맞춰 따라했다. 그리고 다시 행군시간.. 쉬고 걷고를 반복하는 동안 제일 힘들었던 2일차를 마치고 우리는 어느새 평택에 있는 방공포부대에 도착하였다. 숙소에 짐을 다 풀고 여정을 녹이고 있던 차에 방공포 부대소개가 이어졌다. 첨단 기술과 무기로 우리나라를 방어하고 있는 방공포들을 보며 우리나라에 산다는게 너무 감사하게 생각되었고, 그같은 첨단 무기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맘편히 살고 있는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부대소개가 끝나고 우리는 내일 장기자랑에 있어서 약간의 회의를 나누고 일정중 제일 힘들었던 2일차를 마무리하고 1일차와는 달리 몸이 피곤하여 쉽게 잠에 들게 되었다.
3일차 4일차 5일차(평택, 천안, 대전 - 충청도 방면)
오늘은 선문대로 향하는 날이다. 평택을 지나 천안을 거쳐 능수버들나무길을 통과하여 천안삼거리를 통과하면서 천안삼거리 노래를 부르며 선문대에 도착하였다. 선문대로 가는 길에 길이 좀 위험하고 힘들어서 그런지, 우리 분대원들의 말수가 급격히 줄었지만, 다들 힘든내색 하나도 하지 않고, 결국 선문대의 고지를 정복하게 되었다. 향군여성회원들의 환영을 받으며 도착한 선문대에서 우리는 수박과 음료수를 먹으며 지친 피로를 녹이며 천천히 장기자랑을 준비하게 되었다. 분대장(안상현대원)의 지휘아래 개그프로에 나오는 초코보이를 패러디 하여 국토대장정 꽁트에 맞게 각색을 하여 대원들에게 선보였더니,, 반응이 뜨거웠다. 그를 통해 그동안 조용했던 우리 분대는 일약 대 스타가 되었고, 결국 장기자랑에서 2등을 차지하게 되었다. 장기자랑을 통해 우리는 웃고 즐기며 서로를 더욱 아는 계기가 되었고, 친해지는 발판이 되었다. 장기자랑이 끝난 후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그 때 다른 대원들이 숙소 내부를 자기공간이 아닌 곳도 자원하여 깨끗하게 치우는 것을 보고 어느새 대원들간의 동기애도 생겨나게 되었다. 장기자랑과 함께한 선문대에서의 하룻밤은 정말 잊을 수 없는 밤이었다.
아침이 밝았다. 눈을 비비며 일어나니 갑자기 스텝들이 분주해했다. 나는 직감하고 하늘을 보니 하늘은 비를 엄청 뿌릴 기세로 우리를 덤비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랴.. “오기만 해봐라 까짓거..우리는 무슨일이 있어도 목적지 포항에 도착하고 만다..” 우리의 그러한 강한 다짐을 느껴서 일까.. 오전에는 비가 전혀 내리질 않고, 선선한 바람만이 우리와 조치원으로 동행했다. 맨 앞열에 히야(김동환 대원)와 함께 깃발을 들고 저녁 해가 뉘엿뉘엿 저물 무렵 어디서 군악대 소리가 들려왔다. 군악대 소리에 맞춰 우리는 발을 맞추고 99보병연대에 다다랐다. 연대장님의 말씀과 함께 우리는 숙소를 배정을 받고 2소대 2분대원들과 함께 한방을 쓰며 그들과 함께 하룻밤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내일은 비가 오지 말게 해달라고 맘속으로 기도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 했다.
