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식량난과 김정일 생일잔치
올해 겨울 북한의 추위는 혹독했다. 함경도와 양강도의 최저기온은 영하 30도를 오르내렸다. 폭설도 빈번해 사람은 물론 물자의 수송이 어려웠다. 공공배급제도(public distribution system)에 일부 의존하던 주민들의 식량공급은 중단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본질적으로 절대량이 부족하던 식량난의 고통은 가중됐다. 여기에 수십 년만에 경험한다는 혹한이 주민들의 삶을 극한으로 몰아갔다.
북한의 식량 생산은 구조적으로 수요를 맞추지 못한다. 식량의 수요는 식용, 종자용, 사료용 및 가공용으로 구성된다. 이 기준에 의한 식량 소요량은 550만 톤 내외다. 그러나 곡물 생산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북한의 현실에서 사료용과 가공용은 제외될 수밖에 없고 최소 소요량은 이들을 제외한 500만 톤으로 추정된다. 생산량은 지난해 기준으로 400만 톤 수준이다. 수요량 대비 연간 20%가 모자라는 만성적인 생산 부족상태다. 지난 90년대 중반 최소 100만 명 이상의 아사자를 양산했던 고난의 행군 시절에는 생산량이 300만 톤 수준에 그쳤다. 예나 지금이나 북한은 남북회담만 했다 하면 우선 쌀 지원을 요청하고 그다음은 비료를 요구한다. 과거 정부는 요구를 수용해 쌀 40만 톤과 비료 30만 톤을 지원했다. 비료 1톤은 식량 1.5톤의 증산 효과가 있는 만큼 식량 80만 톤 이상을 지원한 셈이다.
도대체 북한은 왜 식량을 자급자족하지 못하는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요인으로 구분해보자. 과거 남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할 때 순안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에 논을 살펴보면 의외로 ‘피(잡초)’가 많았다. 식량이 부족하지만, 집단생산체제에서 굳이 신발 벗고 들어가 잡초를 제거할 이유는 없다. 사회주의는 개인의 인센티브를 무시하는 것이 가장 큰 한계다. 지난 50년대 중반 중국은 인민공사라는 집단생산체제로 인해 3000만 명이 굶어 죽었다. 1978년 덩샤오핑이 개인 영농체제를 허용하면서 생산성이 향상했다. 농업은 종합산업이다. 비료·농약·농기계 등 농자재가 필수적이다. 농자재는 일반경제 발전에 의존한다. 비료는 원유를 수입해 다양한 정제단계를 거쳐 생산된다. 전기와 각종 화학공업 기술과 설비가 필요하다. 북한은 원유도 없고 공장도 없다. 결국, 북한의 식량 생산은 인센티브 시스템을 도입하고 일반경제가 살아나야 해결될 것이다.
지난 16일은 김정일의 70회 생일이었다. 대북 소식통들은 “이번 김정일 생일 물품 구입을 위해 아들 김정은이 중국에 중앙당과 만수대 의사당 일꾼들을 1월 중순께 파견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김정일의 생일을 위한 준비 종목은 남방 지역 과일이나 소 힘줄, 고래 고기 같은 것은 물론 중앙당 간부들도 들어보지 못한 식품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에 김정일과 측근들에게 줄 생일 준비 물품을 구입하는 데 쓰인 돈은 대략 짐작으로도 1000만 달러가 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과거 김정일 생일은 특별배급 때문에 인민들에게 큰 명절이었다. 민심을 달래기 위해 술·고기 등의 부식물과 간식 등이 담긴 선물 상자가 간부와 일부 주민에게 전달됐는데 이마저도 올해는 소식이 없어 불만은 가중되고 있다. 김정일의 생일을 맞아 각종 충성행사가 이어졌지만 정작 북한 주민들은 경제난에 지쳐 김정일 부자에 대한 불신이 고조되는 형국이다. 인민들은 굶어 죽고 있는데 지도자는 호화 먹을거리 사치품 수입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 오늘날 북한의 모습이다. http://kookbang.dema.mil.kr/
남성욱(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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