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강우규', 92년 만에 동상으로 부활
1919년 9월 2일 남대문역(현재의 서울역)에서 총독으로 부임하는 사이토 마코토의 마차에 폭탄을 던져, 3·1운동 후 의혈투쟁이라는 새로운 민족운동의 방향을 제시한 왈우 강우규 의사가 92년만에 의거 현장에서 동상으로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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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강우규의사기념사업회(회장 강인섭)는 강우규 의사의 의거 현장인 서울역에서 의사의 동상 제막식을 거행하고 의사의 뜻을 기렸다.
이날 강 의사의 동상 제막식에는 우무석 국가보훈처 차장, 진영 한나라당 의원을 비롯해 박유철 광복회 회장, 이원범 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등 보훈단체장, 오산고 학생과 시민 5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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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섭 회장은 “강우규 의사가 순국 92년 만에 다시 이 자리에 부활했다”며 "92년 만에 부활한 강우규 의사의 동상이 독립을 위한 애국정신을 일깨우고 선진 통일조국으로 나아가는 길의 정신적 징표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어 우무석 차장은 “92년 전 오늘 바로 이곳의 의거는 역사에 길이 남을 의거”라며 “뼈있는 민족의식으로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신 의사께서 마지막까지 자신을 불태워 우리 민족의 기상이 끊기지 않았음을 온 세계에 알렸다”고 의사의 업적을 기렸다.
특히, 우 차장은 “지금 무엇보다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역사를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올바른 나라 사랑을 교육해야 한다”며 “보훈처에서는 의사의 뜻을 받들어 꾸준히 나라사랑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영 의원은 “의사의 나라사랑 정신이 살아나, 강한나라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하겠다”고 짧고 굵은 메시지로 의사의 정신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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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규 의사는 1919년 9월 2일 예순의 나이로 남대문역(지금의 서울역)에서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에게 폭탄을 던졌다. 총독 폭살은 이루지 못했지만 일제 관리 등 37명이 죽거나 다쳤다. 강 의사는 이듬해 11월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으며, 정부는 의사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한편, 강우규 의사의 동상 건립은 지난 2008년 6월부터 강우규의사기념사업회에서 동상 건립을 위한 모금활동을 시작, 3년 여 만인 이날 결실을 봤다. 동상 제작은 조각가 심정수(69)씨가 맡았다. 옛 서울역사 앞에 세워진 의사의 동상에는 의사가 남기신 유시(“단두대 위에 오리니 오직 봄바람만 부는구나, 몸은 있으되 나라는 없으니 어찌 생각이 없으리오”)가 함께 새겨졌다.(konas)
코나스 강치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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