5일차가 밝았다. 하지만 말이 밝았지, 숙소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다들 근심에 찬 표정으로 날씨를 걱정하고 있을 무렵 우리 분대장이 한마디 건넸다. “에이 비가 문제야? 까짓것 금방 걸어. 다들 열심히 하자~” 이런 한마디에 우리분대원들은 힘을 받았다. 역시 분대장의 힘인가.. 이런 한마디 한마디가 우리 분대원들을 똘똘뭉치게 하였고, 어느새 우리는 하나가 되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말로만 듣던 조치원을 넘어 계룡대로 향하였다. 난코스로 악명이 높았던 탓일까. 이효정대원, 유연지대원을 비롯한 다수의 대원들이 많이 힘들어했다. 역시 나도 힘들었지만, 이 악물고 걸었다. 그리고 내리막길을 걸을 때 발바닥이 쓸리면 안되기 때문에 내 옆에 걷는 분대원들에게 말해주어 발바닥이 쓸리지 않게 도왔고, 더욱 정신을 차리고 걸어야 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연신 힘내! 라고 말하며 때론 분대 구호를 외치며 힘든 대원들의 가방을 부축해주며 그들과 함께 하고 함께 걸었다. 힘든 뒤에는 꿀맛같은 성공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 정말 틀린 말이 아닌것 같다. 그런 힘든 난코스를 극복하고 난 후 엄청 큰 규모의 군악대가 반기는 동시에 별들의 전쟁이라고 불리는 각종 장군님들이 와서 우리들을 웃으며 반겨주었다. 그 가운데 소장의 계급을 달고 나의 옆에 걷고 계신 장군님은 나보고, “대단하구나, 이제 반절왔으니 마지막까지 힘내..” 하는 말을 하셨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더욱 힘을 내어 장군님께 “6.25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1000리 행군도 마다 않고 북한을 격멸하기 위해 애쓰신 그 분들에 비하면 저는 아무것도 아니죠..” 라고 말하였다. 그렇다. 오직 나라를 지키려는 일념으로 군에 자원입대한 우리 선배님, 그리고 학생의 신분으로 학도의용군에 자원한 그분들, 또한 알게 모르게 우리나라를 공산화로부터 지키기 위해 애쓰신 그분들을 떠올리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행군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파이팅을 연신 외치며 우리는 계룡대에 도착하였다. 도착한 후 주위를 둘러보니,, 역시... 라는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계룡산의 품에 안겨 있는 천혜의 명산. 군사 요충지. 계룡대. 이곳에 육,해,공군의 본부가 있는 것이다. 얼마나 믿음직 스러운가..
계룡대에 도착한 후 우리 대원들은 그동안 물집이 많이 잡혀서 계룡대에 있는 병원에서 물집치료를 받았다. 나는 물집이 잡히지 않은 터라 몰랐는데, 다른 대원들의 말에 의하면 어떤 여자대원은 발이 전체가 물집이 잡히고 피가 고여서 겉으로 볼때는 걷지도 못할 발인데, 이를 악물고 정신력으로 버티며 이곳까지 왔다는게 많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발에 물집이 잡히지 않은 나는 행군을 하면서 다른 대원들보다 즐겁게 걸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 이렇게 힘들게 물집을 참아가면서 걸어온 이들도 있었다.. 나는 그런걸 모르고 옆의 대원들에게 장난을 걸기고 하였다. 이들의 아픔을 모른채,,,, 나 혼자만의 싸움이 아닌 분대원들이 함께하고 나아가 대원들이 함께한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개인적으로 많이 부끄러웠지만, 이 후로는 이들을 더욱 생각하며 걸어야겠다. 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계룡대는 참 아름다운 곳이었다. 규모도 클뿐더러 밤에는 무수한 별이 계룡대로 온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리고 시설은 얼마나 좋은지,, 대원들이 연신 감탄사를 뱉었다.
6일차 7일차 (영동, 김천 - 경상도 방면)
계룡대에서 하룻밤이 지난 후 우리는 그 다음날 오전은 계룡대를 둘러보았다.
계룡대 6.25전쟁기념관에가서 전쟁사교육을 받았는데, 놀라운건, 20대 연령층의 50%가 6.25전쟁이 언제 시작됐는지, 북침인지, 남침인지, 를 구별을 못하고 모른다는 것이었다.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도 첫날 참전용사분이 물어봤을때 잠시 당황을 했다. 바로 말이 나왔어야했는데, 그동안 6.25전쟁에 대해 관심이 없던 것이 였으리라.. 다른 20대 청년들도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난 이번 계룡대까지 오면서 6.25를 모르는 50%청년과는 달리 6.25전쟁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러한 관점을 통해 새로운 국가안보관을 고취하고 다시 확연히 정립된 안보관을 통해 미래를 책임지는 청년이 될 것이다.
이러한 다짐과 함께 잘 정리되고 만들어진 6.25 전쟁기념관을 방문한 후 이성계가 도읍으로 정했다가 실패했던 그 도읍자리를 방문하며 무학도사가 추천했다던 계룡산의 역사에 대해 주의깊게 듣게 되었다. 이런저런 구경을 하며 오랜만에 편한 오전을 보내고 우리는 또 다시 목적지. 영동을 향해 가방을 매고 출발하였다.
