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윤봉길의 정신만 살아있다면
어제가 어떤 날인지 기억 못하시지요. 1932년 4월 29일은 일본천황 히로이도의 생일이었습니다. 꼭 80년 전 이 날, 한국의 청년 윤봉길은 상해 홍구 공원에서 열린 일인들의 축하연에 숨어서 참석하여 식장을 향해 폭탄을 던졌습니다.
나라를 위해 죽기를 결심한 매헌 윤봉길은 사제 폭탄을 만들어 가지고 그 자리에 나타나, 이를 던지니 일본 거류민단 단장 가와바다와 파견군 사령관 시라가와는 큰 부상을 입고 사망했으며, 젊은 영사 시게미쯔는(일본이 패전하고 연합군에 대한 항복문서에 조인하던 때 일본의 외무대신이었는데) 다리 하나를 크게 다쳐 평생 절고 다녔습니다.
나는 사람이 사람을 죽인 일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약관 24세의 한 젊은이의 가슴 속에 간직된 나라사랑의 크고 뜨거운 정신이 내 마음을 끊임없이 흔들기 때문입니다. 윤봉길은 나로 하여금 내가 한국인으로 태어난 사실을 무한히 자랑스럽게 느끼게 합니다.
일본 가나자와 형무소에서 윤 의사가 처형되던 장면이 찍힌 사진 한 장이 여러 해 전에 <동아일보>에 실린 적이 있었습니다. 총을 맞기 전과 총을 맞은 뒤에 윤 의사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었습니다. ‘무서운 사나이, 자랑스러운 선배, 불세출의 영웅’이라고 느꼈습니다.
일본 땅 가나자와의 숲 속에 윤봉길 의사의 거창한 기념비가 서 있는지는 오랩니다. 일본에 사는 우리 교포들이 기금을 모아 설립하였다고 들었습니다. 강제로 일선에 끌려갔던 한국의 젊은 여성들이 명목은‘정신대’였지만‘위안부’로, 부끄러움을 당한 일이 있었던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본 정부가 윤 의사의 비석을 그토록 크게 만들도록 허락했을 리가 없지요. 맥아더 장군의 미군정 때라 그 일이 가능했다고 들었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그 정신만 우리 가슴에 살아있다면 남북통일도, 태평양 시대의 주역 노릇도 다 훌륭하게 할 수 있다고 나는 믿습니다.(konas)
김동길 (www.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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