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 동상 문화재 지정 환영
콜럼버스가 대원들에게 말했다. “이 달걀을 똑바로 세울 사람 나와 봐라!” 아무도 응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 콜럼버스는 달걀바닥을 툭 바닥에 쳐서 세웠다. 삶은 달걀이었던 것이다. 그때서야 대원들은 ‘나도 세우겠다’라고 나섰다. 만사가 결과를 보고 난 뒤에야 쉽게 생각돼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할 때 종종 인용되는 말이다.
1950년 9월, 대한민국의 운명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위기였다. 낙동강에서 최후 저지선을 사수하고 있던 우리 군의 방어선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은 배를 타고 현해탄을 건너 도피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이때 맥아더 장군은 인천상륙작전을 제안했다. 모두가 반대했다. 어떻게 달걀을 세울 수 있느냐고…. 전략가들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예상했다.
허허실실(虛虛實實), 담담타타(淡淡打打).
누구도 안 된다고 하는 그곳, 아무도 예상치 못한 그곳에 맥아더 장군은 기습상륙작전을 감행했다. 그리고 일사천리로 서울을 탈환하고 압록강까지 북진을 계속했다. 대한민국이 공산화의 위기에서 탈출하는 순간이었다. 수백만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이 보호받는 기적이었다.
우리 국민들은 이러한 장군의 공적을 찬양하며 인천자유공원에 동상을 세웠다. 이 맥아더 장군 동상이 문화재로 등록된다고 한다. 참으로 환영할 일이다. 엄밀히 말해 맥아더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것과 장군의 동상이 문화재로 등록되는 것은 별개다.
문화재청은 “청동 동상의 경우 일제강점기에 전쟁물자로 공출되면서 대부분 사라지거나 훼손이 많았다”고 전제하고 타계한 조각가 김경승이 1957년에 제작한 맥아더 장군상이 문화재로 등록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 일부 단체에 의해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너무도 비이성적이고 너무도 비합리적인 이들의 주장에 수많은 애국 국민들이 장군 동상 지키기에 나섰다. 그래서 지금도 장군의 동상은 인천자유공원에 우뚝 서 있다.
이제 장군의 동상이 문화재로 등록된다면 장군 동상 철수 주장은 타당성을 잃게 될 것이다. 만약 불법적으로 동상을 훼손하기라도 한다면 문화재 보호법에 의해 처벌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맥아더 장군 동상의 문화재 지정은 오직 문화적 관점에서 판단되고 결정돼야 한다.
대한민국 5000만 국민의 생존을 좌우하는 안보문제에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들이 순수한 문화재 지정에까지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는 반문화적 행태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용기와 지혜로 기억되는 맥아더 장군 동상이 문화재로 지정되는 날을 기다리며 동상에 새겨진 비문을 되새겨 본다.
“정의에는 국경이 없고 투쟁에는 산도 불도 거침도 없다. 이러한 정의로써 이러한 투쟁을 감행해 자유세계의 노선 위에 승리를 가져오고 그리하여 만인의 감격과 탄앙을 몸에 두른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여기 이 동상의 주인공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다.”(konas)
윤창로 (예)육군준장ㆍ전 국방부 대변인
*위 글은 국방일보 11월 7일자에 게재된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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