영동으로 오는 중간에도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흐린하늘에서 우리는 걷고 또 걸었다. 영동이 국악의 고장이라 했던가.. 역시나 신명나는 풍물공연으로 향군회원분들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어딜가나 우리를 반겨주시는 향군회원님들은 더운날씨에도 찾아오셔서 수박과 간식을 통해 덥고 지친 우리몸을 무언으로,, 한편으로는 “힘내라!”는 희망찬 응원으로 우리를 지원해 주셨다. 이를 통해 그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표하고 싶다. 영동에 있던 6.25전몰기념탑앞에서 우리는 참배를 하고 서둘러 배낭을 매고 숙소로 향하였다. 밤에는 모기와 더위 때문에 잠을 설쳤지만, 옆에 대원들이 있어 괜시리 기분이 좋았다.
7일차가 시작되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김천.. 영동에서 김천으로 가는 길에 기차를 한 수백번 봤던 것 같다. 그만큼 기차가 요란하게 소리를 내며 우리 옆을 가로질러 달리고 있었다. 행군중에 경상도에 사는 대원으로부터 김천으로 가는 길은 추풍령을 넘어야한다는 말이 있었다. 나는 전라도에 살아서 추풍령을 몰랐던 터라 아무 생각없이 걸었으나 끝없는 오르막길을 걸으면서 꽤나 힘들었다. 하지만 어느새 내 체력이 그정도쯤이야.. 하면서 적응이 되었다. 다른 대원도 마찬가지여서 평소는 오르지 못하고 힘들어할 추풍령도 간단히 넘고, 김천에 다다랐다. 서울에서 시작했던 여정이 충청도를 넘어 어느새 경상도에 이르렀다. 그동안 많은 현지사람들도 만나며 그들과 소통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이제 펼쳐질 경상도에서의 여정, 그리고 최종목적지 포항,, 얼마 안남았다. 힘내자 명아!! 파이팅!!
8일차 9일차 (칠곡, 대구)
우리의 여정도 어느새 반을 지나고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오늘 아침밥은 특별하게 햄버거가 나왔다.. 바로.. 군대리아.. 아! 이게 얼마만인가.. 하고 나는 맛있게 먹고 있는데,, 우리 여자분대원들은 그것을 보며 멀뚱멀뚱히 있었다. 어떻게 먹을 줄 몰라하고 있던 거였다. 나와 김동환대원이 같이 군대리아 제조법을 친절히 설명해주니 , 이제 알겠다는 눈치를 보이며 맛있게 먹길 시작했다.. 다행히 먹을 만 했다는 평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지 더욱 색달랐다. 오늘도 우리의 여정을 막을수 없다!! 자연스레 발걸음이 칠곡으로 향했다. 국도를 타면서 우리는 우리의 국토를 맘껏 체험하고 논길을 걸으며 올해도 풍년인 농작물을 바라보며 시험스트레스와 취업스트레스로 가득찬 우리의 마음도 긍정적인 생각으로 풍년이 들길 기원하며 내 스스로 생각하며 행군하던차에 그때 비구름이 갑작스럽게 우리 위로 몰려왔다. 위기를 감지한 스텝들은 판쵸우의를 챙기라고 하였고, 우리도 그에 발맞춰 판쵸우의를 챙기고 신발을 갈아신었다. 하지만. 한동안 비는 오지 않았고, 방심하고 있던 터에, 비가 하나, 둘씩 내리더니 갑자기 많은 비가 쏟아부었다. 우리는 허둥지둥대며, 판쵸우의를 입었다. 폭우와 비바람속에서도 우리는 불만없이 묵묵히 목적지를 향해 걷고 또 걸었다. 다행히 덥지는 않아서 좋았으나 비로인해 온몸이 젖어 무거운 발걸음은 우릴 힘들게 하였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가. 바로 정예 국토대장정대원들이 아니었던가.. 참고 참으며 걸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6.25전선중에서 가장 중요했으며 치열했던 낙동강 구 철교에 이르렀다. 그쪽에 도착해서도 우리는 많은 환대를 받았다. 칠곡 군수님도 나오셨고, 월남참천유공자회 회장님, 그리고 경북 재향군인회 회장님과 더불어 우리의 간식을 항상 준비해 주시던 여성회에서도 우리를 위해 수박을 준비해 주셨다. 얼마나 감사한지...
