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나라와 겨레위해 산화한 학도의용군 얼 본받자"
6·25 전쟁이 발발하자 북한의 침공에 맞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전쟁터에 뛰어든 학도병을 추모하는 ‘제53회 전몰학도의용군 추념식’이 3일 국립현충원 학도의용군묘역에서 열렸다.
학업을 중단하고 교실을 뛰쳐나와 군번도, 군복도 없이 교복을 입은채 6월 29일 수원에서 ‘비상학도대’를 조직하여 국방부 정훈국(政訓局) 지도 아래 최초의 학도의용군으로 종군한 이들은 7월 29일 ‘정훈국 학도의용대’로 정식 발족하여 학도병을 모병하는 한편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전투에 참전했다.
1950년 8월 11일, 71명의 학도의용군은 포항지구 전투에서 적의 대대병력과 10여시간에 걸친 혈전을 전개하여 포항 시민과 비전투요원들의 안전한 철수 및 3사단 주력부대가 장사동으로 재집결하여 정비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이는 등 불멸의 공훈을 남겼다. 이 전투에서 48명의 어린 목숨이 산화했다.
6·25 전쟁중에 자원한 학도병 20여 만명 중에서 국방부 정훈국모병소에 자원 참전한 3만 7천여 명의 학도의용군은 휴전까지 수많은 전투와 북한지역 선무활동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며, 이 중 7천여 명의 학도가 산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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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학도의용군회 김영택 회장은 인사말에서 “애국 학도들은 서로가 손을 잡고 자진 출정하였고, 펜을 총으로 바꾸어 쥐고 누구의 부름도, 군번도 없이 전선에 돌진하여 이름도 모르는 낯선 산과 들에서 나라와 겨레를 지키다 산화했다”며, “후배 청년 학도들에게 나라가 무엇이며 왜 지켜야 하는지, 지난 날 이 나라를 어떻게 지켜왔고 이 나라 건설을 위해 어떻게 희생해 왔는지를 올바로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도의용군회 홍수용 부이사장도 전공사를 낭독하면서 “3사단 직할 학도의용군으로 참전하여 사망한 48기를 근거로 조성된 국립현충원내 학도의용군 묘역 외 17세에서 20세 전후의 채 피기도 전인 꽃봉우리로 사망한 동지들이 조국의 어느 산하에 잠들고 있는지도 모른다”며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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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국방부 이근범 교육정책관은 국방장관을 대신한 추념사에서 “오늘날 풍요로운 대한민국의 밑바탕에는 선배님들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이 있었다”며, “우리 후손들이 두 번 다시 이 땅에서 전쟁의 참화를 겪지 않도록 튼튼한 국방력을 건설하고 국가발전과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정예강군 육성에 매진하고 있다”고 말했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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