이곳 낙동강 구 전선은 한 ․ 미 연합군이 북한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인하여 후퇴하던 중 최후의 보루지로 55일 동안이나 북한군의 공격을 막아낸 곳이다. 일명 워커라인이라고 불리 우는 낙동강 전선의 격전지이다. 만약 이 워커라인이 무너지게 될 경우 위치상 밑에 있는 대구가 함락이 되며, 부산마저 함락되어 적화통일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이다. 만약 이 요충지가 무너졌으면 인천상륙작전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참전유공자회원들의 말씀을 들으며 낙동강 전투 당시의 긴박함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행군을 한지 9일차. 오늘은 낙동강 전선을 따라 행군을 하였다. 지금까지 많은 행군을 하였지만 이번만큼은 어느때보다 중요하고 뜻깊은 행군길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군길을 따라 우리는 다부동 전적기념관에 다다랐다. 거기서 6.25 전쟁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들었다. 더 이상 물러 설 곳도 없는 곳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이 붙어있는 한 싸워야 했던 그들, 그시대의 북한 첨단 무기와 탱크에 비해 탱크고 없도 변변찮은 무기와, 삽, 곡괭이로 싸워야 했던 그들의 처절한 상황들, 매일 계속되는 전투, 더운 여름과 배고픔, 고향에 내려가서 시원한 냉수한번 먹고싶다던 학도병이 어머니께 부치지 못한 편지를 보며 눈물을 머금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된다며 결심을 하였다. 다부동 전적기념관에서의 여정을 마치고 우리는 대구 무열대(제2군작전사령부)에 다다랐다. 이날도 계룡대와 다름없이 수많은 장군님들이 환대하고 군악대의 씩씩한 군악소리와 동행하여 무열대에 입성했다. 넓디 넓은 체육관에서 우리는 그동안 쌓았던 여정을 풀고 말뚝받기, 술래잡기, 각종 게임들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함께 행군하면서 정도 많이 들고, 마치 오랜친구 같고 오래 같이 할것같은 지냄도. 행군이 끝나면 뿔뿔히 자기 집을 향할 것이라는 생각에 슬펐다. 하지만 늦지 않았다. 아직도 3일이나 남은 생각에 더욱 많은 추억을 쌓으리라 생각하며 하루를 마무리 하였다.
10일차 11일차 (대구 무열대, 경주시, 영천 3사관학교, 포항)
아침에 일어나니 밤새 왔던 비로 날씨가 꽤 시원했다. 그리고 날씨는 다행히 맑았다. 오늘도 다름없이 무사히 하루룰 보내게 해달라는 기도를 한 후 행군을 시작했다. 2작사에 있는 탱크와 사진을 몇장 찍고 우리는 서둘러 영천을 향했다. 행군을 하는 중에 이제 불평을 하고 힘들어하는 대원들은 찾으래도 찾을 수 가 없었다. 그만큼 행군에 신체가 적응이 다 되었으리라.. 8~10kg 나가던 가방도 이제 신체의 일부가 된듯, 하나도 무겁지 않았고, 무릎이 아파서 걷기 힘들었던 발걸음도 이제 언제 아팠냐는듯 익숙해 졌다. 그리고 쉬는 시간마다 양말을 벗고 발을 주무르는 것도 자연스러웠고 누워서 발을 식히는 것도 어느새 다들 개의치 않고,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눕고 쉬는시간을 진실로 즐기게 되었다. 그만큼 우리가 하나가 되었으리라.. 오늘은 영천지구 전투 전승비를 방문하게 되었다.
이곳 영천지구 전투는 최초의 방어선을 회복한 곳으로써 의미가 깊은 곳이었다. 영천지구 전투를 이끈 백선엽 장군은 뛰어난 전술전략으로 그동안 전쟁에서 맹위를 떨치던 인민군 15사단을 격멸하여 전세를 뒤집을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와 같은 전적지를 답사하고 우리는 영천3사관학교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대학교 재학중인 학생들이나 학사장교 등을 통하여 장교의 길을 걷는 사관생도를 육성하는 학교이다. 장차 우리나라의 군에 있어서의 미래를 책임질 리더들을 양성하는 학교인 것이었다. 세계에서 얼마없는 유일한 학교이기도 하니, 스스로 우리국가에 대해 대단하게 느껴졌다. 여기서 배출된 젋고 유능한 인재가 한국군을 이끌면 한국군은 만약에 전쟁이 터지더라도 뛰어난 전략 전술과 최첨단 무기로 승전에 승전을 거듭할 것이고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하니 3사관학교가 괜시리 든든하게 느껴졌다.
맛있는 식사를 한 후 저녁에는 롤링 페이퍼를 돌렸다. 우리는 다른 대원들과는 다르게 단체티나 단체 손수건에 롤링페이퍼를 썼다. 그동안 함께여서 좋았던 기억들, 때로 마음이 맞지 않아 서운했던 것들, 그리고 말로는 못다한 것들을 쓰며 우리 분대원들에게 글로 나의 마음을 양껏 전하였다. 내일이면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포항입성이다. 라는 생각을 하니 국토대장정을 마치니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로 무지 정들었던 대원들과 함께 못하니 슬프기도 하였다. 하지만 인생이 만나고 헤어지고의 연속이다. 우리는 꼭 다시 만날것이다.. 이런저런 생각과 얘기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 하였다.
맑은 하늘아래서 새가 지져귀는 소리와 함께 우리도 아침을 맞았다.
“오늘이 마지막 행군이구나...” “오늘 내 생일인데,,” 만감이 교차하는 아침을 맞이하며 행군을 준비하였다. 3사관학교를 떠나는 날, 사관생도가 환영해주는 것을 보며 힘을 얻고 마지막 행군을 향하여 우리는 힘찬 발걸음을 내딛였다. 3사관학교 문을 통과하자마자 갑자기 평소 구호를 잘 외치지 않는 우리 분대 분대장이 구호를 외치자고 했다. 나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들려온 분대장의 우렁찬 목소리,, 여명아 생일축하해~ 그리고 다른 대원들의 축하 메시지,, 잊을 수 없는 생일 이었다. 이것이 동기애라고 했던가.. 이러한 애정과 소소한 것에 감사하는 나를 발견하며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새 국립영천호국원에 도착하였다. 서울, 대전 국립 현충원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참전용사나 국가유공자들의 시신이 안장되어 있는 곳이다. 그러나 현충원과는 달리 이곳은 참전하신 후 전사하지 않으시고 그 이후 다른 사유에 의해 돌아가신 분이 안장된 곳이라 한다. 그래서 명칭이 호국원이기도 하다. 참배를 하기까지 오르막길이 힘들긴 했으나 오르고 난 뒤의 마치 하늘의 구름과 맞닿아 있다는 느낌과 성취감이란.. 올라가보지 못한 사람은 모를것이다. 그렇게 참배를 한 후 우리는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에 갔다. 이곳은 학도의용군의 넋을 기리기 위한 곳으로서 전쟁이 터진 후 북한군의 압도적인 공세에 밀려 무기도, 식량도, 국군도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모자란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어린 병사들이 전쟁에 나가게 되었다. 지금 나이로 치자면 중학생정도의 나이의 학생들이 총의 ㅊ자도 알지 못한 나이에 전쟁에 나가된 그들의 참담한 심정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학도의용군의 참전하셨던 용사분이 전쟁은 다시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절절하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스스로 숙연해지게 되었다.
설명이 끝난 후 학도의용군기념관에 들어가 그시대의 학도의용군의 사진을 보니 지금의 우리 중학생애들보다 체격도 더 작고 왜소한 그들의 전쟁에 참여했다고 생각하니 스스로 놀랍지 않을 수 없었고 마음속으로 그러한 현실을 맞이한 그들을 생각하며 참으로 슬펐다.
기념관 방문을 끝낸 후 우리는 포항에 들어섰다. 서울에서부터 그렇게 입이 닳고 닳도록 말했던 포항이다... 해병대원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더욱 힘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의 열정과 최대의 목소리로 분대구호를 외쳤다. 이제 이것도 마지막이구나.. 라는 아쉬움과 함께...대원중에 유난히 건강하고 행군중에 가장 힘찼던 대원이 한말이 갑자기 생각난다.. “나 군대도 다녀오고 행군도 10번넘게 했지만 혼자 걸었으면 여기 절대 못와.. 하지만 너희들이 있기에 이 대장정을 정복했어..” 혼자라면 불가능해보였던 일들도, 이렇게 같이 하면 뭐든지 된다는 확신이 이번 국토대장정을 통하여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서두에 지원동기와 같이 내발로 내힘으로 걷는 것만이 아닌 다른대원들과 함께하며 그들과 소통하고 나눔으로써 그 길고 길던 행군길은 완성했다고 본다. 그날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캠프파이어를 통하여 눈물을 공유했으며, 덩실덩실 춤을 추며 서로서로가 하나가 되었던 정말 잊지못할 경험이 되었으며 다같이 드넓게 펼쳐진 포항바다를 보며 서로서로를 격려하고 진심으로 따뜻하게 안아주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바다가 보이는 해안가에서 해병대 야전텐트에서 영원히 끝나지 않을 마지막 하룻밤을 보냈다.
12일차 (포항)
마지막 날이 밝았다.
마지막 날이니만큼 다들 다른 날보다 힘이 났다. 간단히 식사를 한 후 우리는 6.25참전용사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우리는 참전용사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더욱 그동안 책으로만 역사를 접했던 것과는 달리 역사의 산증인이라고 불리는 참전용사분들과의 대화라 더욱 귀에 쏙쏙들어왔고, 6.25의 참상과 실상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대화가 끝난 후 우리는 해단식과 수료식을 하러 연병장으로 이동했다. 해단식에서 완주증을 받고 그 후 우리는 11박 12일 함께 했던 모자를 하늘 위로 던지며 해단식 및 수료식을 마무리 하였다. 하늘 위로 솟는 모자처럼 우리대원들의 인생도 언제나 하늘로 솟길 기원했다.
인생은 길에 비유된다. 우리 국토대장정은 이제 시작이다. 역사를 통해 나를 다시 알고 나를 아는 동시에 다른 사람을 섬기고, 그를 통해 배우고 길을 찾아 가는 연속...
우리 대원들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각자 집으로 헤어졌다. 또 다음을 기약하면서,,,
마지막 한마디
한마디로 채우기에 너무나도 많은 큰 기쁨,,, 어딜 가서나 그렇게 많은 환대를 받을 수 있었을까.. 가는 지역마다 재향군인회와 향군 여성회에서 더운날이든 빗속이든 환한웃음으로 수박과 각종 간식과 함께 동행하셨다. 그분들이 있어 힘이 났다. 그리고 하루하루 부대를 들릴때의 환대들,, 우리를 위해 최대한 최신식의 시설을 준비하려 애쓴 장병들, 특별히 신경써서 온수도 틀어주셨던 샤워시설,, 우리가 온다고 밥에도 유난히 신경썼던 취사병들,,참으로 고마운 분들이다..
적지않으신 나이에도 불구하고 우리 앞에 걸으며 파이팅을 불어넣어주신 단장님, 우리들 하나하나 챙겨주시며 환한 웃음으로 행군을 함께했던 부단장님, 우리의 행군로를 책임지고 신경쓰셨던 팀장님, 실장님, 제일 바쁘신 와중에도 항상 우리와 함께 걸으며 우리의 몸상태를 점검하신 의료팀장님,지영스텝님, 더운 날에 우리보다 2배더 뛰어다니고 사진과 영상을 담당했던 사진, 영상스텝분들,, 우리의 아픔과 고충을 같이 느끼고 우리 옆에서 제일 파이팅을 많이 외쳐주신 스텝분들,,모두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감사합니다.
나는 이번 대장정을 통하여 배운게 너무나도 많다.
역사를 바로세워야 내 자신을 바로세울수 있듯이, 6.25에 대해 더 많고 실제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고, 전적지 행군로 답사를 하며 구국충혼들의 위로가 되기를 기원했고, 120여명의 대원들이 함께 걸으며 그들의 혼을 위로하며 감사해했다.
어느새 나는 자신감이 충만해있었다. 대장정은 나의 넘치던 열정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했고, 그동안 무료하고 적막했던 나의 삶의 자양분이 되는 경험이었다
내 인생에서 획을 그을 수 있는 참으로 소중한 인연들,,
우리 분대원을 위해 항상 말없이 신경써주고, 우리를 최강의 분대로 이끌었던 진정한 남자 상현형, 행군중에 끊없는 말과 유머로 우리를 지치지 않게 하고, 즐거운 행군길을 마련한 해병대. 히야~ 동환이형, 우리 분대의 아버지의 이미지로, 분대장을 도와 우리분대원들을 섬세하게 잘 이끌어주었던 인호형, 그리고 우리분대의 형님! 언제나 씩씩하고 밝은 윤정이, 항상 부채를 갖고 행군을 하며 쉬는시간에는 언제나 송장처럼 누워있는게 특기인 할머니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고은이,, 속으로는 힘들지만 분대원들을 위해 힘들어도 안힘든척하고 열심히 열정을 가지고 같이 걸었던, 효정이, 우리분대의 딸래미, 자기키보다 큰 가방을 메느라 고생하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한 연지, 우리분대의 막내, 언제나 활기차고 형, 누나들 말듣느라 애쓴 호성이, 힘들었지만 먼 길을 함께해준 나의 동역자들, 너무나도 고맙고 사랑합니다.(konas)
오여명(2소대 3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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